"새벽 배송이 나온 뒤로 '투잡'을 뛰는 배송 기사들이 많아졌어요. 낮에 일하고 밤에 또 일하고, 쪽잠만 자면서 하루에 17시간씩 일하는데 이건 사실 미친 짓이죠"
8일 오후 10시40분께 서울 송파구 서울복합물류센터 D동에 있는 마켓컬리 물류센터. 새벽 배송으로 주목받은 보라색 마켓컬리 배송차가 물류센터에 하나둘씩 등장했다. 밤 11시를 넘기자 상차(제품을 차에 싣는 일)를 기다리는 기사들도 물류센터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강남에 있는 ○○아파트 단지는 입구를 못 찾겠더라고", "그 아파트는 한 번 들어가려면 골치 아파"라는 대화가 이어졌다.
무엇이 가장 힘드냐고 묻자 "밤이니까 졸리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할 수 있는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마켓컬리 본사의 허가가 없으면 자세한 이야기는 해주기 어렵다고 했다.
마켓컬리는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전까지 집 앞으로 배송해주는 '새벽 배송' 서비스로 창업 이후 4년 동안 50배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새벽 배송을 등에 업은 마켓컬리의 가파른 성장세는 유통업계의 화두로 떠올랐고, 쿠팡·헬로네이쳐·오아시스 등 경쟁 업체도 너나없이 새벽 배송에 뛰어들었다. 소비자에겐 편리하고 배송업체에는 블루오션으로 주목 받는 새벽 배송. 하지만 새벽 배송이 가능한 배경에는 '지입 기사'의 고충이 있었다.
식자재 배송업체에서 일하던 김성호(가명·50)씨는 새벽 배송이 생긴 뒤부터 하루 '두 탕' 배송을 '뛴다'.
김씨는 "낮에는 이마트·롯데마트 같은 업체에서, 밤에는 마켓컬리에서 새벽 배송을 한다. 밤 11시부터 물류센터에서 대기하다가 새벽 2시에 상차가 끝나면 배송을 시작한다. 코스가 좋으면 새벽 5시에 끝나기도 하지만, 아침 7시를 넘길 때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뿐 아니라 많은 배송 기사가 길게는 하루 17시간 노동을 하고 있다고 김씨는 전했다. 피로 누적으로 자칫 사고가 나지 않을까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배송 기사들이 장시간 일하는 배경에는 '지입사(운송업체·주선사)'가 있다. 현행법상 본인이 배송 차량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배송 업무를 하려면 노란색 '영업용 번호판'이 필요한데 이 번호판은 개인에겐 발급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기사들은 영업용 번호판을 소유하고 있는 지입사에 3천만∼4천만원을 내고 번호판을 빌려야 하고, 매달 지입료도 내야 한다.
새벽 배송을 하는 기사들은 대부분이 개인사업자로서 지입사와 계약을 맺고 배송 일을 하는 지입 기사다. 마켓컬리에 따르면 이 회사에서 새벽 배송을 하는 기사 600여명 중 100여명만이 업체와 직접 고용 계약을 맺은 직영 기사이고, 나머지 500명가량은 지입 기사이다.
배송 기사들은 지입사가 기사를 모집하면서 '월 500만원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하고 하루 '두 탕' 근무를 권유한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400만원 이상 준다는 홍보에 혹해서 새벽 배송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막상 일을 시작하면 이 돈은 주 6회 투잡(업체 두 곳의 배송을 하는 것)을 했을 때나 가능하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부양가족이 있으면 한탕만 뛰어서 받을 수 있는 200만원대 임금으론 생계가 빠듯해 투잡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을 시작하려면 필요한 영업용 번호판을 빌리는 비용이 3천만 원으로 높아서 그 비용을 메꾸기 위해서 쉬지 못하고 밤낮없이 일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배송 기사들이 모여있는 오픈 채팅방에서는 "영업용 번호판 임대해서 '목줄' 차고 잠 쪼개 자면서 일하는 게 마켓컬리다. 낮에는 마트, 새벽에는 마켓컬리 일하는 것 보면 안타깝다", "마켓컬리 일하는 분들은 대개 하루에 두 탕 일하고 있다", "마켓컬리 일이 새벽 6시쯤 끝나는데 매일 하려니까 체력이 부족하다"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심지어 일부 지입사는 기사가 몸이 아파서 쉬거나 근무를 할 수 없을 때는 배송용 차량 유지비를 이유로 하루에 18만∼20만 원씩 임금을 깎는다. 아프지도 못하고 밤새워 일해야 새벽 배송으로 월 250만∼280만원을 받을 수 있고, 400만∼500만원은 낮에도 일했을 때 손에 쥘 수 있는 돈인 것.
배송업체가 직영 기사보다 지입 기사를 쓰는 이유는 비용 절감 때문으로 의심받고 있다. 회사가 직접 고용한 직영 기사와 달리 지입 기사에게는 배송 차량은 물론 보험료, 도로비, 차량 소모품 등 비용을 대지 않아도 된다. 또한 개인사업자로 인정되는 지입 기사들은 노동조합 결성 등 권리가 법적으로 보호되지 않는다.
수 열 공공운송노조 정책국장은 "새로운 산업의 일환으로 새벽 배송이 등장했지만 지입사와 지입 기사의 관계에서 불합리한 구조가 답습됐고, 야간 노동문제까지 더해졌다. 원청 기업은 지입사를 이용해 직접 고용 형태를 피하고 비용을 외부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마켓컬리 관계자는 "두 탕을 뛸 것을 권유하며 월 450만원 이상의 임금을 제시하는 업체는 마켓컬리의 지입사가 아니며 거래한 사실도 없다. 어떤 경로로 지입사들이 (기사) 모집 홍보를 잘못된 방식으로 하고 있는지 파악해서 대응 중"이라고 밝혔다.
이 업체는 또 "마켓컬리는 기존 업계 관행처럼 건당 수수료 지급 방식이 아니라 고정 운송비를 책정하고 있어서 배송 기사당 매월 지급하는 금액이 일정하고 야간수당도 지급한다"며 "배송 기사를 소모적으로 고용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쿠팡이 새롭게 도입한 배송 아르바이트 '쿠팡 플렉스'는 '긱 이코노미(단기 계약을 맺어 임시로 고용하는 형태) 시대' 신개념 일자리로 주목받았지만, 실제로는 노동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쿠팡 플렉스는 승용차로 배송을 해주는 서비스로, 운전이 가능한 일반인이 원하는 시간대에 배송 일을 신청해 자신의 차량으로 배달한다는 점에서 '배송계의 우버'로 불리기도 한다. 쿠팡 플렉스의 배송은 주로 새벽에 이뤄진다. 배송 일을 신청하는 이들이 낮에는 생업을 하고, 부업으로 쿠팡 플렉스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쿠팡 플렉스에서 새벽에 배송하는 박민수(가명·24)씨는 노동자이지만 노동자 취급을 받지 못한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회사와 정식으로 근로계약을 맺지 않고 일하기 때문이다. 쿠팡 플렉스에 배송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온라인 신청만 하면 일을 시작할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별도의 노동 계약을 맺지는 않는다.
밤 10시에서 새벽 6시 사이의 근로는 근로기준법에 의해 1.5배의 임금을 받아야 하지만 노동자 지위가 아닌 개인사업자이다 보니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쿠팡 플렉스는 배송 건수에 의해서만 임금이 책정된다. 박씨는 "1건에 1천200원 전후로 받는다. 20건을 해도 2만원 겨우 넘기는 셈이라 정말 잘해야 최저시급을 넘길 수 있다. 숙련돼야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용직이라 숙련되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안전 문제도 있다. 박씨는 "승용차로 배송을 하는데 짐을 많이 싣다 보면 백미러도 안 보일 때가 많다. 한밤중에 사이드미러만 보고 운전한다. 그나마 아파트 단지는 밝고 길도 넓어서 운전하기 낫지만 어두운 주택가는 정말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쿠팡 홍보팀 관계자는 "쿠팡 플렉스는 (고용이 아니라) 개인 사업자에게 상품을 위탁하는 것이다. 따라서 쿠팡 플렉스 근무자에게 별도의 보험이나 물품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상품 위탁이기 때문에 '임금'의 개념이 아니며 그날의 배송 물량과 배송 업무 신청자 수를 고려해 건당 비용을 책정하고 있다. 신청자가 늘어나면 건당 비용도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쿠팡 플렉스 배송자가 아닌 쿠팡에 직접 고용된 '쿠팡맨'이라도 새벽 배송 시 과로와 안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새벽 배송 담당자인 쿠팡맨 이성호(가명)씨는 "새벽 배송 도입 이후로 24시간 물량이 들어온다"며 "물량이 너무 많아서 얼마 전에는 분류하는 기계가 고장 나는 바람에 수작업으로 분류했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이씨는 "새벽에 산골이나 후미진 곳을 배송하다 보면 눈앞의 것도 식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둡다. 하지만 회사가 지급해준 건 소형 플래시(손전등)가 전부다. 주택이나 빌라에 배송하려다가 도둑으로 오해받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쿠팡이 자랑하는 데이터 시스템은 배송 기사에게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밤에는 더한 부담이 된다고 기사들은 입을 모았다. 이씨는 "데이터 시스템으로 쿠팡맨 한 명이 첫 배송지에서 다음 배송지로 이동하는 시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한다. 관리자가 시시때때로 연락해 '왜 이렇게 느리냐'고 재촉하는데 밤엔 일이 더딜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쿠팡 플렉스로 배송하는 박씨 역시 "새벽 시간에는 아파트에 마음대로 들어갈 수가 없어 경비원을 기다리느라 40분 정도 시간이 지체된 적이 있었는데 곧바로 '너무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지난 3월부터 공공운수노조 공항항만운수본부 쿠팡지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사측과 교섭하고 있다.
야간노동이 노동자의 건강을 해친다는 것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 있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2007년 야간노동을 '인간의 생체리듬을 어지럽힐 수 있는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장기간 야간에 일한 노동자는 암에 걸릴 개연성이 커진다는 것이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야간노동으로 인한 건강 피해는 당장 나타나지 않으니 간과하기 쉽다는 점이 문제인데, 새벽 배송을 도입한 회사들이 노동자의 건강 문제를 고민했는지 의문"이라며 "신산업 일자리 증가도 중요하지만, 지속가능한 노동이 될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영선 노동시간센터 연구위원은 "새벽 배송업체의 광고문구를 보면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알고리즘을 강조하며 소비자의 편의를 앞세운다. 하지만 이를 위해 투입되는 노동자의 노동실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김 연구위원은 "개인사업자로 일하면서 빠른 배송을 요구받는 새벽 배송 노동자에게도 노동자성이 분명히 있지만, 회사와 사회가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아 제도적 보호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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