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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오렌지'는 갔어도 '오렌지향'은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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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오렌지'는 갔어도 '오렌지향'은 남아

친러 야누코비치 대선 승리…민주화 역행은 어려울 듯

7일 치러진 우크라이나 대선 결선투표 결과,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총리의 당선이 확실시되고 있다.

2004년 대선에서 승리를 선언한 지 한달만에 이른바 '오렌지 혁명'으로 물러나야 했던 그가 5년여 만에 화려하게 권좌에 복귀한 것이다.

이번 선거의 관전 포인트는 우크라이나 민주화의 상징인 오렌지 혁명 세력이 몰락하는지 여부였다. 아울러 그들이 걸었던 친(親)서방 노선이 야당 후보 야누코비치의 친러시아 노선에 밀리느냐도 관심사였다.

결과는 오렌지 혁명 세력의 참패와 친러 정권의 부활이었다. 그러나 국민들의 정치 성향이 전반적으로 변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마지막까지 서로 '승리' 주장하며 접전

▲ 7일 결선투표에 임하고 있는 야누코비치 전 총리 ⓒ로이터=뉴시스
이번 결선투표에서 야누코비치 전 총리와 율리아 티모셴코 현 총리는 막판까지 박빙의 승부를 펼쳤다.

초반 집계에서 야누코비치가 월등히 앞서자 그는 승리를 확신하며 티모셴코에게 "총리 사퇴를 준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티모셴코 후보 진영이 개표가 85%가량 진행됐을 때 자신들이 0.8%포인트 앞섰다고 주장하면서 양 캠프 간 불꽃이 튀기도 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출구조사가 완료된 결과 야누코비치가 49.8%의 지지를 얻어 45.2%를 득표한 티모셴코보다 4.6%포인트 앞섰다면서 야누코비치의 승전보를 전했다. 다른 외신들도 마찬가지의 전망을 내놓고 있다.

오렌지 혁명 약발 다 했나? '글쎄…'

혁명으로 물러났던 야누코비치가 귀환한다면 민주화의 상징인 '오렌지 세력'은 물갈이가 되고 만다. 지난달 17일 대선 1차 투표에서 오렌지 혁명으로 대통령이 됐던 빅토르 유셴코 현 대통령이 한자리수대 지지율로 참패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다.

오렌지 혁명은 지난 2004년 11월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당시 부정으로 얼룩진 대선 결과에 불복, 평화적으로 재선거와 정권 교체를 이룩한 과정을 말한다. 당시 다수의 시민이 지지한 유셴코의 선거 캠프 상징색인 오렌지색이 그대로 혁명의 이름이 됐다.

시민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세운 대통령에 고무됐고, 미국과 유럽 각국의 정부에서도 친서방 노선의 유셴코 정권을 환영했다.

그러나 유셴코와 함께 오렌지 혁명의 주역이었던 티모셴코 총리가 대중적 인기를 등에 업고 실세로 나서자 유셴코 측근들과의 분열이 시작됐다. 이들은 유셴코가 티모셴코를 해임하면서 혁명의 열기가 식기도 전인 2005년 9월 이미 갈라선다.

이러한 정치적 분열과 함께 경제적 혼란까지 더해지자 유셴코의 지지자들은 그에게서 서서히 등을 돌렸고, 이 틈에 절치부심하던 야누코비치 전 총리가 기대주로 부상한 것이다.

1차 투표에서 35.4%의 지지율을 기록했던 야누코비치가 결선투표에서 과반 가량의 지지를 받은 것은 3위 이하 후보들에게 지지를 보냈던 표심이 결선에서 갈라졌음을 보여준다. 유셴코는 1차에서 5.5%를 얻고 주저앉아 버렸다.

야누코비치의 권좌 복귀가 예상되자 일부에서는 그가 친서방 정책에 부정적이고, 관료주의적 성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의 서구식 민주화가 발이 묶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야누코비치가 집권해도 우크라이나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민주화의 길로 갈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한국외대 우크라이나어과의 홍석우 교수는 오렌지 혁명이 '대중혁명'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유셴코, 티모셴코가 오렌지 혁명을 상징하는 인물이지만, 혁명의 전부는 아니었다"며 "혁명의 중심이었던 국민은 계속 변화를 요구할 것이고, 단지 정권만 바뀌는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홍 교수는 "우크라이나의 민주화는 진행중"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이번 선거 과정을 주목하라고 말했다. 그는 "부정선거로 얼룩졌던 지난 대선 이후 치러진 두 번의 의회 선거와 지난 1월 대선 1차전은 매우 공정하게 치러졌다"며 "국제선거감시단이 높게 평가한 데서 드러났는데, 선거가 유럽 수준으로 깨끗해진 것은 선거 민주주의가 발전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한 오렌지 혁명 당시 시민들이 키예프 독립광장에 모여있는 모습. ⓒ로이터=뉴시스

'친러시아 대 친미국' 구도 해석은 '무리'

대외관계의 변화도 주목된다.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 시절 우크라이나는 유럽연합(EU)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두고 러시아와 심한 마찰을 빚었다. 매년 초 러시아가 가스비 인상 문제로 유센코 정부를 강력히 압박한 것도 근본적으로는 외교노선에 대한 응징과 견제 차원이었다.

이에 따라 친러 성향의 야누코비치의 당선되면 외교 정책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와 외신들은 이번 대선 이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외교관계는 한결 원활해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미국과 러시아의 세력 다툼 성격이 있었던 2004년 선거와 비교할 때, 이번 대선에는 국외 세력의 개입 정도가 크지 않기 때문에 '친러'와 '친미'의 대결로 단순화하기엔 무리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오바마 정부는 러시아와 우호관계를 추구하고 있어서 우크라이나에서 소모적인 마찰을 피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한편 러시아는 지난 대선에서 노골적으로 야누코비치를 지지해 반러 감정을 자극했다는 '학습효과' 때문에 이번 선거에선 가급적 외부자적 입장을 견지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또 야누코비치와 티모셴코 모두 EU 가입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에 외교노선은 사실상 극명하게 대비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하다. 차이가 있었다면 러시아가 반대하는 나토 가입을 야누코비치는 절대 반대하고 티모센코는 유동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정도인데, 그 역시도 그리 큰 차이는 아니었다는 평가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정권이 친러 쪽으로 이동해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자치주'가 되지 않을 것이며, 유럽과 러시아 사이에서 최대한 국가 이익을 도모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티모셴코 캠프 측에선 야누코비치 지지자들이 투표 감시 활동을 방해하는 등 선거 부정이 있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자 야누코비치 지지자들은 2004년처럼 선거 결과가 뒤집히는 것을 우려해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나선 상태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대선 후 소요 사태가 일어나거나 정국이 불안에 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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