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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총리가 사스 무릅쓰고 베이징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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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총리가 사스 무릅쓰고 베이징 간 이유

[프랑스 현지 르포] '보잉 추월' 초읽기에 들어간 에어버스

장 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가 사스 공포가 휩쓸고 있는 중국 베이징에 날아간 지난 25일, 기자는 프랑스 툴루즈에 있는 에어버스 본사에서 이 회사 관계자들과 만나고 있었다.

그들은 왜 라파랭 총리가 사스 확산 이후 중국을 찾은 최초의 고위외국인사로 신병의 안전을 무릅쓰고 갔는지에 대해 굳이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세계1위의 항공사가 되기 위해 프랑스가 지금 민-관 합동으로 지금 얼마나 치열하게 뛰고 있는가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바로 이날 라파랭 총리는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를 만나 에어버스와 중국 민항청(CAA)간의 에어버스 30대 주문에 대한 정식 조인식에 참가하기 위해 남들이 기피하는 '사스 오염지역' 베이징으로 들어간 것이다.

중국은 세계최대의 항공기 수요국인 미국이 침체에 빠지면서 향후 항공사의 사활이 걸린 차세대 최대 소비시장. 중국 항공업계는 매년 10% 이상 급성장세를 보이면서 앞으로 20년간 1천6백대(약 1천4백억 달러) 이상의 항공기를 구입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따라서 이날 조인식은 세계2대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과 에어버스의 세력판도를 가르는 분수령의 의미를 갖고 있다.

***에어버스, "올해안에 미국 보잉을 따라잡겠다"**

에어버스는 유럽항공국방사(EADS)가 주식 80% 소유하고 영국의 군수업체 BAE 시스템이 20% 지분을 갖고 있는 유럽 컨소시엄 형태의 기업이다. 말 그대로 '유럽의 기업'인 셈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보잉과 에어버스라는 두 기업간 경쟁을 '미국과 유럽연합(EU)간 패권 전쟁'으로까지 비유하고 있다. 1백여년의 민항기 역사에서 한번도 선두자리를 내놓지 않은 보잉은 지난해 에어버스보다 78대 많은 3백81대를 납품했지만 올해 납품목표를 2백75∼2백85대 정도로 낮춰잡고 있다. 보잉은 자칫 하다가는 에어버스에게 선두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창사이래 초유의 위기에 직면한 것이다.

에어버스의 시장 개척에는 특히 프랑스 정부의 전폭적 외교전이 가세해 큰 힘이 되고 있다. 미국의 월스트리 저널 유럽판은 "라파랭 총리가 중국의 에어버스 주문을 확정짓기 위해 중국에서 원자바오 총리를 만났다"고 긴급 주요뉴스로 전했다. 프랑스의 AFP 통신은 "라파팽의 이번 방문에는 에어버스건만이 아니라 프랑스 엔지니어링 그룹 알스톰, 보험사 그루파마, 거대은행 크레디 리요네 등의 협상건도 걸려있다"고 전했다.

이같은 정부의 강력한 지원에 힘입어 에어버스의 노엘 포르자르 회장은 올초 연례 기자회견에서 "올해 여객기 납품목표는 3백대로 작년보다 3대 적지만 창사 33년만에 처음으로 납품 규모에서 보잉을 따라잡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사실상 보잉사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실제로 이미 에어버스는 지난해 보잉사와 거의 대등한 시장점유율을 보이더니 올해 들어 53%로 이미 보잉의 47%를 능가하고 있다.

그동안 세계 항공사는 보잉의 독점하에 있었다. 그러나 에어버스사는 1970년 창사 이래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왔고, 특히 유럽연합 출범이래 경이로운 성장을 거듭해왔다. 지난 1991년까지만 해도 보잉사는 시장점유율이 80%에 이른 반면, 당시 에어버스는 20%에 불과했다. 그러나 에어버스사는 현재 4만6천명의 직원으로 A320시리즈를 주력상품으로 내놓으면서 보잉을 앞지르는 상황에까지 온 것이다.

***에어버스의 경쟁력은 첨단기술과 서비스정신**

다비드 벨루필레 에어버스 홍보담당자는 이같은 에어버스의 급성장 배경과 관련, "현재 시장에서 팔리고 있는 에어버스 기종들은 모두 최근 14년간 생산된 최신기종들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주력상품인 A320 시리즈는 1980년부터 나왔다.

반면 보잉사는 지난 60~70년대 기본 설계가 나온 오래된 모델이 대부분이고 신규 모델 개발에 실패하면서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보잉사는 신형 747 개발을 지난 2년전에 포기한 데 이어 2백50석의 미래형 음속 항공기 '소닉 크루즈'를 내놨으나 시장의 썰렁한 반응에 사실상 좌절한 상태다.

엔진 등 핵심부품 설계만으로 보면 오래된 기종이라고 반드시 뒤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잉이 고전하는 이유는 바로 항공기 운용비용에서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벨루필레 홍보담당자는 "세계 항공산업은 현재 공급과잉 상태이기 때문에 항공사로서는 운용비용에서 사실상 승패가 갈린다"면서 "이 때문에 항공사들은 탑승객들이 선호하는 공간 디자인, 연료 절감 효과 등을 구매 조건에 우선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벨루필레는 기자를 고객사들에게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보여주는 일종의 모델하우스인 '막업 센터'(Mock UP Center)로 안내했다. 막업 센터란 실제 항공기 크기의 모델을 전시해 놓은 것이다. 막업센터에는 올해 출시될 예정인 A318기와 2006년 출시예정인 5백55석의 초대형 점보기A380이 놓여 있었다.

눈에 띄는 것은 3자리가 연속해 있는 기존의 좌석 배치에서 탈피, 2자리 배석을 기본으로 설계돼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탑승객도 창가쪽도 아니고 통로쪽도 아닌 중간에 낀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한 좌석 배치다. 객석 짐칸 역시 항공 짐가방이 그대로 들어갈 정도로 넓다. 이를 소화하기 위해 여객기의 폭을 약간 넓힌 반면, 연료는 오히려 보잉사의 경쟁기종보다 적게 먹힌다. 보잉 727의 경우 시간당 1천2백45갤런의 연료를 소비하는 데 반해 에어버스 A320은 8백갤런밖에 안들어 간다.

인력운용면에서의 안정성과 비용에서도 에어버스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소형부터 대형에 이르는 모든 항공기의 조종석을 같은 디자인으로 설계해 한 기종에 숙련된 조종사는 모든 기종에 익숙하도록 만들어 조종사 인원 절감과 교육비 절감, 운행 안정성 등이 크게 향상된 효과를 가져온 것이다.

***파산위기에 몰린 미국항공사들도 보잉 대신 에어버스 구입**

홍보담당자에 따르면 에어버스는 이같은 경쟁력으로 세계 항공기 신규주문의 50%를 획득하고 있다.

수많은 항공사가 난립한 미국의 경우 자사의 사활이 달린 문제라 미국의 보잉사를 제쳐두고 에어버스만을 구매하는 항공사도 출현하고 있다.

한 예로 미국의 '저가할인' 항공사 제트블루(JetBlue)는 에어버스를 구매해 비용절감에 성공한 결과, 올해 에어버스 A320 80대를 신규 주문했다. 제트블루는 다른 항공사들이 적자로 파산위기에 몰리고 있는 반면에, 지난 1.4분기에 전년동기보다 1천3백만달러 많은 1천7백40만달러의 순익을 냈다.

제트블루의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닐러먼은 "여러 요인이 겹쳐 미국 항공업계가 어느 때보다 어려운 국면에 처해있으며 최선의 길은 안전하고 경제적이며 안락한 항공기로 적정성장을 추구하는 것"이라면서 "에어버스를 선택한 것이 우리 회사가 성공한 최대 요인"이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41대의 에어버스를 운행중인 제트블루는 신규 및 추가주문 옵션을 합치면 2012년까지 2백대가 넘는 A320를 보유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트블루는 에어버스만 보유하고 있다.

미국 노스웨스트 항공사 역시 최근 보유중인 보잉 중형기종을 전부 에어버스로 대체했다.

***경쟁력으로 정치외교 공세 돌파**

에어버스 관계자는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사실 항공사로서는 에어버스를 구매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서 독자적인 판단으로는 프랑스의 라팔 전투기가 우수하다고 판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막판에 미국의 보잉 F15기 전투기를 구입한 것은 명백히 정치적 결정으로 생각한다는 불만도 서슴없이 내비쳤다.

그러나 에어버스사측은 "대한항공은 A330 동체 패널 제작 협력 및 주요 고객사"라면서 한국의 항공사들과 원활한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전을 계기로 미국은 전쟁에 반대한 독일과 프랑스를 적으로 설정, 이들 국가에 대한 정치외교 압박공세를 계속하고 있다. 외교계 일각에선 미국의 궁극적 노림수가 '경제 패권'에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고 있기도 하다. 즉 미국경제의 생명선인 달러화를 위협하고 있는 유로화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유럽연합의 주축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정권과 이들 국가의 경제를 공격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그러나 치열한 경제전쟁의 현장에서 지켜본 유럽연합의 경제적 저력은 정치외교 공세의 압박아래 허물어질 정도로 결코 간단치 않았다. 시장에서 제일 중시하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제전쟁과 정치외교공세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우리나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잖은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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