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정 SK글로벌 대표이사 부회장은 지난달 31일 주주총회에서 ‘수출역군’으로 자부해온 종합상사가 오늘날 초대형 분식회계의 진원지가 되버린 현실을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SK글로벌은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수출의 일익을 담당하며 국가경제에 이바지했지만 과거 정부가 수출 드라이브를 통한 외화획득 정책을 펼치던 시절부터 이미 수익구조가 악화되기 시작했으며, 해외자원 개발 투자의 부실화와 외환위기 여파에 따른 각종 여신사고는 손실 규모를 더욱 확대시켰다.”
현재 재벌그룹의 종합상사는 계열사들의 수출대행으로 안정적인 수입구조를 갖고 있다는 일반의 인식과는 사뭇 동떨어진 실상이다. 한때 수출입국의 역군으로 일컬어졌던 종합상사가 왜 이렇게 전락했나.
***수출역군이란 말도 이제 옛말**
전문가들은 대체로 종합상사들의 부실요인 중 두 가지가 결정적이라고 말한다.
첫번째, 계열사 수출대행의 대가로 그룹의 금융차입 창구 역할을 하다가 부실을 많이 떠안았다.
두번째, 과거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떼밀려 이른바 '밀어내기' 수출을 하는 과정에서 부실채권이 많이 발생했다. 모업체의 경우 대 이라크 부실채권만 원리금을 합쳐 한때 1억4천3백만달러에 달한 적도 있다.
반면 종합상사의 본령인 수출 수익성은 미미하다. 업계관계자에 표현에 따르면 ‘수출로는 먹고 살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윤이 좋은 품목들은 제조업체가 직접 수출을 하기 때문에 종합상사가 대행하는 품목들은 마진율이 0.1∼0.3%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종합상사 1위업체인 삼성물산의 지난해 매출(36조9천1백억원)을 보면 무역부문이 32조3천억 원, 건설부문이 4조6천억원으로 무역이 87% 비중을 차지하지만, 실제 수익은 오히려 건설부문이 더 많다.무역부문은 5백61억원 적자인 반면 건설은 2천9백87억원 흑자였다.
올해부터는 건설부문 외형이 처음으로 무역부문을 앞설지도 모른다. 종합상사 매출에서 ‘거품’을 빼기 위해 그룹 계열사 수출대행분은 수수료만 매출로 잡도록 법 규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30조원을 넘던 삼성물산 무역부문 매출은 올해 당장 4조원 규모로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삼성물산의 경우 전체수출에서 70%를 차지하는 계열사 수출은 대개 ‘박리다매’형이기에 이처럼 무역수익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다른 재벌 종합상사도 대동소이하다. LG상사의 경우 지난해 매출(19조5천억원) 중 70%(14조2천억원)를 무역에서, 나머지 30%(5조3천억원)를 패션의류 유통에서 벌었지만 수익은 정반대로 무역이 30%, 전량 내수판매하는 패션이 70%를 차지했다.
LG상사가 패션 외에 캐논 카메라 수입 판매 등 내수 사업을 강화하는 것도 결국 무역업의 낮은 수익성을 만회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SK글로벌은 이미 에너지판매, 휴대폰 단말기 도매 등 비무역부문 비중이 무역부문을 앞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18조8천2백31억원 매출 중 에너지 판매 7조5천억원, 정보통신 2조원으로 비무역 매출이 절반을 넘어섰다. 이익 규모도 비 무역 부문이 70%로 무역부문을 훨씬 웃돈다.
종합상사들에게 따라붙던 ‘수출역군’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지는 성적표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전체 수출 중 종합상사 비중도 98년 51.9%에서 99년 51.2%, 2000년 47.1%, 2001년 37.4%, 2002년 35.1%로 급속히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존폐 위기 직면한 곳도 즐비**
종합상사 중에는 존립 위기까지 몰려있는 곳도 적지 않다. 현대종합상사는 불과 3년 전 2백50억 달러 수출탑과 대통령상을 받았음에도 지난해말 5백7억원 완전 자본잠식상태에 빠지면서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해 증권거래소 관리종목에 편입되는 수모를 겪고 있다.
SK글로벌 역시 1조5천억원대의 분식회계에 이어 추가부실 5천억원이 발각되면서 2천여억원의 자본전액잠식에 빠져 역시 관리종목으로 떨어졌다.
이에 앞서 ㈜대우의 후신인 대우인터내셔널은 99년 8월 다른 11개 대우 계열사와 함께 일찌감치 워크아웃에 들어갔으며, 올해 워크아웃 졸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
7대 종합상사에 속한 쌍용과 효성은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대외무역법상 종합상사 지정기준 2%에 2년 연속 미달했으나 관련법 개정으로 종합상사의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다.
한 때 그룹 신입사원의 지원1순위 계열사였던 종합상사, 신랑감 후보 선두자리를 차지했던 종합상사의 오늘날 위상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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