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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충돌이 아니라니까"

김민웅의 세상읽기 〈199〉

희곡 〈햄릿〉은 영국의 문호 쉐익스피어의 작품이지만, 주인공은 영국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덴마크의 왕자였고, 숙부의 배신으로 인한 왕가의 비극을 온 몸에 걸머진 채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존재였습니다.

흔히들 우유부단의 상징처럼 여기는 햄릿은 그러나 극중에서 실제로는 깊은 숙고와 행동력을 갖춘, 총명한 젊은이였습니다.

그 햄릿 앞에 동생에게 암살당하고 왕위를 빼앗긴 것만이 아니라 부인까지 잃어버린 그의 아버지가 어느 날 서글픈 혼령으로 나타나 진실을 밝힙니다. 이 순간, 햄릿의 운명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그는 추악한 음모의 진상을 드러내고 가해자들을 처단하는 것에 모든 것을 걸게 됩니다.

햄릿은 결정적인 상황이 오기까지 주변의 경계심을 피할 작정으로 미쳐버린 자처럼 행동하다가, 왕궁에 찾아온 광대패들을 통해 햄릿은 숙부의 독살행위를 연상시키는 극을 꾸미게 됩니다.

햄릿의 치밀한 계책은 적중했고 사태는 급진전하게 됩니다. 결국 누가 누구를 죽였는지 밝혀지고 책임져야 할 자는 그 책임의 무게대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작품 〈햄릿〉은 겉으로는 화려한 왕가의 뒤안길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를 보여줍니다. 권력을 잡기 위해 야만적인 일들을 태연히 저지르고, 자신의 죄과를 은폐하기 위해 또다시 새로운 음모를 꾸미는 자들의 진면목이 어떤 것인지 이 작품은 고발하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쉐익스피어는 덴마크를 빗대어 영국 왕실을 비판했던 셈이었습니다.

바로 그 덴마크에서 붙은 불이 지금 유럽 전역에 퍼지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창시자 무하마드를 조롱하는 만화가 표현의 자유를 내세워 이슬람세계를 모독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격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표현의 자유가 조롱과 모멸의 자유를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닐 터인데, 이른바 '문명 충돌'이라는 해석과 함께 불길은 마구 번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명충돌'이라는 개념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은폐하는 모호한 개념입니다. 가해자의 편에서 만들어진 해석입니다.

마치 기독교와 이슬람의 가치관 차원의 갈등과 대립인 것처럼 사태를 파악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상은 과거 이슬람권을 지배했던 서구의 식민주의적 발상이 다시 이들 이슬람권에게 상처와 충격을 주고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서구 식민주의의 오만하고 독선적인 의식은 여전히 청산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일상의 현실에서도, 가만히 있는 사람을 찔러놓고, 당한 사람이 반발한다고 해서 이걸 '충돌'이라는 말로 그 원인의 책임소재를 가리는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무하마드 조롱만화 사건은 가해자가 분명 있으며, 피해를 입은 이들이 존재하는 문제입니다.

우리와 일본 사이의 과거사도 다만 중립적인 표현인 '역사 갈등'이 아니라,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이듯이 말입니다.

햄릿이 알게 된 비밀은 숙부가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알게 된 것은, 덴마크를 비롯한 유럽이 이슬람권에 대한 지배와 모독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햄릿은 독백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그러나 오늘날 덴마크의 햄릿은 다음과 같이 대사를 쏟아내야 할 것입니다. "이슬람을 함부로 모욕한 죄를 사죄할 것인가 말 것인가?"

햄릿 가문의 비극이 부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오필리아도 잃고, 마침내 모두가 죽어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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