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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게임 이후, 이젠 가망이 없어?...더 큰 MCU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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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게임 이후, 이젠 가망이 없어?...더 큰 MCU로 출발!

[스포일러 리뷰 수다] 진정한 '페이즈1'의 종결, <엔드게임>

* 이 기사에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예고됐던 돌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국내 개봉 11일 만인 4일 관객 1000만 명을 넘겨 국내 개봉 영화 사상 가장 단기간에 1000만 명을 넘긴 영화가 됐습니다. 지난 11년 간 이어진 마블 스튜디오의 독자 세계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의 중요 사건인 '인피니티 사가'를 종결하는 영화라는 점, 그간 축적된 팬덤이 폭발한 영화라는 점 등이 흥행 돌풍의 주역으로 평가됩니다.

마블 코믹스의 오랜 팬으로 <프레시안>에도 미국 코믹스 세계를 여러 차례에 걸쳐 소개한 최원택 칼럼니스트를 3일 저녁 만나 <엔드게임>에 관한, 나아가 지난 11년의 MCU에 관한 수다를 떨었습니다. 이미 여러 유튜버가 이 영화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만큼, 영화 내용이나 특정 사건에 관한 자세한 정보 전달에 집중하기보다, MCU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에 우리는 집중했습니다. 지난 3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나눈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다시금 강조합니다만, 아래 본문은 <엔드게임>에 관한 강력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스크롤을 내리기 전 반드시 이 점을 고려해주시기 바랍니다.

▲ <어벤져스: 엔드게임>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엔드게임> 어떻게 봤나

이대희(이하 이): <엔드게임>이 예상한 대로 엄청난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스크린 독점 논란이 재현되기도 했죠. 스크린 독점은 반드시 해결돼야 할 문제인 듯합니다. MCU를 즐기지 않는 관객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아예 없는 상황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이 문제를 다룰 예정인데,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본론으로 돌아가, <엔드게임>을 어떻게 봤는가를 얘기해 보죠. 전 인피니티 사가를 종결하는 작품으로서는 충분히 만족했지만, 단독 영화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뒤에 차차 얘기가 나오겠지만 몇몇 인물에 갑자기 부여된 드라마가 설득력을 지니지 못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제작진이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밝히는 이야기가 많은데,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관객을 쉽게 설득하지 못했다는 증거죠.

최원택(이하 최): 저는 지난 11년간 MCU에 정이 많이 들어서 공정한 평가를 못할 것 같아요. 이성적으로는 아쉬운 장면이 떠오르지만, 감정적으로는 <엔드게임>에 만족합니다. 다중인격을 유발하는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제 안에 갑론을박, 여당야당이 있어요. '이 정도면 됐다', '재미있었다'는 파도 있고 '겨우 이 정도였나?' 싶은 파도 있고요. 어쨌든, 지금까지 꾸준하게 MCU를 본 관객들이 이 영화 개봉 전 숱한 추측을 했는데 이를 확인하는, 보물 상자를 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엔드게임>은 MCU 팬을 위한 종합선물세트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예전 영화들의 주요 장면을 하나하나 오마주하면서 팬들과 작별을 고하는 느낌. 오마주 씬 중 특별히 인상 깊었던 장면이 있나요?

최: 일단 누구나 "나는 아이언맨이다" 씬을 떠올릴 것 같네요. 아이언맨을 향한 경의의 장면이었죠. 그 덕분에 토니 스타크의 장례식 씬에서 관객이 더 크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고요. 팬들 사이에서는 두고두고 회자될 장면이 아닐까 싶어요.

이: 아스가르드 난민들이 노르웨이 퇸스베르그에 뉴아스가르드를 세운 장면도 인상에 남아요. <토르>에서 서리거인들의 지구 침공 지점이 퇸스베르그였고, 오딘이 스페이스 스톤을 숨겨둔 곳이자 레드 스컬이 스페이스 스톤을 찾은 곳도 퇸스베르그인데, 이곳이 결국 아스가르드와 마지막까지 인연을 맺게 되네요. MCU 토르 신화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서 수미상응을 이룬 느낌이랄까요.

코믹스 <토르: 옴니버스>를 보신 팬이라면 아스가르드 신들이 지구에 난민으로 와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가 기억나실 텐데, 그 무대가 코믹스에서처럼 미국이 아니라 퇸스베르그였다는 점도 긍정적으로 보였어요. 향후 드라마 <로키> 시리즈에서도 퇸스베르그를 중요하게 다뤄줬으면 해요.

▲ 코믹스 <토르: 옴니버스>. 이 작품에서 라그나로크 이후 난민이 된 아스가르드인들은 지구의 미국 오클라호마 시 외곽에 뉴아스가르드를 세운다. ⓒ시공사

최: 캡틴 아메리카의 엉덩이를 소재로 "이것이 미국의 엉덩이지"라는 대사가 나오는 부분이 자꾸만 머리에 맴돌아요. 마치 후크송처럼 그 장면만 계속 되새겨지네요. 다른 히어로들이 한 이야기를 결국 나중엔 캡틴 아메리카도 받죠. 생각지 못한 장면에서 같은 대사를 반복하는 건 코미디의 기본이에요. 캡틴 아메리카는 MCU 초반에는 고지식하고 경직된 인물이었는데, 인피니티 사가의 결말에 이르러서 등장하는 이런 코미디로 그가 다른 재치 있는 히어로들과 어우러지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요.

아무래도 가장 감동적이었던 장면은 토니 스타크가 과거로 돌아가 아버지와 포옹하는 부분이었어요. 현실에선 이루지 못했지만, 다중우주의 힘을 빌려 생전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아쉬움을 해소하죠.

다중우주 본격 등장

이: <엔드게임>에서 특히 짚어 볼 부분을 하나하나 얘기해 보죠. 우선 다중우주 얘기를 해야 할 듯해요. 과거로의 이동을 통해 다중우주가 열린다는 게 <엔드게임>의 기본 설정이죠. 이 설정을 어떻게 보셨어요?

최: 영웅들이 양자영역을 통해 과거로 돌아가 문제 해결의 열쇠를 얻고,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다중우주가 열리죠. 다중우주로 인해 향후 MCU가 더 풍부해질 가능성이 열렸다는 점을 중요하게 평가하고 싶어요.

다중우주를 본격적으로 스크린에 도입한 작품이 있죠. MCU는 아니지만, 애니메이션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입니다. 코믹스 팬이라면 누구나 아실 텐데, 스파이더맨 시리즈에서 다중우주는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되는 소재입니다.

1990년대에 SBS에서 스파이더맨 애니메이션을 방영했는데, 다중우주 개념이 나왔어요. 불행히도 당시는 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이가 많지 않았죠. 하지만 이제는 관객이 이를 쉽게 소화할 수 있는 시대가 됐습니다. 일본 만화의 영향력이 큰 한국에서 과거 공중파 방송사가 방영한 마블 코믹스의 애니메이션은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애니메이션에서 제시된 과학적인 소재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작품에서도 충분히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판타지 같은 상황들조차도 그렇죠. '충분히 발달한 과학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는 아서 C. 클라크의 말처럼 다중우주 역시 그런 것이었습니다.

마블 코믹스 팬이라면 <엔드게임> 이후 다중우주가 향후 MCU에 큰 영향을 주리라는 생각에 아주 기뻐했을 거예요. "그동안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에서 빈번하게 쓴 소재를 이제야 영화에서도 보게 되는구나"하고요. <엔드게임>에서는 다중우주가 서사를 종결하는 장치로 쓰였지만, 더 크게 보면 서사를 본격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읽혀요.

이: 부정적으로 보자면 히어로들이 타노스를 물리치기 위해 다중우주를 이용함에 따라 추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여럿 생겼어요. 이런 점이 팬들의 피로감을 키우게 되지 않을까도 싶네요.

최: 영화 제작자가 아닌 팬 입장에서 '왜 저런 설정 충돌을 방치하지' 하는 생각이 들 수는 있어요. 하지만 바깥에서는 알지 못하는 여러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영화가 영향 받았을 수도 있겠죠.

11년간 한 세계관을 이어간다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엔드게임> 정도면 비록 어느 정도 아쉬움이 보인다손 쳐도 거대 사가(saga)를 잘 마무리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대세에 지장이 없는 한 어느 정도 설정 충돌이나 아쉬운 점은 넘어가도 될 듯합니다. 세세한 충돌 설정을 따지다 보면 한도 끝도 없거든요. 저도 일단 디테일한 설정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평가가 박해지기 시작합니다.

블랙 위도우가 왜...?

이: <인피니티 워>가 전체 사가의 결말을 향해 질주하는, 화려한 액션이 빛나는 영화였다면 <엔드게임>은 영웅들과 작별을 고하느라 드라마가 더 강조된 느낌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특히 아쉬운 장면이 블랙 위도우의 죽음입니다. 드라마에 힘을 준 영화에서 정작 블랙 위도우가 죽어야 할 당위는 드라마적으로 충분히 설득되지 않았어요. 뜬금없이 캐릭터를 소모해버린 느낌이랄까요.

다른 영웅들의 경우 긴 시간 여러 편의 영화에서 나뉘어 묘사된 드라마가 그들의 행동에 설득력을 부여해요. 아이언맨이 대표적이죠. 여러 편의 영화를 통해 이기적이고 자신만 알던 캐릭터가 희생을 기꺼이 감내하는 영웅으로 성장하기에 <엔드게임>에서 그의 핑거 스냅이 설득력을 지녔어요. 하지만, 블랙 위도우의 드라마는 과거 마블 영화에서 충분히 묘사되지 않았어요. 일부 '떡밥'을 통해 과거 자신의 일에 죄책감을 가진 인물이라는 정도가 전부였죠.

최: 적잖은 여성 관객이 블랙 위도우의 죽음에 분노한 것 같아요. 중요한 여성 캐릭터를 도구처럼 소모해버리고 끝냈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에요. 저는 보르미르 행성 설정 자체가 문제라고 봐요. <인피니티 워>에서도 같은 지적이 나왔는데, 제작진이 보르미르에서 뜬금없이 타노스의 행동에 억지 당위성을 부여하려 했고, 이를 위해 여기서도 여성인 가모라를 희생시켜버리죠.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해서는 가장 아끼는 영혼을 내놔야 하는데, 이 설정을 만족하기 위해 <인피니티 워>에서 타노스가 가모라를 아꼈다는 서사를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죠. 실제 루소 형제가 여성을 이렇게 소모품으로 사용했다는 점 때문에 여성 팬덤으로부터 적잖은 비판을 받았어요.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엔드게임>의 마지막 액션에서 여성 히어로만을 집중 조명하는 씬을 집어넣는데, 그 역시 뻔한 생색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어요. 제작진이 "여성 히어로를 하찮게 다룬다고 여러분께서 지적을 많이 하셔서 저희가 이런 장면을 마련했어요"라고 변명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왜죠?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이: <엔드게임>의 액션은 어떻게 보셨어요? 장르의 특성상 히어로 영화에서 액션은 캐릭터 정체성을 보여주는 장치로 아주 중요한데, <엔드게임>의 액션은 <인피니티 워>에 비해서는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었어요. 물론 모든 어벤저가 모이는 장면은 전체 인피니티 사가에서 첫 손에 꼽아야 할 명장면이었지만요. 아마 영화를 보신 분이라면 캡틴 아메리카가 "어벤져스 어셈블!"을 외치는 순간 누구나 두 주먹을 불끈 쥐었을 거예요.

<인피니티 워>의 주인공이 타노스였다면 <엔드게임>의 주인공은 첫 어벤저, 특히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였다고 할 수 있을 텐데, 제작진이 이 둘과의 작별을 위해 둘의 액션과 서사에 특히 힘을 준 반면, 다른 히어로의 액션 비중은 적어서 아쉬웠어요.

최: 캡틴 아메리카가 묠니르를 드는 장면, 여성 히어로들이 나란히 서는 장면, 초대 히어로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토르가 나란히 서서 타노스를 대면하는 장면, 캡틴 마블이 등장하는 장면 정도가 화려하게 묘사되고, 다른 액션의 비중은 조금 적었죠. 특히 언급하고 싶은 건 캡틴 아메리카가 묠니르를 드는 장면인데, MCU 내내 자신은 어울리지 않는 현실에서 전쟁을 치르던 그가 완전한 영웅이 되는 순간을 잘 묘사했어요.

저는 사실 어느 순간 MCU에서 액션에는 큰 의의를 두지 않게 됐어요. 저에게 좋은 액션이란 "어차피 착한 편, 우리 편이 이기기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우리 편이 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과 스릴을 주는 액션이거든요. 영화에서는 그런 스릴감을 주기 위해 무용에서 안무를 짜듯 합을 맞추죠.

이를 가장 잘 보여준 영화가 <캡틴 아메리카: 시빌워>라고 생각하고요. 영웅들이 일대일로 싸우는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해서 각 캐릭터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줬죠. 각자의 장단점이 있는 장기말들이 서로를 잡기 위해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움직이는 걸 보는 쾌감에 비교할 만하달까요.

그런데 MCU가 점차 커짐에 따라 악당들이 강해지고 영웅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이처럼 정교하게 연출한 액션을 만들기는 매우 어려워졌어요. 타노스와 히어로들이 일대일로 맞붙는 장면에서 제가 좋아하는 액션들이 종종 나오기는 했지만 빈도수는 압도적으로 줄었죠. 많은 액션 장면이 타노스가 거느린 '특징 없는' 대군과 싸우는 단순한 장면이어서 영웅들의 액션 합이 두드러질 수 없었어요.

하지만 이것은 MCU 유니버스가 커져가면서 발생한 필수불가결한 상황이라 양해할 만합니다. 대규모 전투 씬이 등장할수록 액션의 화려함은 떨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세계관이 커지는 만큼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할 부분이라고 봐요.

▲ 인피니티 사가. 지난 11년을 이어온 서사시.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인피니티 사가가 진정한 '페이즈1'

이: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이 MCU 페이즈3의 끝임이 알려졌지만, <엔드게임>으로 실질적 종결이 이뤄진 듯합니다. 그런데, 지난 22편의 영화 전체를 '인피니티 사가'로 본다면 이제야 MCU의 진짜 페이즈1이 끝난 느낌이에요. 12년에 걸쳐 소년의 실제 성장 모습을 담은 영화 <보이후드>처럼, 인피니티 사가가 11년에 걸쳐 촬영된 한 편의 영화처럼 느껴진달까요.

다른 한편으로는 MCU를 단순한 상업 영화로 보기보다는, 디즈니랜드의 극장판이라고 봐야한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인피니티 사가에 관한 전체 평을 듣고 싶습니다.

최: 인피니티 사가, 곧 MCU 프랜차이즈는 엔터테인먼트 영화 생태계를 바꾼 작품이라고 봐요. 기존 극영화 스타일의 상업 영화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제작자가 전면에서 전체 세계관을 관리하는 MCU가 특이한 모델로 인식되겠으나, MCU로 상업 영화를 접한 더 젊은 층에게는 MCU가 자연스러운 상업 영화 모델로 인식될 겁니다. DC 영화 시리즈나 쥬라기 월드 등 다른 프랜차이즈도 MCU처럼 세계관을 연결하려는 시도를 계속 하고 있죠.

이: MCU 프랜차이즈가 패러다임을 바꿨다고 말씀하셨는데, <아이언맨>이 2008년 개봉할 당시는 이 같은 거대한 세계관의 제작 준비가 구체적으로 되진 않았어요.

최: 추측입니다만, 한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신흥 영화 시장의 강력한 반응이 제작진으로 하여금 대형 유니버스로 전체 시리즈를 묶는 과감한 시도를 결정할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제작진도 자신들의 지극히 미국적 서사를 아시아와 같은 다른 세계에서 이처럼 쉽게 받아들이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마블 코믹스를 보신 분이라면 알겠지만, 미국 만화책의 정서는 일본 만화 정서와 다릅니다. 1990년대 후반에 미국 코믹스는 을지로 지하상가 외국도서 중고서점에서 살 수 있었어요. 저는 당시 코믹스를 처음 접했는데, 우리 정서와 많이 달랐죠. '엑스멘' 프랜차이즈의 경우 초기에는 일본인이 다시 그린 만화책이 한국에 들어오곤 했어요. 그만큼 미국과 일본 만화 세계의 정서가 다르죠. 한국은 당연히 일본 만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나라고요. 미국적 서사가 힘을 쓰기 어려운 토양이었죠. 그랬던 만큼 <아이언맨>이 예상외의 흥행 성적을 거두는 걸 보고 저도 놀랐어요.

히어로 영화에서 중요한 점이 캐릭터 구축인데, 인피니티 사가가 여러 영화를 통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도 높이 평가받을 만 하다고 봐요. 대표적인 사례가 아이언맨과 토르죠. 물론 일부 캐릭터는 여전히 평면성에 갇혀 있지만, MCU의 여러 캐릭터는 다양한 사건을 통해 입체성을 얻어 단편으로 끝나고 마는 다른 액션 영화 주인공에 비해 더 생생한 인격을 갖게 됐어요. 앞으로 다중우주가 MCU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면 이런 입체감은 더 강화되겠죠.

이: 한국에 한정해 번역 논란도 얘깃거리가 될 듯해요. 자세한 이야기는 이미 누리꾼 사이에 충분히 공유됐으니 넘어가기로 하고, 아쉬운 부분 하나만 이야기하자면 토르와 드랙스 더 디스트로이어의 대사 특성이 무시됐다는 점을 들고 싶어요. 토르를 비롯한 아스가르드인과 드랙스의 캐릭터성 구축에 예스러운 말투, 딱딱한 문어체 말투가 중요한 역할을 하죠. 그래서 국내 코믹스의 경우 이들의 말투는 궁서체로, 다른 이의 말투는 고딕체로 글씨체를 달리 해서 캐릭터성을 부각합니다. 그런대 MCU 번역은 이를 충분히 살리지 못해 아쉬움이 크더군요.

최: 번역가가 영상을 보지 못한 채 대본만 받아서 번역을 하다보니 생기는 문제가 있다는 해명이 있더라고요. 또 자세하고 분량이 많은 자막은 영화를 보는데 방해물이라 실제 대사보다 내용을 확 줄여야 한다는 기본적 언어 문제가 있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해명에도 결과물에 대한 아쉬움은 변함이 없습니다. 번역의 아쉬움은 성우들이 더빙한 버전을 보시면 어느 정도 해소되실 겁니다. 제작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원래 영화 의도가 충분히 반영됐어요. 한국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를 듣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스트리밍 플랫폼과 포털 사이트의 유료 다운로드에서 더빙 버전 마블 영화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안녕, 아이언맨.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인피니티 사가=아이언맨 사가

이: <엔드게임>으로 인해 인피니티 사가가 종결되면서 몇몇 캐릭터가 은퇴했습니다. 토니 스타크가 사망했고, 캡틴 아메리카는 은퇴했으며, 블랙 위도우도 사망했죠. 일단 비전도 사망한 상태이며 로키 역시 그러합니다(시간여행으로 인해 뉴욕 사태 당시의 로키는 스페이스 스톤을 이용해 어딘가로 사라졌습니다만). 계약 문제로 인해 토르의 미래 역시 불확실한데, 토르는 차기작에 출연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몇몇 중요한 캐릭터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면 좋을 듯합니다. 우선은 인피니티 사가의 주인공이라 할 만한 아이언맨 이야기를 해 보죠.

최: 인피니티 사가는 다른 말로 '아이언맨 사가'예요. 프랜차이즈에서 가장 비중이 컸고, 가장 크게 변화한 캐릭터죠. 더 할 말이 없을 듯해요. 인피니티 사가가 끝나면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영웅과 영원한 작별을 하게 됐어요.

이: 토니 스타크가 사망함에 따라 팬덤에서는 차기 아이언맨이 누가 되느냐에 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옵니다. 하지만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존재감이 너무나 강렬해서, 아이언맨 수트를 새로 입을 인물이 과연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캐스팅하기 전에 마블의 물망에 먼저 오른 인물은 톰 크루즈였다고 하죠. 당시 마블 코믹스가 배우에 맞춰 만화책에서 토니 스타크의 얼굴에도 조금 변형을 가했다고도 하고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배우에게나 마블에게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가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겠죠.

아이언맨의 성장 서사는 전형적인 미국식 영웅의 그것이에요. 악하고 무책임한 자본가가 여러 사건을 거치면서 희생하는 숭고한 영웅으로 성장하죠. 이미 모든 걸 갖췄으나 가장 중요한 무엇, '진실한 인생'으로부터는 멀었던 이가 뒤늦게 깨달음을 얻어 무형의 무언가, 영화에서는 대의로 묘사되는 무언가를 얻어나갑니다.

그리스 신화 이래 유럽 신화에서 흔히 나오는 설정이 결함을 가진 영웅이죠. 그럼으로써 영웅이나 신이 인간성을 갖는데, 아이언맨이 MCU에서는 이 신화적 인물상의 전형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함으로써 토니 스타크는 여러 큰 실수를 저지르고, 이 실수를 반성하면서 성장합니다. 영화는 캐릭터에 유머를 부여해 이 과정을 너무 진중하지 않게 그려 아이언맨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이: 캡틴 아메리카는 어떻게 보셨어요? 아이언맨의 거울과 같은 존재인데요. 아이언맨이 캐릭터가 성장함에 따라 상황을 바꾸는 인물인 반면, 캡틴 아메리카는 고정된 캐릭터가 급변하는 상황이 주는 역경을 딛고 올라서는 인물입니다. 이 설정마저 아이언맨과 정반대라 재미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캡틴 아메리카는 결코 수동적으로 사건에 휩쓸리지 않고, 부딪치는 모든 역경을 이겨냅니다.

최: 게오르규의 <25시>라는 소설이 있어요. 이 소설의 주인공 요한은 루마니아 인이지만 유태인으로 몰려서 2차 세계대전 당시 가스실로 끌려가 죽어야 할 운명에 처하는데요. 나치의 골상학자가 그의 외모를 가장 아리아인다운 외모로 평가한 덕에 살아남고 나치 우생학의 살아있는 선전물이 됩니다. 기구한 운명의 희생자죠. 캡틴 아메리카도 이런 기구한 운명의 희생자 같아요.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전의 스티브 로저스는 토르나 아이언맨처럼 태생적인 영웅, 그러니까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은 권력이나 힘, 부유함, 지능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습니다. 허약한 체력과 건장함과는 거리가 먼 체구에도 불구하고 낭만적인 애국심과 지기 싫다는 악과 깡만 가진 인물이었죠. 그러다가 생체실험으로 육체적 강함을 얻고 자신이 생각했던 군인과는 거리가 먼 전쟁 선전물이 되죠. 프로파간다 과정이 흥겹고 코믹하게 그려졌지만, 실은 매우 서글픈 상황입니다. 결국 그는 역경을 딛고 나치와의 전쟁에 참전했지만 빙하 속에 갇혀 수 십 년 후에 깨어나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 적들과 싸워야만 했습니다.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죠.

캡틴 아메리카는 워낙 미국 색채가 강렬한 캐릭터이다 보니 초기에 한국에서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기실 저도 <캡틴 아메리카: 퍼스트 어벤저> 때는 어느 정도 반감을 가졌고요. 하지만 그의 기구한 인생사가 주목받고, 그가 마냥 ‘미국 만세’의 상징이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윈터 솔져>에 이르러 제 이름을 얻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보통 미국인이 바라는 선한 미국'의 모습을 상징하는, 말하자면 마블의 슈퍼맨과 같은 역할을 맡은 캐릭터예요. 고지식한 원칙주의자죠. 코믹스에서는 미국의 폭주에 가장 앞서 반기를 드는 모습도 나옵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군사 개입을 선택하면서 자국민을 상대로 강력한 반 파시즘 프로파간다를 펼치는데, 이에 동조한 이들은 세계를 단순한 선과 악으로 나누는, 어찌 보면 낭만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전쟁에 뛰어들죠. 딱 그 시기에 등장한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는 MCU에서도 이 같은 모습을 이어갑니다.

캡틴 아메리카는 이 낭만주의적 세계관을 갖고 있기에 MCU에서 현실과 끊임없이 불화합니다. 물론 그 시절에도 미국이 그저 선하지는 않았지만, 자기가 생각한 선한 미국과 전혀 다른 MCU 속 미국의 모습에 그는 당황하고 실망했을 겁니다. 그가 있어야 할 곳이 현실이 아닌, 페기 카터가 기다리는 과거라는 암시는 여러 작품에서 끊임없이 제시되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캡틴 아메리카라는 이름을 버리지 않은 것은 자신이 간직한 선한 미국에 대한 신념을 그가 지녔기 때문입니다.

<윈터 솔져>에서 실드와 맞서는 이유, <인피니티 워>에서 비전을 살리려는 모습에서 그의 선택은 아주 명쾌하죠. 이 선택을 내리기까지 그는 분명히 갈등했을 겁니다. 하지만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 전 허약했던 스티브 로저스로서 만들어왔던 선한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신념 때문에 그는 현실을 닮은 MCU 속 미국과 불화하는 선택을 명쾌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MCU 내내 그런 정체성을 고수하면서 전쟁 영웅으로서 살아온 캡틴 아메리카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슬픔을 안고 있었죠. 이 같은 상처가 관객에게 공감을 줬기에 <엔드게임>에서 그의 은퇴가 설득력을 지녔습니다.

▲ 캡틴 아메리카는 <엔드게임>에 이르러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간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설득력 부족한 타노스의 대의

이: 토르는 MCU가 진행되면서 힘겹게 이 세계관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반 영화인 <토르>, <토르: 다크월드>에서 좀처럼 캐릭터가 자리를 잡지 못하다가 <토르: 라그나로크>에 이르러서야 그는 온전히 아스가르드의 수장으로 성장하는데, 캐릭터가 성장하는 만큼 큰 희생을 치릅니다. 부모를 다 잃고, 겨우 진심어린 화해를 한 로키는 눈앞에서 사망하죠. 친했던 모든 이가 희생된 걸 넘어 그가 겨우 살린 난민의 절반도 타노스에게 잃습니다. <엔드게임>에서 완전히 망가진 그의 모습이 단순한 개그를 넘어 관객의 공감을 얻은 이유일 겁니다.

최: 저는 <엔드게임>에서 토르가 망가진 모습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북구 신화의 신이거든요. 그 신화 속 토르처럼 수천 년을 살아 온 존재로 다른 영웅과는 발 디딘 세계 자체가 다릅니다. 지닌 능력도 어마어마하죠.

북유럽 신화에서도 그렇습니다만, MCU 토르는 고대 북구 전사의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입니다. 그가 세상을 단순히 보는 건 지배자의 혈통과 강력한 힘을 지녔기 때문이에요. 돌이켜 보면 MCU에서 토르의 웃음 포인트는 인간적 평범한 모습을 연출할 때입니다. 스턴건에 기절하는 모습, 팬들과 사진을 찍는 모습 등이죠. 토르가 워낙 특별한 존재이기에 평범한 모습이 개그 소재가 되는 거죠.

토르는 특별한 존재인 만큼, 역경과 고난에 대한 그의 반응 역시 평범한 우리와는 달라야 해요. <엔드게임> 초반에서 토르가 타노스의 핑거 스냅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큰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자포자기해 망가진 모습이 연출되죠. 저는 그가 우주 생명체 절반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망가졌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 순간에 내가 타노스의 가슴이 아니라 목을 노렸어야 했는데'로 끝나는 되새김도 한몫했다고 생각해요. 기록 달성에 실패한 운동선수 정도의 시각으로 핑거 스냅 사건을 대한 달까요. 그래서 그 자책감에 대한 도피처로 운둔과 알코올 중독을 택한 거죠. 깊고 진지한 죄책감이라면 그런 단순한 은둔과 자기학대로 도피할 수 있었을까가 의문입니다. 가족의 죽음 역시 우주의 종말이 아예 스포일러로 나온 북구 신화 속 신답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절반은 우주적 존재이고 절반은 내면이 덜 자란 존재인 스타 로드와 가족의 죽음을 두고 그가 농담 경쟁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인피니티 사가를 이끈 또 다른 한 축인 타노스 이야기를 해 보죠. 여러 MCU 영화에 다양한 악당이 등장했는데, 타노스가 일종의 '끝판왕'이죠.

최: 저는 타노스에게 실망했어요. 마블은 특히 <인피니티 워>를 통해 타노스에게도 자신만의 대의가 있음을 강조했죠. 그런데, 그의 대의에 전혀 공감하지 못했어요. 처음 그가 등장할 때부터 저는 타노스가 어떤 인물인지, 그의 목적이 무엇인지가 계속 궁금했어요. 그런데 <인피니티 워>에서 그 목적을 아는 순간, 실망할 수밖에 없었어요.

자원은 유한하고 생명체는 이를 무한정 소비하니 우주를 위해 생명체 절반을 줄여야 한다는, 19세기 멜서스주의자 수준의 사고를 시간여행도 가능한 초과학 시대 인물이 한다? 그리고 그 '정당한' 신념을 위해 그간 평면적 존재였던 그가 갑자기 딸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부성애를 지닌 인물이 된다? <인피니티 워>의 보르미르 씬을 적잖은 관객이 뜬금없는 설정으로 받아들이셨을 텐데, 그의 당위가 전혀 공감대를 얻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타노스의 당위가 설 자리를 잃으니 뒤늦게 덧입혀진 그의 갈등도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많은 팬이 MCU 최고의 악당으로 제모 남작을 꼽는데, 그의 당위가 비록 잘못됐으나 그 감정에는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캡틴 마블과 블랙 팬서 이야기는 이제 시작

이: 주요 인물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도 될 듯합니다. 아쉬운 영웅이 있다면요? 저는 캡틴 마블과 블랙 팬서를 꼽고 싶습니다. 히어로 영화에서는 특히나 캐릭터 구축이 중요한데, 캡틴 마블과 블랙 팬서의 경우 아직 캐릭터가 확연히 자리 잡지 못한 듯해요. 이들이 어떤 인물인지를 솔로 영화를 보고 나서도 잘 모르겠더군요.

캡틴 마블의 경우 제작진이 여성주의적 요구와 보수적 선택 사이에서 표류한 듯해요. 아예 드라마 <제시카 존스>처럼 더 당당하고 철저하게 여성주의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블랙 팬서의 경우 제작진이 그와 킬몽거의 갈등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의 그것으로 비유하려 한 듯한데, 킬몽거가 더 설득력 있는 인물로 느껴졌어요. 토르도 초반에는 그러해서 <토르>를 본 이후에는 오히려 로키의 서사가 더 주인공의 그것처럼 느껴졌죠. 토르는 <라그나로크>에 이르러서야 겨우 제자리를 잡는 데 성공했습니다.

▲ 캡틴 마블.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최: 캡틴 마블과 블랙 팬서의 경우 당사자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봐요. 수다를 떠는 우리는 남성이고 흑인이 아니기에 두 캐릭터의 의의를 백퍼센트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을 전제해야 해요.

시각을 넓혀 보면 기존에도 다른 흑인 영웅 영화가 있었어요. 하지만 블랙 팬서는 아프리칸의 뿌리를 당당히 드러낸 캐릭터예요. 웨슬리 스나입스의 블레이드나 MCU의 워머신, 팔콘 등은 인종차별과 관계없이, 그저 피부색만 검은 영웅이죠. 이름도 미국인, 더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백인 노예 주인들의 이름을 갖고 있고요.

영화 <블랙 팬서>는 미국의 노예제 역사와 여전히 존재하는 인종차별부터 세계사 속에서 폄하되어온 아프리카 여러 국가의 역사와 아프리카인들의 정체성을 적극적으로 드러냅니다. 이 당당함이 강력한 설득력을 지녔기에 세계적인 흥행 돌풍과 찬사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점 자체가 의의가 있죠.

캡틴 마블도 마찬가지예요. 영화 <캡틴 마블>에서 캡틴 마블의 마지막 전투 씬을 두고 우리가 일전에도 대화를 나눈 적이 있죠. 여성으로서 남성 지배 체제를 극복하는 그의 서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마지막 전투 씬에서 캡틴 마블 고난의 장면이 조금 더 나오고, 그가 이 전투를 더 다이나믹하게 극복하는 장면이 필요했다는 게 기자님의 의견이었는데, 저는 고난의 장면이 이미 영화 속에서 충분히 제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자동차 경주와 군사훈련에서 겪은 부상이나 군사훈련장과 술집에서 남자 동료나 파일럿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캡틴 마블을 평가하는 장면이 그런 고난들이죠.

스타포스에서 욘 로그가 조언이랍시고 해주었던 말 역시 캡틴 마블을 우회적으로 좌절시키고 능력을 온전하게 발휘하는 것을 방해했던 일종의 고난이자 역경이었습니다. 그런 고난을 딛고 그야말로 다시 일어서서 각성한 캡틴 마블이니까 최후의 싸움을 아주 시원하고 명쾌하게 끝내버리는 그 장면이면 충분했다고 생각해요.

둘이 MCU의 전면에 등장한 것만으로도 존재 의의가 있어요. 앞서 토르 이야기가 나왔는데, 토르도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자리를 잡았듯 두 캐릭터도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가 더 많을 거예요.

<엔드게임>, 더 큰 MCU로의 출발점

이:
인피니티 사가의 영웅 중 아쉬운 캐릭터는 누구인가요?

최: 블랙 위도우와 호크 아이죠. 둘은 필요할 때 적절히 소모되고 말았고, 드라마가 부족했죠. 이 점을 고려해 초대 어벤저의 은퇴 무대였던 <엔드 게임>에서 루소 형제가 둘에게도 각각의 드라마를 줬는데, 호크 아이의 경우 부성애였고 블랙 위도우는 희생이었어요. 그러나 영화 한 편으로는 각 캐릭터에게 부여된 드라마가 너무 짧아서 블랙 위도우가 어이없이 소모되고, 호크 아이의 부성애는 영화 초반에만 사용되고 끝나버리죠. 상황에 따라 쓸모가 결정되고 거기에 따라 성격이나 설정도 유동적인, 가장 수동적인 영웅들이 아니었나 싶어요.

이: 인피니티 사가를 끝으로 MCU에 큰 변화가 일어날 예정입니다. 크게 세 가지 요소를 들 수 있을 듯해요. △중요 영웅들이 퇴장해 공백이 생겼고 △디즈니 플러스가 출범하면서 MCU가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이야기를 유연하게 확장할 계기가 마련됐고 △엑스멘으로 대표되는 20세기 폭스사의 영웅들이 MCU에 편입하게 됐다는 점이죠. 이 점에서 <엔드게임>은 인피니티 사가의 종결인 한편, 더 큰 세계로의 출발점이라 칭할 수 있겠네요.

최: 코믹스 세계에 무한한 이야기가 있는 만큼, 기존 영웅의 공백은 새로운 영웅이 충분히 메울 수 있어요. 당장 이터널스와 샹치의 영화화가 준비 중이에요. 케빈 파이기가 요즘 뜨는 젊은 영웅인 카말라 칸(미즈 마블)도 영화화할 수 있다고 얘길 했고요. 오히려 지금 케빈 파이기는 등장시켜야 할 영웅이 너무 많아서 골머리를 앓고 있을 거예요.

여기에 다중우주 설정까지 MCU로 편입되었으니 한 캐릭터도 다양한 버전으로 같은 시공간에 등장할 가능성도 열렸죠. 특히 이미 두꺼운 팬층을 지닌 엑스멘이 MCU에 합류한다면, 그야말로 온전한 마블 유니버스가 열리게 됩니다. MCU를 보면서 자라난, 또 MCU로 마블 코믹스를 접한 한국의 마블 히어로 팬들에게는 더 바랄 나위 없는 미래가 될 것 같습니다.

▲ MCU 이벤트의 시작, <어벤져스>(2012).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최애&최악의 MCU 영화

이: 마지막으로 최애 작품과 최악 작품을 꼽아보죠. 저는 인피니티 사가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으로 <윈터 솔져>와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를 꼽고 싶습니다. 루소 형제가 MCU에 개입하기 시작한 작품인 <윈터 솔져>는 캡틴 아메리카라는 중요한 캐릭터를 MCU에 필수불가결한 존재로 만들었다는 점, 기존까지 흐릿했던 MCU의 장르적 특성을 성공적으로 부각함으로써 다른 영화들도 과감한 시도를 할 길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MCU 최고의 작품으로 꼽고 싶습니다. 액션 연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었다고 보고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그야말로 디즈니 영화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가족주의를 전면에 내세우고 유머로 이를 풍부하게 만드는 작품이었는데, 특히 배우들과 캐릭터의 합이 너무나 잘 맞아서 마음 편히 영화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언맨>과 <어벤져스>의 의의도 평가하고 싶네요. <아이언맨>은 그야말로 모든 MCU 사가의 시작이었다는 점을, <어벤져스>는 MCU를 다른 히어로 영화 장르와 확연히 다른 세계로 확인케 했다는 점을 평가할 만하다고 봅니다.

최악의 작품으로는 <토르>와 <토르: 다크월드>,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꼽고 싶습니다. <토르> 시리즈의 경우 연출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두 영화에서 주인공 토르가 스토리에 밀려 수동적으로 표류하고, 조연인 로키가 사실상 진주인공이 되어버렸다는 점이 문제죠.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말 많이 하는 악당인 울트론의 당위가 설득력을 지녀야 했는데, 그저 말만 많은 캐릭터였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최: 저의 최애 작품은 어벤져스가 처음 뭉쳐서 서로의 케미를 확인한 <어벤져스>와 그렇게 모인 어벤져스들이 서로 편이 나뉘어 싸운 <시빌 워>입니다. <어벤져스>는 유머와 액션의 배합이 제 취향에 가장 잘 맞았고요. <시빌 워>의 경우 <윈터 솔져>에서 시작한 MCU의 어두운 역사와 <어벤져스>에서 보여준 유머와 액션의 배합이 균형을 이룬 작품이었습니다. 제가 코미디를 좋아하다보니 이 두 작품 다음의 최애작으로는 <앤트맨>과 <토르: 라그나로크>,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가 떠오릅니다.

그런 면에서 최악의 두 작품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입니다. 인피니티 사가가 끝난 시점에서 영화 자체의 재미뿐 아니라 인피니티 사가와 얼마나 잘 어울리는 지에 대해서도 고려하게 되는데요. 두 작품 다 전체 인피니티 사가의 흐름에 크게 어울리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어벤져스> 바로 다음 <어벤져스> 영화라서 기대치가 컸는데, 설정과 구성이 산만하고 유기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울트론이라는 빌런의 존재감도 약했고요. 물론 매력적인 캐릭터인 완다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그저 <시빌워>의 빌미를 제공하기 위해서 영화 한편이 필요하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 2>도 전작 덕분에 기대치가 커져서 상대적으로 제가 저평가한 것 같습니다. 전체적인 인피니티 사가와는 동떨어진 내용에 빌런 역시 저에게 특별한 흥미나 매력을 주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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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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