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각국 정부들이 반전-반미 시위가 반정부적 성격으로 변질되는 데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런 양상은 특히 매주 금요일 대예배일을 계기로 더욱 증폭되는 양상이다. 이라크전 개전 다음날인 21일 대예배일에 중동 각국에서 대규모 반전시위가 전개된 이후 간헐적으로 이어져 오던 시위는 다시 28일 대예배일을 맞아 전후 최대규모의 시위가 벌어지며 시위양상도 한층 격렬해졌다.
외신들은 28일(현지시간) "28일 금요 예배일 개전 이후 중동지역에서 최대규모의 반전 시위가 일어나고 반미 물결이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일본 지지통신은 이날 "아랍 각 국 국민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자국의 지도자들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고 분노하기 시작했다"면서 "요르단 등 각국의 시위에서 '모든 아랍 지도자들은 즉각 사임하라'는 구호가 외쳐지는 등 비판의 대상이 미-영 양국에서부터 아랍 각국의 지도자들로 확대됐다"고 전했다.
***아랍 민중, "돈 몇 푼 벌기 위해 이라크를 팔아넘기려 하나"**
이집트의 수도 카이로에서는 이슬람교 수니파의 주요 사원인 알 아즈하르 사원에서 무슬림형제단 지도자 마아문 알-호데이비가 "정의롭지 못한 침략에 반격하라"고 외치며 반전 시위를 주도했다. 집권 국민민주당과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야당이 주도한 이날 시위에는 1만5천여명이 참가했다. 시위대는 코란을 들고 이라크를 지지하는 '지하드(聖戰)'를 외쳤다. 개전 다음날 최악의 과격시위가 벌어졌던 카이로 중심 타흐리르 광장과 인근 미국 대사관 주변에는 경찰 병력이 집중 배치돼 삼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위대는 이라크를 돕기 위해 이집트군대를 파병하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미국의 압박에 굴복해 이라크 외교관을 추방한 요르단의 경우 수도 암만을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 크고 작은 시위가 잇따랐으며, 시위대는 아랍 지도자들이 "돈 몇 푼을 벌기 위해 이라크를 팔아넘기고 있다"고 비난했다. 남부 이슬람 거점 지역인 마안에서도 1만명의 반전 시위대가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을 '미국의 첩자'라고 비난하는 등 일부 아랍 지도자들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비판했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는 수만명의 반전 시위대가 "미국에 죽음을" 등 구호를 외치며 행진했다. 이는 이란에서 일어난 최초의 대규모 반전 시위로 약 2백명의 인파가 영국 대사관을 향해 돌을 던져 유리창 수십장을 깨뜨리기도 했다. 시위대는 이란에는 미국 대사관이 없는 관계로 영국 대사관을 향해 "영국의 위선자들은 이란에서 추방돼야 한다"며 반전구호를 외치며 대사관내로 진입하려고 했지만 경찰 제지로 무산됐다. 이란 정부도 성명에서 "(이라크의) 바트당 정권에는 반대하지만 이슬람 형제국에 대한 야만적 살육을 방관할 수는 없었다"고 시위 허가 배경을 설명했다
요르단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구와 가자지구에서도 이날 5만명이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의 인형을 불태우고,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며 이스라엘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촉구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특히 가자지구에서는 이슬람원리주의과격파인 하마스가 주동한 시위에는 금요예배를 마친 약 3만명이 참가했다.
이날 시위는 이라크전 개전 이후 최대 규모의 시위로, 전후 미국 주도의 중동평화 계획 실행을 기대하는 야세르 아라파트 수반에게 적잖은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었다. 아라파트 수반은 1991년 1차 걸프전 당시엔 후세인 정권을 공개 지지했지만 이번에는 전쟁 반대를 공식 입장으로 표방하면서도 이라크 정권에 대한 지지는 유보하고 있다.
아랍메리트연합(UAE)의 두바이에서도 개전후 처음으로 5천명이 참가한 반전시위가 벌어졌다. 파키스탄과 인도 출신자들이 대부분인 시위대는 이라크 국기를 머리에 두르고 "부시는 테러범" "신이여 이라크를 보호하소서"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들은 영국 대사관까지 진출을 시도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무산됐다. 수백명의 이라크인들도 시위에 가담, 이라크 반체제 인사들을 '반역자'라고 공격했다.
이슬람 최고 성지 메카가 있는 사우디 아라비아에서는 수천명의 미군 주둔을 허용하면서도 이라크전 반대라는 모순된 입장을 취하고 있는 탓인지 주로 이슬람 성직자들이 미국 주도의 전쟁을 비난하고 '침략자들'에 맞서 지하드를 촉구했다. 메카 대사원의 이슬람 성직자 셰이크 살레 빈 후마이드는 "이번 전쟁은 실패한 전쟁이며 아무도 승자가 될수 없다"고 지적하고 즉각 전쟁를 중지하라고 요구했다.
이슬람 제2의 성지인 메디나에서도 셰이크 살레 알-부데이르가 설교를 통해 '침략자'들에 맞서 지하드를 촉구했다.
***동남아 이슬람들도 대규모 시위**
이밖에 아시아의 이슬람권인 파키스탄과 인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에서도 반전. 반미 시위가 연일 계속되고 있다.
파키스탄 전역의 이슬람 사원들에서는 금요 예배일인 28일 성직자들이 예배를 통해 사담 후세인 대통령 축출을 위한 미.영군의 이라크 공격을 비난하고 신도들에게 미.영의 공격에 맞선 지하드를 촉구했다. 이슬람 성직자들은 또 미국과 영국산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에 나설 것도 촉구했다.
인도 뉴델리에서도 2만여명의 이슬람 신도들이 후세인 대통령의 초상화를 들고 조지 W.부시 미국 대통령을 비난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인도 공산당 주도로 수천명의 노동자들도 별도의 반전.반미 시위를 벌였다. 인도 남부에서는 반미시위로 미국 코카콜라 소유의 한 공장이 27일부터 이틀째 폐쇄됐으며 미국계 패스트푸드 체인인 맥도날드 상점 밖은 반미 시위대의 주요 집결지가 되고 있다.
이밖에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필리핀 곳곳에서도 각각 5천여명 안팎의 시위대가 참가한 반전-반미 시위가 벌어졌다.
특히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도 이라크전 개전 이후 필리핀 최대 규모의 반전집회가 열렸다. 여기에는 노동자, 학생, 가톨릭 신부, 이라스람 교도 등 약 3천명이 '즉각 종전' 등을 적은 플래카드를 들고 행진했다.
여성단체대표 에미 데헤스스는 필리핀 아로요 정권이 미국의 이라크 전쟁을 지지하고 있는 것을 "필리핀 국민에 대한 배반"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 이슬람교 신자는 "미국은 이라크의 무고한 시민의 생명을 뺏고 있다"면서 비난하고 즉각 공격을 중지할 것을 호소했다.
***터키, 반미 여론 90%**
미국에 대한 지지를 거부해 큰 타격을 준 터키에서는 국민의 90%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고 반미 감정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마이니치 신문은 28일 "터키의 유력언론들은 지난 26일 미사일 공격을 받은 바그다드 시장의 참상을 1면 사진으로 크게 보도하면서 '오폭으로 시민 여러명이 사상한 코소보의 비극의 재현'이라며 비판했다"고 보도했다.
터키의 국경방송 TRT에도 연일 정부기관 연구원과 퇴역장군들을 해설자로 등장시켜 '미국의 작전은 잘못됐다' '전쟁은 길어질 것'이라는 등 미국을 비판하면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전략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쿠르드 자치지구에 터키군을 파병하려는 계획이 미국의 압력으로 중단된 것에 대해 원성도 높아지고 있다. 터키의 정치상황에 밝은 한 유명 변호사는 "미국과 터키 사이가 벌어진 직접적 원인은 쿠르드 문제"라면서 "터키가 이라크 전쟁에 대해 비판하는 형태로 미국을 비판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터키의 이스탄불에서는 이라크전 개전 이후 처음으로 수천명이 시위를 벌이고 40만명의 공무원조합에서도 4~7사건 시한부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터키는 지난 84년 무장 독립투쟁을 선언한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과 접경지역에서 지금까지 수백 차례에 걸쳐 유혈충돌을 빚었왔다. 터키는 전체 쿠르드족 중 30%이상(1천2백만명)이 자국내에 거주하고 있어 쿠르드족이 독립하면 터키에도 불똥이 튈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이와 함께 터키는 이라크 전쟁 와중에 키루쿠크 등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에 대한 이권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터키의 압둘라 굴 외무장관은 지난 25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터키는 쿠르드족의 대규모 난민유입 같은 '위기상황' 발생할 경우 북부 이라크내에 20km에 달하는 완충지대를 설치한 뒤 여기에 군을 파견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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