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패스트트랙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4.3 보궐선거 이후 계속돼온 바른미래당의 내홍은 진정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패스트트랙 '4당 연대'에 고무된 손학규 지도부가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이라는 강수를 두며 정면돌파를 선언한 데 대해, 유승민계·안철수계가 대규모 연명 성명서 발표로 세를 과시하며 맞불을 놨다.
손학규 지도부 총사퇴를 촉구하고 있는 유승민계·안철수계 전현직 지역위원장 및 정무직 당직자들은 2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연석회의를 열었다. 참석자는 30여 명이었으나, 이들은 불참자를 포함해 110여 명이 연서명한 '지도부 총사퇴 촉구 및 당 재건 요청 결의문'을 발표하며 자신들이 당내 다수파임을 주장했다. 결의문에는 현직 지역위원장 49명과 전직 지역위원장 60여 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결의문에서 "지도부 총사퇴 후 일정기간 동안 당을 안정시키고 연착륙시키기 위해 한시적 비대위 체제를 가동할 것을 촉구한다"며 "비대위의 역할이 종료되면 창당 정신에 입각해 '안철수-유승민 공동체제'를 출범시키고 유승민·안철수 전 대표에게 당의 간판으로 전면에 나서 헌신할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유승민계와 안철수계가 연합전선을 본격화하며 지도부 압박에 나선 형국이다.
앞서 손학규 대표는 지난달 30일 김관영 원내대표와 공동으로 기자 간담회를 연 데 이어, 1일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을 강행하며 지도부 사퇴론을 일축했다. 공석이었던 지명직 최고위원에는 호남계 주승용 국회부의장과, 안 전 대표의 측근이었으나 손 대표 사퇴 반대 입장인 문병호 전 의원 임명됐다.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는 당 대표와 선출직 최고위원 3명, 선출직 청년위원장, 당연직 최고위원인 원내대표와 정책위의장, 지명직 최고위원 2명 등 9명으로 구성된다. 이 중 선출직 최고위원인 바른정당계 하태경·이준석·권은희(전 19대 국회의원. 현역 의원인 권은희 정책위의장과 동명이인) 최고위원은 4.3 보궐선거 이후 최고위를 보이콧하고 있다.
청년위원장인 김수민 의원도 패스트트랙 국면에서 사개특위 위원 사보임에 반발해 원내대변인직을 사퇴한 데 이어, 손 대표의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에도 반대 입장을 내며 바른정당계와 보조를 맞췄다. 권은희 정책위의장(재선, 광주 광산을)도 지난달 24일 참석을 마지막으로 최고위에 불참 중이다.
때문에 기존 7인의 최고위원 가운데 손 대표와 김 원내대표 2인만 참석하는 최고위가 잇달아 열리게 되자, 지명직 최고위원을 자파 인사로 채우면서 당 지도부 내 과반 재확보를 추진하려는 것이 손 대표의 의도로 읽힌다.
하지만 하태경·이준석·권은희·김수민 최고위원은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은 최고위원들과 협의하게 돼 있는데 오늘 최고위는 정족수 미달로 성립조차 되지 않았다"며 "임명은 원천무효"라고 주장하며 즉각 반발했다.
당 지도부 측에서는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은 당 대표의 권한이며 "'협의'의 장소와 시간이 꼭 최고위 회의일 필요는 없고, 협의가 꼭 합의나 과반수 찬성을 요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당 공보실은 "최고위원 지명 건에 대해 어제 채이배 당 대표 비서실장이 일일이 최고위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협의 절차를 거쳤다"며 "최고위원과 협의를 안 한 것이 아니라 그분들이 협의를 거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 최고위원은 그러나 "협의의 주체는 비서실장이 아니라 당 대표이고, 협의 상대도 최고위원이 아니라 '최고위원회'"라며 재반박에 나섰다. 하 최고위원은 지명직 최고위원 임명에 대해 2일 법원에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까지 냈다고 밝히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이날 의원회관 회동에 참석한 국민의당 당료(당 기획조정위원장) 출신 장환진 바른미래당 당규제정위 부위원장도 "당헌에는 '개별 최고위원'이 아니라 '최고위원회'와 협의를 하게 돼 있다"며 하 최고위원 쪽의 주장에 힘을 싣고, 나아가 "당헌당규 해석은 당무위의 고유 권한으로, (지난달 23일) 의원총회가 당론 여부를 결정한 것은 당무위 권한 침범"이라고 지도부를 비판했다.
바른정당계 좌장 유승민 의원은 이날 경희대 강연 후 기자들과 만나 "당이 다시 일어서길 바라는 분들의 뜻을 다 모아서 새로운 리더십을 세워나가는 게 당연한 타이밍"이라며 "당이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과정에서 제가 할 일을 뭐든지 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유 의원은 "많은 의원들이 '지도부가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는 뜻을 모으고 있다"며 "의원, 당원, 원외위원장들이 뜻을 모아가는 과정에서 지도부가 머지않아 현명한 판단을 할 것"이라고 지도부 사퇴를 압박했다. 특히 김 원내대표에 대해서는 "불법과 거짓에 책임이 있는 분"이라며 "응당 책임을 다하는 게 정치인의 당연한 도리"라고 더 날을 세웠다.
유 의원은 한편 '보수 통합' 논의와 관련해서는 "자유한국당이 변화와 혁신을 통해 개혁보수로 거듭 태어나겠다는 의지와 행동을 보이면 오늘이라도 당장 합칠 수 있지만 그게 없으면 합칠 수 없다"며 "이제까지 봐온 한국당의 모습은 제가 가려는 개혁보수와 너무나 거리가 멀다. 변화와 혁신이 없는 한국당으로 돌아가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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