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두고 국내 상당수 언론은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기싸움이 본격화된 것이라는 보도를 쏟아냈다. 6자회담 재개를 통해 한반도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러시아와 이를 차단하려는 미국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취지이다. 혹자들은 '한미일 대 북중러'로까지 시야를 넓히기도 한다.
실제로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다자 협상"을 언급했고 그 직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또한 하노이 '노 딜' 이후 첫 정상회담 상대로 푸틴을 선택했다. 이렇게만 보면 북중러 3국이 다자 회담을 위해 모종의 의기투합을 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다.
김정은의 진의는?
하지만 이건 착시 현상에 가깝다. 우선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다자 협상"은 북미 정상회담을 대체하고자 하는 취지가 아니라 "정전협정 당사자들과의 긴밀한 연계 밑에 조선반도의 현 정전체계를 평화체계로 전환하기 위한" 것이다. 즉 남북미중 4자 평화협정 협상 개시가 조속히 필요하다는 취지인 것이다.
이러한 입장 표명은 우리로서도 반길만한 것이다. 지난해 세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도 평화협정 당사자라는 점을 김정은이 거듭 확인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북중러 3국 가운데 어떤 나라도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한 바가 없다. 오히려 이들 세 나라는 이러한 '톱다운' 방식에 대해 일관되게 지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이들에게 6자회담을 비롯한 다자 회담은 북미 정상회담의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푸틴과 볼턴의 발언에서 전혀 접점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푸틴은 6자회담의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도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라며 현 시기에선 어렵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볼턴 역시 북미 정상회담을 선호한다면서도 "(6자회담이) 배제되는 건 아니지만"이라며 그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지는 않았다.
다자회담이 필수적인 이유
다자회담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 가깝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남북 정상회담뿐만 아니라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했고, 그 당사자는 남북미중 4자라는 점에도 대체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또한 평화체제 구축을 비핵화에 "동시적·병행적"으로 추진하겠다는 것은 미국도 동의한 바이다. 이에 따라 향후 한반도 비핵평화 프로세스에서 4자회담도 반드시 시야에 넣어 두어야 한다.
또 하나는 북핵 폐기가 본격화될 경우 여러 나라의 참여와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초기 행동 조치로 거론되어온 영변 핵시설 폐기에만도 1조 원 안팎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그 부담을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나누려고 한다. 이러한 비용 분담이 원활하게 이뤄지기 위해서는 6자회담 재개가 필수적이다. 더구나 북한의 핵무기 및 핵물질 폐기 단계에 접어들면 핵보유국들인 중국과 러시아의 역할도 비중 있게 고려될 수밖에 없다.
물론 4자회담이나 6자회담을 지금 당장 개최하는 것은 어렵다.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 및 북미 관계의 물꼬를 트는 것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3차 북미정상회담을 조속히 열어 '포괄적인 합의와 단계적·동시적 이행'을 마련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3차 북미정상회담의 개최 여부 및 그 성패가 오늘날 한반도 정세의 핵심 변수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러나 3차 회담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그 이후 비가역성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서 다자회담 전략은 지금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제재를 둘러싼 북미 간의 동상이몽은 여전하지만,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달성을 위해서는 대북 안전보장 방안을 반드시 다뤄야 한다. 안전보장이 견실해질수록 비핵화의 속도와 완전성도 높아진다는 게 '게임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가령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4자 협상 개시 선언'이 담기면 비핵화 논의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또한 6자회담 개최를 통해 비용 및 역할 분담과 더불어 '동북아 평화안보체제 논의를 추진한다'는 내용도 담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동북아에서 다자간 안보체제가 무르익을수록 비핵화 완성의 시간표도 앞당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