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빌미로 북한이 남북 경협에 제동을 걸고 나오는 사태가 발생했다. 단순한 말실수로 넘어갈 수 없는 중차대한 '사고'다.
***북한, "대화 일방이 상대방에게 칼을 내미는 이상"**
북한은 22일 이라크전에 따른 남측의 경계강화조치를 이유로 오는 26일부터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경제협력제도실무협의회 2차회의와 3차 해운협력 실무접촉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박창련 북측 위원장은 이날 발표한 담화에서 "대화 일방이 대화 상대방에 칼을 내대는 이상 우리는 북남경제협력추진위원회 아래 북남경제협력제도분과 제2차 회의와 해운협력 제3차 접촉을 부득이 미루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고 인정한다"며 "이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이 져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이 보도했다.
박 위원장은 "이라크 전쟁을 구실로 '데프콘 2'라는 초경계태세를 선포해 나선 것은 온 겨레의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며 "남의 나라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빙자해 동족을 위험시하면서 대결자세를 취할 이유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민족공조로 평화를 지켜 나가는 우리를 걸고 초경계태세까지 선포해 나선 데 대해 우리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으며 깊은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남조선 당국의 처사는 대화 상대방에 대한 신의 없는 무례한 행위이며 쌍방의 접촉과 대화에 인위적인 장애를 조성하는 무분별한 행위"라고 비난했다.
그는 또 "우리는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고 6.15공동선언을 이행하여 북남 사이에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며 협력과 교류를 추진해 나가기 위하여 모든 성의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우리와는 정반대로 남조선에서는 독수리합동군사연습과 연합전시증원연습이 벌어져 나라의 정세를 전쟁접경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송경희 대변인의 끔찍한 말실수**
문제는 그러나 우리 군 당국이 북한의 이같은 반응을 초래한 ‘데프콘 2’로 방어태세를 격상시킨 적이 없다는 데 있다. 문제는 송경희 대변인의 어처구니 없는 실수에서 비롯됐다.
송경희 대변인은 미국이 이라크 공격을 개시한 20일 “전군에 경계령이 내려졌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약간 자신이 없는 듯 “워치콘3? 한 단계 높였다? 그런 말씀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기자들이 “데프콘(Defense Readiness Condition)이 아니냐”라고 묻자, 송대변인은 “죄송하다. 제가 군사나 작전에 관해 충분하게 답변해드릴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이 충분히 이해해주시리라고 본다”고 주춤했다. 그러나 “한 단계를 올린 것은 맞나”라고 기자들이 다시 확인을 하자 송 대변인은 “네”라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치콘(Watch Condition)은 군의 대북 정보감시체제를 가리킨다. 따라서 워치콘 분석은 데프콘 수위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어, 워치콘 격상이란 직접적으로 북한을 자극하는 조치를 의미한다.
그러나 송 대변인은 워치콘과 데프콘의 차이도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군사적으로 극도의 민감한 사항을 부정확하게 언급했다. 때문에 송 대변인의 발언은 ‘워치콘 2로의 격상’으로 받아들여졌고, AP 등 주요외신들은 즉각 이를 근거로 “이라크전과 동시에 한반도 긴장도가 높아졌다”는 요지의 기사를 긴급타전했다.
이들 외신은 “한국군이 1996년 북한군 판문점 진입 이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워치콘2로 격상했다”며 마치 한반도도 긴장사태에 돌입한 것처럼 보도했다. 워치콘2는 국익에 현저한 위험이 초래될 징후가 있을 때 발동 되는것으로 이제까지 2번 밖에 없었다.
국방부도 발칵 뒤집어졌다. 워치콘은 99년 6월 연평해전 뒤 워치콘3로 격상된 이후 그대로이고 워치콘 분석에 따라 전군에 내려지는 방어준비태세도 데프콘4로 변동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라종일 청와대 안보보좌관은 “워치콘 격상은 없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자 국방부에서는 “워치콘과 팝콘도 구별 못하는 대변인이 혼란만 일으켰다”며 송경희 대변인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계속 시킬 것인가**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북한이 21일 즉각 반응하고 나섰다.
북한은 21일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에 “남조선이 이라크전과는 아무 관련이 없는 우리를 걸고 데프콘2라는 초경계태세를 내린 것은 노골적 도전이고 참을 수 없는 적대행위”라는 조평통 대변인 성명을 내보냈다. 이어 22일에는 오는 26일부터 평양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경제협력제도실무협의회 2차회의와 3차 해운협력 실무접촉을 연기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청와대 대변인의 실수로 야기된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을 북한은 실제상황으로 받아들인 형국이다.
송 대변인은 이렇게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20일의 브리핑에서 설명한 것은 군 경계태세를 한 단계 올렸다고 한 것이었고 워치콘 단계를 올렸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뒤늦게 해명했다.
그러나 이번 파문은 이같은 해명으로 덮어질 성질이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인식이다.
한국일보는 22일 사설로까지 송경희 대변인의 실수를 문제삼았다.
사설은“청와대 대변인은 국정 방향 전반은 물론 주요 정책의 경우 그 내용에 대해서도 올바르고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는 국민에 대한 국정의 통로이다. 대통령을 대변해야 하고 수석비서관, 보좌관들과 한 호흡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여타 부처의 대변인과는 직무의 격과 무게가 다르다”면서 “이런 점에서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이 엊그제 도를 넘는 직무상 실수와 무지를 또 드러낸 것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고 질타했다.
사설은 또 “송 대변인은 브리핑 과정에서 정보감시태세인 워치콘과 방어준비태세인 데프콘의 개념을 전혀 구분하지 못한 무지상태였으며, 이런 실수에 대해 ‘군 경계태세를 한 단계 올렸다고 했을 뿐 워치콘 단계를 올렸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사설은 나아가 “송 대변인에 대해서는 언론이나 정치에 대한 감각과 경험이 없고, 노무현대통령을 잘 알지도 못한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 그럴수록 그런 약점은 본인이 극복해야 할 텐데도 모르는 사실을 당당한 듯이 “모른다”고만 해 물의를 빚더니, 이런 사태까지 왔다. 청와대 대변인을 배출한 여성계에 대한 태만이자 국민에 대한 공직자의 직무유기이기도 하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송경희 대변인은 이번 파문외에도 그동안 여러 차례 물의를 빚어왔다. 그의 자격을 심각하게 재고해 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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