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 저항(Extinction Rebellion), 최근 영국에서 기후변화 대응 시위를 이끌고 있는 단체의 이름이다. 멸종 저항은 4월 15일부터 런던 의회광장, 마블아치, 워털루브릿지, 옥스퍼드 서커스에서 점거 시위를 펼쳤다. 그리고 옥스퍼드 서커스, 의회광장, 워털루브릿지의 시위대가 진압되자 자연사박물관으로 점거 장소를 옮겼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에티엔 스콧이 멸종 저항 시위에 참여해 체포되었는가 하면 영국의 유명 배우 엠마 톰슨이 지지 의사를 표명하기도 했다. 4월 21일에는 청소년기후운동의 불을 지핀 그레타 툰베리가 멸종 저항과 함께 했다. 점거 시위가 지속되면서 체포자 수가 1000명을 넘었고, 이중 50명 이상이 입건되었다. 경찰에 체포된 시위 참가자의 수는 1982년 반핵시위에서 750명 가량이 체포된 이래 가장 많다고 한다.
2018년 10월 결성된 멸종 저항이 내건 슬로건은 간결명료하다. 바로 "비상사태"(It is an emergency). 이들은 현재 기후변화의 양상이 비상사태나 다름없는 만큼 긴박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멸종 저항이 제시하는 목표는 2025년 온실가스 순배출량 "0"이다. 이를 위해 정부가 기후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기후변화의 위험을 널리 알리면서 동시에 신속한 해결책을 도모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기존 정치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시민의회(citizens' assembly)를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인류의 존재론적인 위기"인만큼 "우리는 행동해야만 한다"는 그레타 툰베리의 21일 런던 집회 발언은 멸종 저항 시위의 입장을 잘 반영하고 있다. 나아가 툰베리의 시위 참여는 멸종 저항이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전 지구적 운동과 결합해있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 멸종 저항만 해도 영국에 본부를 두고 있지만 네덜란드 헤이그,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시위를 펼친 바 있고, 앞으로 미국, 호주 등 더 많은 지역에서 멸종 저항과 뜻을 함께하는 시위를 예고하고 있다.
1982년 반핵시위 이후 체포자가 가장 많다는 사실은 멸종 혹은 절멸 위기를 다시 심각하게 고민해야할 때가 도래했음을 알리고 있다. 이제는 많이 잊혔지만, 에드워드 톰슨의 절멸주의(exterminism)로 대표되는 절멸에 대한 위기 의식은 1980년대 초반 반핵운동, 핵무기 반대운동을 이끄는 힘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 핵전쟁의 위협을 경고하는 지구종말시계(doomsday clock)의 시간을 산정하는데 기후변화가 포함되었지만, 멸종과 절멸이 사회운동의 언어 혹은 대중의 관심사로 부상한 것은 아니었다. 멸종 저항의 정치적 효과는 여기에 있다. 멸종 저항의 비상사태 선포는 우리가 멸종, 절멸을 걱정해야할 만큼 긴박한 위험에 직면해있다는 사실을 대중적으로 환기시키고 있다. 멸종 저항 시위 참가자들이 던진 질문, 즉 멸종에 저항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우리 시대의 피할 수 없는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마주한 상황은 사뭇 다르다. 멸종 저항의 점거 시위가 한창이던 4월 19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장에서는 낯선 시위가 일어났다. 원자력정책연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범국민 서명운동본부 등 원자력계 단체들이 공청회장 단상을 점거한 것이다. 원자력정책연대는 "국가에너지정책의 정치적 이념화를 중단하고 현 세대뿐만 아니라 미래세대까지 포함한 진정한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라"고 외쳤다. 이들의 목소리를 이어받아 자유한국당 재앙적 탈원전 저지 및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특별위원회는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공청회는 원천 무효"라고 주장하며 탈원전 정책의 철회를 요구했다. 그렇게 멸종 저항이 한창일 때 한국에서는 전환 저항이 거세게 일어났다.
보수언론까지 전환 저항에 호응하면서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을 탈핵에너지전환의 출발점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논의되어야할 사항들이 묻히고 있다. 예컨대 2040년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30~35% 목표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을까? 원자력계는 이것마저 지나치게 높은 목표치라고 아우성이지만 세계적인 추세에 비춰보면 상당히 뒤쳐진 수준이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낮다는 것은 2040년까지 화력발전과 원전의 축소 속도를 높이지 않겠다는 뜻인데, 기후변화와 원전의 위험을 고려할 때 합당한 계획인지 의문이 제기된다. 작년에 수립된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로드맵'과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이 충돌하는 것도 문제다. 이미 환경단체와 녹색당 등은 전환 부문 온실가스 추가 감축분이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에 반영되지 않았고 산업 부문의 에너지 수요 관리가 너무 미흡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2030 국가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에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는 마당에 문재인 정부는 여기서 더 후퇴하고 있다. 지난 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는 특별보고서를 통해 2050년 이산화탄소 순배출량 "0" 목표를 권고한 바 있는데,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은 이것을 가볍게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멸종 저항을 통한 전환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전환 저항에 휘둘려 시간을 허비할 것인가,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선택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빠르게 줄고 있는 생물종 다양성을 생각하면 멸종 저항은 지극히 현실적인 구호다. 오히려 문제는 무책임한 현상 유지, 지나치게 소극적인 전환 계획이다. 비상사태나 다름없다는 위기 인식 속에 전환 저항에 단호하게 맞서며 더 과감하고 신속한 전환의 길을 찾아야할 때다.
(홍덕화 교수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기획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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