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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 아곡리 청원보도연맹 학살자 최소 4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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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보은 아곡리 청원보도연맹 학살자 최소 40명

충북도· 공동조사단, 사람 뼈 466개 등 발굴…20~30대 남성 추정

▲박선주 단장이 충북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청원국민보도연맹 희생자 발굴현장에서 유골 등을 확인하고 있다 ⓒ충북도

충북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에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청원국민보도연맹사건으로 학살된 희생자로 추정되는 4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5일 충북도와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이 발표한 ‘충북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국민보도연맹사건 희생자유해발굴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아곡리에서 최소 40여 명에 해당하는 유해와 136점의 유품이 발굴됐다.

박선주 충북대 명예교수를 단장으로 사업을 맡은 공동조사단은 지난달 7일부터 17일까지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일원에서 추진한 유해 발굴을 진행했다.

조사단은 발굴지에서 식별이 가능한 뼈 466개를 발굴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아곡리에서 희생된 인원은 최소 40명이며 희생자는 주로 20~30대의 남성으로 추정했다.

조사한 희생자 대부분의 키는 1950년대 한국 어른 남성 평균인 164cm와 비슷했으며 희생자는 경찰과 군인에 의해 M1과 카빈 등으로 희생된 것으로 추정했다. 특히 발굴된 카빈총 탄두의 끝이 뭉툭한 것으로 보아 가까이에서 사살한 것으로 가늠돼 충격을 더해주고 있다.

피해자들은 보도연맹과 관련된 농민 및 일반 서민, 일부는 지식인들도 포함된 것으로 가늠되며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으나 현재까지는 찾지 못했다.
▲충북 보은군 내북면 아곡리 유해발굴지 평면도 ⓒ충북도

이어 아곡리 유해 매장지에서는 모두 136점의 유품이 출토됐으며 유품 중 버클, 라이터, 안경, 담뱃대, 구두주걱, 시계, 거울 그리고 빗 등의 유품은 당시 희생자들의 신분이 일정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곡리에서 발굴된 유해와 유품은 지난달 27일 발굴 현장에서 감식과 제례 후 세종시 추모의 집으로 모셔졌다.

공동조사단은 앞으로의 과제에 대해 “발굴이 끝난 현장은 잘 보존해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아야 한다. 길가에 현장을 알리는 표시판 등과 위령조형물 등을 설치해 국민들이 찾고 기억하는 장소로 만들 것을 건의한다”며 “아곡리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명예가 즉각 회복돼야 하며, 국가는 이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시종 도지사도 추도사에서 “이번 유해발굴로 희생자와 유족들의 명예회복과 과거사 진상규명의 발판을 마련하고, 과거의 아픔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도록 이념 간, 세대 간 갈등을 넘어 화해와 용서의 대통합의 시대를 열어나가길 염원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충북도는 한국전쟁 전후 피해를 입은 민간인 희생자분들과 유족들의 아픔이 헛되지 않도록 여러분과 아픔을 같이하며, 과거사 문제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원국민보도연맹 사건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6월 말부터 7월 중순까지 청원지역 국민보도연맹원 등 예비검속자들이 청주경찰서 경찰과 헌병대, 청주CIC 등에 의해 경찰서와 각 지서, 청주형무소 등에 소집·구금됐다가 그해 7월 초부터 중순까지 청원군 일대와 보은군 아곡리 등지에서 집단희생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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