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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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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철학

'책 읽어주는 부행장'의 주말 이야기 <39>

요즈음 무언가 급변하는 분위기와 그에 따른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3년전 우리 독서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피에르 쌍소의 <느림의 철학>을 다시 한번 띄웁니다.

그는 우리에게 강렬한 목표의식을 버리라고 요구했으며,뛰는 대신 걸어가라고 타일렀고, 카페인이 든 커피를 마시고 깨어있기보다는 알코올이 든 포도주를 마시고 긴장을 풀라고 했습니다.

물질과 효율, 경쟁과 속도로 규정되는 세상을 살다 뒤통수로 맞은 IMF 태풍의 여진 속에서 모든 삶의 가치와 미덕이 뒤집히고 파헤쳐진 이 땅의 피곤한 영혼들. 그런 한국인들을 한없는 매혹으로 빨아들인 것이 피에르 쌍소의 <느림의 철학>입니다. 글을 보내주신 삼성경제연구소의 이용규 과장님께 감사드립니다. 필자 주

***느림의 철학**

"현대 사회는 느림이라는 처방이 필요한 환자다.
그런데, 현대인이 속도의 병에 걸려 있다고 진단하는 것은 나와 같은 학자들의 몫이다.
나는 철학자를「미래를 방하고 예언하는 사람」이라고 새롭게 정의하고 싶다.
예언하는 철학자로서,
나는 정보화 시대의 특징을 분석하기보다는 이 시대를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더 빨리 보고, 더 빨리 배우고, 더 빨리 행동에 옮겨, 더 빨리 목표를 쟁취하라고 가르친다. 그런데 문제는 빠름으로 달려가면 갈수록 우리의 삶이 여유로워지기는 커녕 더 빨리 달리라고 채찍질 당한다는 데 있다.
그런 악순환에 빠지면 삶은 각박해지고 일상은 죽지 못해 사는 비참한 상태에 빠진다."

쌍소 교수는 어린 시절 집시들과 함께 지낸 독특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때 집시들의 삶에서 반문명적이고 탈도시적이며 가치 지향적인 삶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묻는다.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라고.

그가 삶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써주는 첫 번째 처방은 '속도를 줄이는 것'이다.

"나태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방치하는 게으른 상태인 반면,
느림은 삶의 매 순간을 구석구석 느끼기 위해 속도를 늦추는 '적극적인 선택'이다.
그것은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가 멋진 풍경을 발견한 뒤, 차에서 내려 천천히 걷는 것,
또는 풍요롭게 살기 위해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는 것과 같다.
스키여행의 목적이 오직 스키만 타는 것이라면,
오가는 길이 막혔을 때 초조해 하고 여행을 망쳤다는 생각에 화를 낸다.
그런데 스키도 타고, 여행의 동반자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주변 경치도 둘러보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어떨까.
이처럼 느림의 가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같은 상황에서도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인생 코스도 직행보다는 완행을 선택했다고 한다.
젊은 시절, 그는 교수임용 시험을 수석으로 합격하고도
지인들의 예상을 깨고 중등학교 교사를 자원했다.
그는 우리가 사는 사회는 빠름을 찬양하고 있지만,
개인은 느림을 추구함으로써 질적으로 높은 수준의 삶에 도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60세 정년 규정을 깨고 예외적으로 8년 더 교수로 재직할 수 있었던 것도
'느리지만 천천히, 그리고 열심히 학생들을 가르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 8월에 <유혹하지 않으리라>라는 책을 냈던데.
적지 않은 나이에 오히려 남들보다 바쁘게 사는 것 같다.

"그 책은 이미 30만부 이상 팔렸다. 또 의사소통을 주제로 책을 쓸 계획도 갖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바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건 느림을 물리적 속도로만 파악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느림은 나만의 리듬을 따라 내 삶의 주인으로 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려면 일로 인한 스트레스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비결은, 처리할 수 있는 것은 열심히 하고 능력 밖의 일은 빨리 포기해 버리는 것이다.
신나고 재미있게 일 하면서 '바쁘다'고 푸념하는 사람은 없다."

-빠름이 그토록 나쁜 것인가.
한국은 온 국민이 핸드폰을 들고 다닐 정도로 속도와 빠름을 강조하는 나라다.
IT강국이란 찬사도 듣는다.
그 모든 것이 부지런하고 빠르게 움직인 덕이라는 믿음도 강하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빠름의 미덕을 일부러 외면해야 할 정도로 너무 빠르다.
성장 촉진제를 투여한 닭으로 만든 패스트 푸드를 파는 가게와,
온통 주입식 교육으로 지식만 빨리 전달하는 교실은
다른 장소이지만 같은 가치가 지배하는 공간이다.
유기농산물을 주목할 것, 같은 지식이라도 토론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도록 할 것,
감기에 걸렸을 때 약보다는 휴식을 처방할 것.
이런 것들은 느림을 강조하지 않으면 가벼운 코웃음 속에 버려지고 말 가치들이다.
핸드폰 들고 수다떠는 것도 아주 불행한 일이다.
가능하면 입은 다물고, 대신 눈을 열어 주변을 둘러보라고 권하고 싶다.
몸이 느림을 향할 때 정신은 더욱 깨어나고 삶의 깊은 의미를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느림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포도주. 숙성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숙성도에 따라 맛이 다르다.
느림은 오래된 포도주처럼 향기로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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