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금융 허브로 가는 길**
10년 전 내가 싱가포르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김영삼씨가 대통령이 되면서 국제화 내지 세계화라는 이슈가 크게 대두되었다.그러자 여러 기관과 신문사들이 다투어 싱가포르에서 배우자며 줄을 지어 조사팀과 취재팀들을 보냈었다.
몇 달이 지나자 싱가포르의 정부기관이나 기업들이 탐탁치 않은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왜 당신 나라에서는 몇 번 설명해주면 그것을 서로 공유(公有)하지 않고 계속 사람들을 보내 우리를 피곤하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그렇게 핫 이슈로 국제화, 세계화를 추진했음에도 국제사회에서는 우리나라에 대한 평가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몇 년 뒤 환란위기가 터지면서 온 국민이 한동안 힘든 세월을 견뎌야 했다.
이유는 꼭 그렇다고는 볼 수 없지만 국제화, 세계화를 해외에 지점이나 현지법인을 많이 내보내는 것이라고 착각했던 결과가 아닌가 생각된다. 금융기관들의 경우 은행은 물론 종합금융, 리스, 증권사들도 해외에 마구 나가 매우 위험한 거래를 했고, 대우그룹도 '세계경영'을 외치며 해외에 6백50개의 지점 및 현지법인을 세운 뒤 곧 1천개로 늘린다고 자랑스럽게 홍보하며 다녔다.
이러한 일련의 활동이 부실을 키웠고 그러한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지면서 오히려 우리나라에 대한 신용등급을 낮추고 국제투기꾼들의 투기대상이 되어 고통스러운 환란을 맞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세계화를 추진할 당시 싱가포르 주변국들도 국제금융센터를 만들겠다고 난리였다.
태국정부는 방콕을 미국의 IBF(International Banking Facility) 같은 Off - Shore 뱅킹센터로, 말레이시아 정부는 칼리만탄섬의 사라와크주에 있는 라부안이라는 조그만 어촌 도시를 국제금융센터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개혁을 추진하였다.
그즈음 우리나라로 치면 중앙은행과 금융감독원 업무를 같이 담당하는 싱가폴의 통화당국(MAS : Monetary Authority of Singapore)에 국제금융국을 담당하고 있던 미세스 푸(Mrs. Foo)라는 여성국장이 있었다.
“이웃 나라에서 국제금융센터를 만들면 싱가포르가 경쟁자들에게 업무를 빼앗길 것이 걱정되지 않는가?”라고 물었더니 그녀는 담담하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습니다. 국제금융센터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과 같은 금융중심지를 만드는 데만 약 30년이 걸렸습니다."
그녀가 말한 대로 그 후 10년이 흘렀지만 방콕이나 라부안이 국제금융센터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 국제금융센터나 지역의 금융허브를 만들려면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또한 많은 비용이 들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일사불란하게 추진해 나갈 인재들과 국민들의 공감대 형성은 물론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안정되어야 하고 시장참가자들에게 세금혜택 등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 하며 그들이 살기 편한 각종 인프라(외국인들을 위한 학교와 의료시설 등 포함)와 시스템이 준비되어야 하며 통신시설 및 금융중개회사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또한 그들이 장사할 만한 주변의 터전이 있어 각종 장․단기 금융시장도 형성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국민들이 법과 질서를 지키고 정직해야 하며 상대방에게 친절을 베풀 줄 알아야 한다. 또한 국제어인 영어도 어느 정도 알아듣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상의 모든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외국금융기관들이 안심하고 우리나라에 들어와 장사를 펼 것이다.
이렇듯 국제금융허브로 가는 길은 그야말로 멀고도 험한 길이다. 그러나 참고 또 견디면서 일단 이룩해내면 우리들의 후손들은 그 열매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국제 금융허브로 가는 길이 바로 선진국이 되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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