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의 외신 인터뷰에서 발단이 된 남북 정상회담 추진설을 슬그머니 주어 담는 모양새다.
남북간 물밑접촉이 실제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연내 회담 개최 가능성도 여전히 있지만, 아직은 회담 성사의 조건이 무르익지 않았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일 이 대통령의 정상회담 발언에 대해 "여러 가지 정세로 봐서 2010년이 중요한 해이기 때문에 이런 해에 한반도 안정과 평화를 논의하면 좋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받아줬으면 좋겠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현 장관은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고 '연내 성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의 희망사항을 얘기한 것이고 그것은(정상회담이) 반드시 연내에 '일어난다, 안 일어난다'고 얘기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 장관은 이어 "최근 정상회담에 관한 보도가 많지만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며 "정상회담이라는 주제는 남북간의 필요성에 의해서 이뤄질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 장관은 정상회담의 의제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게 되면 실질적으로 북핵 문제에서 구체적 진전이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북핵 문제가 언급되는 정도의 수준으로는 큰 의미가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이어 '북핵 문제 진전'의 의미를 묻자 "바람직한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와 인도적 문제, 즉 국군포로 및 납북자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북한은 핵 문제는 미국과의 문제이며 국군포로와 납북자는 없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작년 말 추진되던 남북 정상회담이 '일단 정지' 상태가 된 것은 정상이 만나면 이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는 남측의 요구 때문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꺼내지 않는 것은 정상회담을 실제로 하려면 그 문제를 내려 놓아야 한다는 걸 인식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또한 앞서 이 대통령이 북한 지역 내 한국군 유해 발굴 사업을 거론한 것은 국군포로·남북자 문제에 대한 '대체재'로서의 성격이 강했다.
그런 와중에 현 장관이 다시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를 거론한 것은 정부가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적극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최근의 분위기와 거리가 멀다는 평가다.
아울러 현 장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남북 공동합의를 이행할 의향을 묻는 질문에는 "'비핵·개방·3000'이 지난 정부 정책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고 종합적인 지원"이라며 "이 대통령이 제시한 '그랜드 바겐'에 그런 것이 포함될 것"이라고 대답했다.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에 대한 무시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인데, 이 역시도 정상회담 성사 조건의 숙성과는 거리가 있다.
현 장관의 이 같은 태도는 이날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며칠 전 자신의 발언을 '톤 다운' 시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는 있을 수 없다는 대전제 하에 남북정상이 만나야 한다"면서 "이 원칙이 충족되지 않으면 정상회담은 성사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발언으로 볼 때 그가 지난달 29일 <BBC> 인터뷰에서 "(남북의 정상이) 만나는데 대한 조건이 없어야 한다"고 했던 말은 북한의 요구 조건이 없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북측의 조건은 거부하고, 핵 문제와 국군포로·납북자 해결이라는 남측의 요구 조건은 그대로 두는 상황에서 정상회담이 어떻게 되겠느냐는 지적이 나올 법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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