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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비밀거래의 진실에 대한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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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대북 비밀거래의 진실에 대한 탐구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82>

몰상식과 비원칙의 시대를 넘어 상식과 원칙이 통용되는 사회로 나아가는 중간지점에 이중성의 과도기적 시기가 존재한다. 아직도 이중성이 횡행하는 시기이며,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뒤죽박죽인 상태여서 진실은 무엇이고 거짓은 또 무엇인지 불분명해 보이는 나날들이기도 하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포용정책과 그 세부적 실천과정은 이러한 이중성의 시대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권을 넘기기 직전인 이 시점에 사욕과 공익의 이중성에 대한 의문과,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김 대통령 자신이 이러한 이중성의 극명한 구현체였기도 하지만, 포용의 대상인 북한이 갖고 있는 이중성도 커다란 몫을 차지하고 있어서이다.

이중성의 논리는 비단 정치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언론은 공익을 추구하지만 사기업으로서의 영리추구욕구도 병행된다. 언론이 재벌의 문어발식 확장을 비판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공익에 봉사하는 행위겠지만, 상업광고를 따내기 위한 영향력 확대라는 측면도 무시하지 못한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특히나 정치적인 목표 실현에는 항상 주체인 정치인의 사욕과 공익실현욕구가 혼재한다. 평가를 역사에 맡기는 이유는 미시적인 접근방식을 택할 때 이와 같은 이중성에 대한 판단 자체가 합리 보다는 비합리적인 군중심리에 좌우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1) 대북비밀지원 진상에 관한 추론**

이런 전제 아래 국론분열의 원인이 되고 있는 대북비밀지원 진상에 대한 추론을 시작해 보자. 사실과 정보에 근거한 것은 아니나 지금까지 보도된 내용을 토대로 추론해 보건대 대략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한 막전막후에는 대략 다음과 같은 과정이 개재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은 서로간 목적은 달랐지만 최소한의 이해관계 일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은 평화공존을 통한 전쟁없는 통일이 목적이었을 것이고(그것은 김 대통령의 통일철학이기도 했을 것이다), 북한은 체제안정을 위한 외부 수혈의 필요성이 목적이었다고 하겠다. 하지만 상호교류가 서로의 목적에 도움이 된다는, 말하자면 이해관계의 일치가 없었더라면 상이한 목적의 접점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북한을 지배하는 김정일 정권이 갖고 있는 이중성이다. 1인지배의 절대체제가 갖는 특성은 인민의 이익과 절대자의 이익이 반드시 합치되지 않는다는데 있다. 거꾸로 그들과의 거래가 겨냥하는 의도가 상대 체제에서 신음하는 인민에 있다 하더라도 거래 상대는 이해관계가 다른 절대자라는 현실이 의도 자체를 왜곡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김정일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통한 남북교류에 응할 수 있었던 것은 폐쇄경제체제의 실패 때문에 북한 인민들이 굶어죽고 있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하겠지만, 그 바탕에는 특단의 타개책이 없는 한 절대체제의 유지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인식이 더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런 전제 속에서 북한과의 거래는 불가피하게 이중적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의도는 체제 안정이며, 그것은 한국의 막대한 경제적인 도움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북한은 여전히 절대자가 지배하는 사회이며, 막대한 재래식 군사력으로 한국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런 상태에서 수면 위에서의 거래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북한의 욕구를 채워줄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수면 아래에서의 거래가 수반됐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수면 아래에서의 거래를 담당한 쪽이 바로 현대다.

이러한 이중적인 거래관계는 김 대통령이 우리 국민을 설득하는데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민관 공동의 교류란 이상적인 모양새를 띨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김정일정권을 설득하는데도 마찬가지로 효용성을 가졌을 것이다. 국가 예산을 통한 대북지원은 국민정서란 ‘장애물’을 넘어야 하는 것이어서 애초부터 제한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란 사기업이 수면 아래를 담당해 준다면 그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다.

더욱이 폐쇄된 독재체제의 공통된 특성이기도 하지만, 공식적인 거래를 넘어선 언더테이블머니 요구란 장애도 수면 밑 거래가 있다면 어느 정도 처리가능하다. 언더테이블 머니는 결국 독재자의 사욕을 채워주는 것이겠지만, 그것 없이는 불가능한 거래일수록 불가피하게 선택해야만 하는 일들이 국제거래관계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말하자면 김 대통령은 수면 위에서 명분 있는 역할을 담당했다면 현대는 수면 아래에서 악역(惡役)을 담당하는 식의 역할 분담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현대는 무슨 이득이 있어서 기꺼이 악역을 담당해야만 했을까. 대북 사업의 독점이 장단기적으로 이득을 가져다 줄 것이란 사기업적 예측이 일차적인 이유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쩌면 당시 어려웠던 현대가 정부의 대북사업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특혜성 반대급부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현대는 악역을 수행했다. 이 악역에서도 문제의 핵심은 김정일 개인에 대한 언더테이블 머니 제공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렇다면 왜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2235억원이란 돈이 북한으로 넘어갔으며, 국정원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는 것일까.(여기서부터는 정말 본격적인 추론일 뿐이다)

남북화해의 상징인 정상회담에 응하는 대가로 북한은 무엇인가 언더테이블 머니를 비롯한 다양한 요구를 했을 것이고, 그러한 뒷거래는 현대가 수행해야 할 몫이었다. 하지만 현대는 당시 그룹차원의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수면 위의 일정에 맞춰 진행돼야 하는 수면 아래의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을 것이란 얘기다. 가령 김정일 본인에게 전달돼야 할 대가를 위한 재원마련이 현대로서는 어려웠을 것이란 점이 핵심이다.

독재체제의 절대자가 항용 사용하는 숫법이지만, 수면 아래의 거래가 제대로 안되면 수면위의 합의된 사항까지 번복한다. 약속한 현대의 언더테이블 머니가 오지 않았으니 정상회담을 할 수 없다고 나왔을 것이 분명하다. 난리가 난 것은 수면위를 담당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당시만 해도 온 국민은 물론이고 세계가 주목하고 있었다. 북한이 “배째라”고 나온다면 국제적인 망신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속앓이를 참으면서 진행해온 남북화해를 위한 온갖 노력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예산을 횡령하면서까지 북한을 지원할 수 없었던 정권 핵심인사들은 산업은행 대출이란 편법을 착안하기에 이르렀다고 필자는 분석한다. 일단 은행돈을 현대에 빌려줘서 북한이 요구하는 언더 테이블 머니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나중에 회수한다는 전략이었을 것이다. 숨가쁜 일정 싸움은 편법에 편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으로 몰아갔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이중성의 극점에서 나타난 것이 바로 국정원의 개입에 의한 김정일에 대한 언더 테이블 머니 지급이라는 것이 필자의 결론적인 추론이다. 세부적으로는 다소 틀릴 수 있지만 대체적인 흐름은 이 정도를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2) 왜 특검인가**

여기서 가장 커다란 문제는 김정일에 대한 언더테이블 제공이란 기밀의 유지란 점이다. 큰 틀에서의 남북화해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김정일정권이 갖는 여러가지 이중성 때문에 이런 사실이 드러났을 경우 한쪽 단면만을 강조하는 냉전수구세력의 집중공세에 시달릴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비단 야당일 뿐 아니라 수구냉전세력의 집합소란 점도 서독식 사회적 합의 도출을 방해하는 요인이 됐을 것이라고 필자는 분석한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사회적 합의 도출이 결여된 김 대통령의 수직적 의지 구현이 문제였다고 지적한 바 있지만, 이중성의 시대를 거쳐간 김 대통령의 한계이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란 점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백한다.

수구냉전세력이 이런 과정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데도 모두 다 까발려라고 압박하는 것은 필자가 전편의 글에서 지적했다시피 근본적으로 다른 통일관 때문이기도 하며, 지난 5년간 쌓인 김 대통령에 대한 복수편의 성격도 조금은 들어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김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노무현 당선자에 대한 길들이기 차원도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별검사제 도입을 통해 필자가 추론한 과정을 확인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가 통상 국민이라고 일컫는 ‘군중’의 불합리성 때문이다. 지금은 군중의 파괴욕이 작동하고 있는 시기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을 빌리면 ‘끝을 보지 않고서는 포만감을 느낄 수 없는 군중의 파괴욕구’가 횡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군중의 파괴욕구는 외부로부터의 공세에는 강하다. 김대통령이 위에서 지적한 모든 사실들을 밝혀서는 국익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며, 초법적인 통치행위로 이해해 달라고 읍소해본들 그것은 군중의 파괴욕구에 대한 외부적인 공세로 비칠 뿐이다. 현재로서는 특검을 통해 몰매를 주는 내부적인 공격방식만이 닫혀 있는 파괴욕구의 군중심리를 열린 심리로 전환시킬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언터 테이블 머니 때문이었든 다른 요인 때문이었든 이미 북한은 개방이란 대세를 거스를 수 없는 단계에 진입한 이상, 특검제로 인해 국민들의 의혹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북한과의 단기적인 관계 냉각이 불가피하겠지만,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정권보다는 한단계 업그레이드 된 대북정책을 펼쳐나가는데는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이란 개인적인 믿음도 특검제를 지지하는 이유란 점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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