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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송금설에 대한 몇가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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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송금설에 대한 몇가지 단상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81>

***대북송금파문의 본질과 원인, 처방에 관한 단상**

***1) 문제의 본질**

대북송금문제 파문이 계속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 해소란 역사적인 과제에 대한 사회구성원 간의 근본적인 시각차이가 존재하는 한국사회에서는 불가피한 갈등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의 본질과는 무관한 여러가지 요소들이 한데 뒤섞여 있어 국민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런 혼란은 기본적으로 대선 패배의 후유증이 표면화될 시점에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일대 호재다. 5년전 한나라당은 김대중 정권의 병풍 세풍 등 검찰 수사를 통한 압박 때문에 오히려 패배의 후유증을 극복할 수 있었다. 5년전과 같은 외부적인 단결요인이 없는 한나라당은 분열 등 후유증이 필연적으로 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나 현재로서는 대북송금문제에 대한 해명 압박으로 전선 이탈을 방지하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반대로 민주당은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 형식적으로는 김대중 정권을 계승했으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전혀 새로운 정권이 될 수밖에 없는 역사성이 혼재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북정책에 관한 한 김대중 정권이 이룩한 성과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단계로 접어들고 있지만 지금 이 시점은 어디까지나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라는 과도기적 상황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혼란은 더 커져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혼란의 밑바닥도 중요하다. 이회창씨를 대통령 후보로 밀었던 사람들이 소수로 전락하면서 정권을 가져오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국민의 절반에 가깝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찬성을 하지만 다른 요인에 의해 김대중 대통령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영남권의 반(反)DJ정서도 그 주변에 있다. 한나라당이 장기적인 국가과제인 대북정책에 대해 단기적인 정략으로 접근하고 있는데도 이러한 주변요인이 한나라당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기도 하다.

혼란은 가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제의 본질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정치평론가 홍기빈씨가 지적했듯이 우리 사회는 북한을 악의 축으로 간주하고 궁극적으로는 힘의 우위에 의해 타도돼야 한다고 보는 소수의 수구냉전세력과, 남북화합을 통해 평화공존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평화통일의 길로 가야한다고 보는 다수의 탈냉전세력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이처럼 북한을 보는 정반대의 시각이 혼란의 출발점이다.

국민의 다수가 탈냉전에 동의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혼란이 오는 것은 평화공존의 대상인 북한 김정일 체제, 즉 반인민적 사회주의 독재체제가 갖는 한계성이 존재하고 있어서이며, 또한 다수의 탈냉전세력 가운데에는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 본질에는 동의하면서도 김대중 정권 자체를 불신하는 반 DJ감정이 광범위하게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지역주의도 한몫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면 그렇지, 김대중 대통령이 제대로 대북정책을 했을리가 없지"라는 국민감정이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소수의 수구냉전세력들에게는 무한한 힘이 되고 있는 상태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2) 혼란의 근본 원인**

대북교섭은 근본적으로 큰 틀에서의 평화를 위한 교섭이며, 그 대상이 폐쇄된 사회주의 절대군주체제를 확립한 북한이란 본질적 한계 때문에 어느 정도 비밀주의가 엄수될 수밖에 없다. 동서독의 예를 보더라도 비밀주의는 존재했고, 그것은 사회적 합의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한국사회에서는 왜 그렇지 못한가. 앞서 대증(對症)적인 측면에서 접근해 보았지만, 실은 사회적 합의를 끌어낼 수 없었던 김대중 정권의 본질적인 한계가 근본원인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그렇다면 무엇이 김대중 정권의 본질적인 한계인가. 박정희시대 이래 전두환-노태우를 거쳐 김영삼-김대중으로 상징되는 민주화의 과정을 겪었지만, 최소한 국가통치의 메커니즘이란 측면에서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박정희로부터 시작된 효율성 중시의 군사독재적 메커니즘은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사회적 합의와는 무관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그를 제외한 나머지 집권엘리트는 무조건적으로 거기에 봉사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를 따르라"라는 식의 군사문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영삼-김대중 시대 역시 집권엘리트가 민주화세력으로 교체됐다는 점을 제외하면, 그리고 그들을 선택한 다수가 민주화를 열망하는 일반 국민이었다는 점만 빼놓으면, 정책결정의 메커니즘은 박정희식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후락씨를 대북특사로 보내 7-4공동성명을 끌어냈듯이 김대중 대통령은 박지원씨를 대북밀사로 보내 결국 남북정상회담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물론 북한을 집권연장의 한 수단으로 본 박정희 전대통령과, 오랜 재야시절부터 남북평화공존을 주창해온 김대중 대통령과 그 의도까지 동렬에 놓고 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최소한 그러한 결실에 이르기까지 의사결정과정은 사회적 합의와는 무관한 집권자의 의지만이 수직적으로 반영되는 체제였다는 것이다.

목적이 선의였다 하더라도 사회적 합의를 수렴하는 절차가 부재할 때 생기는 최악의 결과를 지금 우리는 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체제위기상태로 내몰리고, 핵개발 위협으로 인해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하는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되자 이같은 최악의 결과가 빚어내는 사회구성원간의 분열은 극에 달하고 있는 느낌이다.

***3) 처방 및 장기대책**

문제의 본질과 원인을 따져볼 때 노무현 정권이 선택할 폭은 지극히 좁은 상태다. 노무현 정권과 핵심그룹들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많지 않다는 점부터 인식해야 한다. 왜냐하면 김대중 대통령이 아무리 통치행위라고 변명해본들 일의 시작부터 끝까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절차를 생략한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생기는 국민적 불신의 늪을 우회할 방도가 그리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처방은 간단하다. 정치평론가 홍기빈씨가 제안했듯이 절차적 정당성으로 푸는 길밖에 없다. 즉 검찰이든 특검이든 중립적인 위치에서 비밀주의의 커튼을 열어제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대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대북관계는 노무현정권의 대북정책과 철학이 중요한 것이지, 국민이 불신하는 비밀주의를 엄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검찰이 수사를 포기한 마당에 선택할 수 있는 길은 결국 특검이 될 수밖에 없는데, 특검으로 밝혀낼 수 있는데 한계가 있다 하더라도 특검을 통해 몽땅 까발려야만 한다. 필요하면 계좌추적을 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필요하면 당사자들을 불러 수사를 해야 한다. 여기에 성역이 있어서는 안된다. 무엇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고, 무엇을 밝혀낼 수 없을 것인가 미리 예단해서는 안된다.

대북송금 파문이 국민적 논의 분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이것이 여야를 초월한 외교교섭적 성격을 띠고 있으면서도 국민들에게는 정파적 이해가 혼재한 것으로 인식하는 정치적 성격을 함께 띠고 있기 때문이다. 즉 국민이 만족할 때까지 파헤쳐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단기적인 처방이다. 정치적인 해결은 그 다음에 고려할 사항이므로 지금 운위할 단계는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명확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라든지, 정보위원회 등을 통해 일정하게 정보를 공유하고, 정보공개에 시한을 두는 미국식의 방안도 검토해볼만하다. 사회적 책임에 무감각한 한국적인 정치인의 수준을 감안하면 그렇게 실효성 있는 비밀유지장치는 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어떻든 합의도출장치의 마련은 미뤄둘 수 없는 과제다. 그래야만 집권자의 의지만으로 모든 것이 초법적으로 결정되는 군사독재의 유산을 극복할 수 있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와 같은 사회적 합의장치를 대행할 정치인 역시 새로운 시대에 맞게 물갈이돼야 한다는 점이다. 다음 총선에서 국민의 선택이 21세기의 국운을 결정할 첫 단추가 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역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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