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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복할 수 없는 소수'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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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승복할 수 없는 소수'의 비극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80>

***1) 재검표소동과 대북비밀지원 공세의 속셈**

대통령선거는 작년 12월 19일로 끝났지만 선거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기득권세력들의 억지는 아직 끝나지 않아 보인다.

이들에게 선거 패배는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건인 듯 싶다. 지역적인 인구비례로 보나, 조직이나 선거자금으로 보나, 대통령 후보들에게 줄을 섰던 지지세력들의 역학 우위로 보나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였다고 지금도 생각하기 때문이다. 선거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도처에 보인다.

87년 대선 당시 4자필승론을 주장했던 당시 김대중 후보 진영에서 한때 제기됐던 개표조작설을 연상시키는 컴퓨터 개표조작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기득권세력들이 가장 큰 적이라고 생각했던 사이버 공간을 통해 제기됐고, 그것은 기득권세력들의 아직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현실적인 위력을 반영이라도 하듯 수억원의 돈을 들여 재검표를 하는 소동으로까지 이어졌다.

전자개표에 대한 불신은 인터넷에 대한 불신과 일맥상통한다. 인터넷의 정치적인 힘이 거짓이 아니었듯 전자개표 역시 그 원리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틀릴 이유가 없다는 점도 너무나 명백하다. 하지만 인터넷을 불신했듯 전자개표도 불신했고, 그것이 결국 재검표를 통해 정치적으로는 두번째 사망하는 결과를 빚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비밀지원에 대한 기득권세력들의 일대반격도 결국은 승복할 수 없는 소수의 정신적 공황상태,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한 분석이다. 이들의 공격이 표면적으로는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비밀지원의 정당성 문제에 집착하는 듯이 보일 수도 있으나 공격의 배면에는 "그러면 그렇지, 대통령선거국면에서 이런 사실들이 드러났다면 우리가 질래야 질 수 없는 선거였어"라는 심리상태가 개재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란 얘기다.

냉정하게 직시한다면 설사 이러한 기득권세력의 심리상태가 사실에 입각한 것이라 하더라도 지금 대통령선거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러한 공세의 정치적 의도는 매우 분명하다. 기득권세력의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인 한나라당의 존폐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재검표소동의 정치적 책임 문제를 놓고 분열 직전에 있다.

따라서 대북비밀지원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는 최소한 두 가지 정치적 이득이 있다. 하나는 분열직전의 한나라당을 유지시켜나갈 수 있는 정치적 동력이 된다는 점이 그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전히 노무현 정권에 대해 미심쩍은 눈길을 보내고 있는 영남유권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바탕이 될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2) 경상도는 이미 변하고 있다 - 지역주의 종언의 조짐들**

지난 대선은 이유야 어찌됐건 영호남의 지역주의가 굳건히 온존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하지만 부산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노무현 당선자의 등장으로 인해 최소한 부산경남에서는 어느 정도 정서가 변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변화와 개혁은 움직일 수 없는 시대적 추세이며, 따라서 (대선 때 그를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차라리 노무현 당선자가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었다는 쪽으로 민심이 슬슬 이동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사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지역주의에 기반해 기득권을 고수해온 이들에게는 악몽과도 같은 일일 수도 있다.

지금 시대적인 패러다임의 변혁 속에서도 한나라당이 큰 소리 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국회에서의 다수세력 확보란 점에 있다. 다음 총선 때까지 한나라당이 분열되지만 않는다면, 최소한 1년여의 기간동안은 기득권 상실을 최대한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일차적인 목표는 이슈 제기를 통해 분열을 막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비밀지원 시인은 따라서 이들에게 최대의 호재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손 치더라도 다음은 여전히 문제다. 총선에서 일패도지한다면 남은 4년은 더 큰 문제일 것이다. 여기에도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공세가 어느 정도 이들에게는 해답일 수도 있다. 노무현 정권에게 선택을 강요함으로써, 영호남 지역주의를 유지시킬 수 있을 가능성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즉 노무현 정권이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확실한 단절을 선택한다면, 호남인들의 마음에 불가피하게 상처를 줄 수 있을 것이며, 반대로 확실한 단절이 아니라면, 영남인들의 정서를 자극할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는 얘기다. 확실히 노무현 정권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지역주의로만 대선을 평가할 수는 없지만, 논점을 좁혀 오로지 지역주의적 관점에서만 본다면 한나라당과 기득권세력들은 호재를 잡은 셈이다. 총공세의 이면에는 이같은 정치적 계산이 개재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3) 정답은 복잡하지 않다 - 노무현 정권이 해야할 일**

하지만 이번 대통령선거가 단순히 지역주의의 결과였던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지역주의가 현실적으로 존재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허구의 믿음이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것은 뗏목지기님이 정치웹진 서프라이즈에 올라온 다음의 글로 필자의 견해를 대신하겠다.

***대선의 결과가 비영남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뗏목지기(raftwood@chol.com) 2003/2/2(일)**

"투표행위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각자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형태로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요. 사시 합격자 수를 줄이겠다는 어느 후보의 의견이 사시생들의 투표행위에 영향을 주었을 테고, 의약분업에 대한 입장은 의사와 약사에게, 아들을 군대 안 보낸 것은 군인들에게,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은 경기, 강원 북부 지역민들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물론 더 넓게 보아 특정 지역에 대한 이익의 여부로 이루어진 투표 행위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선의 결과가 경상도 패권주의에 대항하여 비영남인들의 이익을 지킨 것이었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회창 후보를 통해 영남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영남인들의 광범위한 믿음과, 노무현 후보를 통해서 비영남권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는 일부 비영남인들의 믿음은 모두가 착각이기 때문입니다.

이회창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영남권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영남인들의 광범위한 믿음은, 김대중 집권 5년간 자신들이 엄청난 차별과 불이익을 받았다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 때문에 영남인들의 광범위한 투표 행위 자체가 자기 지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결과였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지난 5년간의 불이익과 앞으로 5년간의 불이익에 대한 영남인들의 믿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한겨레21 444호 <2%경제학-그 정권이 지역경제 망쳤다고?>를 보면, 지역간 경제 지표를 통해 이런 생각의 허구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지역주의적인 투표행태는 그 지역 일반계층의 이익이 아닌 특정계층의 이익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대선의 결과를 지역간의 이익 경쟁의 결과로서 보는 분석은 지역주의를 통해 이득을 볼 수 있는 특정 계층에게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위험한 분석입니다.

특히 저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많은 사람들이, 지역주의 타파를 통한 한국사회 전반의 발전과 진보에 희망을 걸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것을 단지 '경상도에 대항한' 비영남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투표행위로 보는 것은 그 자체로서 위험할 뿐 아니라 그런 희망을 폄하하는 결과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몇 발 양보해서 이번 대선의 결과가 '경상도 패권주의'에 대한 승리라는 부분을 인정한다고 해도, 그 결과를 비영남인의 이익을 지킨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지역간 차별을 극복하고 한국 사회의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첫걸음으로서 더 크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역주의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전라도' 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과 함께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해 나갔으면 합니다.

이번 설에 대구 집에 갔습니다. 영남경제의 불이익에 관해 제가 위의 기사를 인용해서 논박을 했더니, 아버님께서 갑자기 주제를 바꿔서 2번째로 정권을 잡은 전라도 정치집단은 이번 집권기간 동안 헌법 혹은 선거법 개정을 통해 장기집권을 획책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놓으시더군요. 오호~ 통재라~

정권 획득이 특정 지역의 이익에 도움을 줄 것이라는 광범위한 믿음이 이번 정권에서는 깨졌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을 위해 필요한 논리를 함께 머리 맞대고 만들어 나가야겠지요. 하여간에 지역주의 타파의 길은 멀고도 험합니다~~ ^^"


이런 점을 고려할 때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비밀지원에 대한 노무현 정권의 선택은 의외로 정답이 이미 나와 있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필자도 김대통령의 2,240억원 지원설이 처음 제기됐을 때 만일 그것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노벨 평화상을 타보겠다는 사욕에서 비롯된 것이 사실이라면 하야(下野)해야 마땅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렇다면 단죄를 받아야 한다. 그러한 믿음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도 그렇다고 믿지는 않는다.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전환을 이루겠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생각에는 사익과 공익이 혼재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사익보다는 공익이 더 앞섰을 것이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그러나 진실이야 어찌됐건 김대중 대통령을 불신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5년집권 동안 불이익을 입었다고 확신하는, 그러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필자와 정반대 견해를 가질 수도 있다.

필자처럼 경상도 출신이지만 김대중 대통령의 오랜 야당시절을 출입기자로 취재해온 사람의 입장에서 그를 믿는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전자개표의 진실을 아는 사람들에게 조작설 주장은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일 뿐이라고 확신했지만 그것 역시 개인의 믿음이었을 뿐이다.

승복할 수 없는 소수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힘을 보유한 기득권 세력들의 억지주장을 뒤엎기 위해서는 정면돌파 이외에 다른 수단은 없다. 어처구니없는 주장이었지만 대법원이 개입해 재검표를 했듯이, 그렇게 해서 그들의 저항을 잠재웠듯이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비밀지원에 대한 여러 가지 의혹도 단순히 통치행위란 언급만으로 넘어갈 수는 없으며, 특검을 하든 국정조사를 하든 투명한 방법으로 진상을 밝히는 것 외에 우회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그로 인해 대북관계에 손상이 간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김대중 정권 때와 같을 수는 없다. 김대중 정권이 수많은 수구기득권세력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북한에 드리운 두터운 커튼을 열어놓았기 때문에 이제는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대북정책이 전개되지 않을 수 없는 환경으로 접어들고 있다.

북한은 이미 개방을 향해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기 때문이다. 북핵위기도 결국은 이러한 개방의 진통이란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북한에 대해서도 할 말, 할 요구 다하면서 도울 수 있으면 도와야 하는 단계로 진입했다는 얘기다. 물론 그러다가 우발적인 도발이나 일시적인 경색으로 갈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제는 남북간 비밀접촉이 공개접촉에 우선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개방정책에 대한 비화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공개되는 것이 나았겠지만, 수구와 개혁이 혼재하는 한국의 현 상황에서는 이제 어쩔 수 없이 공개할 것은 공개해야만 하는 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기왕 공개하는 바에는 아주 철저하게, 그리고 그 잘잘못을 남김없이 밝히는 그런 결단이 됐으면 더할 나위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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