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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상선 대북송금 보도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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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현대상선 대북송금 보도를 보고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79>

현대상선이 지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북한측에 2240억원(당시 환율로 2억달러)를 보냈다는 소식이 신문지면을 덮고 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내용이 인터넷 언론인 오마이뉴스에 최초로 보도됐고, 종이신문은 오마이뉴스를 받아 보도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종이신문이 아닌 인터넷 언론이 특종보도했다는 것도 시대적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주목된다.

현대상선이 북한에 2240억원을 송금했다는 얘기는 사실 놀랄만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따지고 보면 또 놀랄만한 일은 아니기도 하다. 놀라운 것은 아마도 노무현 당선자의 측근인물로 보이는 '여권관계자'의 입을 통해서 확인됐다는 점이 그것이고, 놀랍지 않은 것은 이미 문희상 청와대비서실장 내정자가 비슷한 얘기로 사전에 변죽을 울린 바 있어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라는 점이 그것이라고 하겠다.

문희상 내정자는 지난 15일 "내가 아는 김대중 대통령의 성격으로 볼 때 그런 것(돈주는 것)을 엄청 싫어하는 그가 한 것은 아니라고 믿지만, 만일 통치권 차원의 일이었다면 '통치행위였다'고 고백을 하든지 하고 덮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문 내정자의 얘기를 뒤집어 보면 돈주는 행위가 있었다는 점을 사실상 시인하는 것이다. 이번 오마이뉴스에 보도된 내용은 사실 문내정자 발언의 부연에 지나지 않는다.(필자는 개인적으로 문 내정자의 발언 이후 왜 종이언론에서 후속보도가 없었는지 좀 궁금하다. 필자식으로 문내정자의 발언을 뒤짚어보는 것은 사실 기자로서는 상식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어떻든 '여권 관계자'(필자로서는 누군지 짐작이 가지만 필자가 밝힐 이유는 없겠다)의 입으로 확인된 사실에 대해 이 땅의 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상당히 기분 나빠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산업은행을 통해 나온 돈이 대출금이긴 하지만 역시 국책은행이란 점에서 국민 호주머니에서 결국 나온 돈일 것이고, 현대상선이 북한에 돈을 줬다는 형식을 취하기는 했지만 국민들에게는 그런 돈으로 국민들 몰래 북한에 퍼준 것이 아니냐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는 있으며, 더구나 시점상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송금된 것이어서 혹시라도 정상회담에 대한 대가가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나쁨이 발전되면 햇볕정책이란 것도 결국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하기 위해서, 그러한 결과물인 노벨 평화상을 받기 위한 것에 불과하며, 그런데다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을 쓴게 아닌가 여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지금은 보다 냉정하게 생각할 시점이라는 것이 필자의 견해다. 왜 무작정 기분나빠할 이유가 없는 것인가.

우리가 시대를 살면서 발생하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이 목격하고 때로는 무심코 넘기기도 하지만 모든 것은 그 시대의 역사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남북정상회담으로 절정을 이뤘던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갖는 역사성도 분명히 있다. 그것은 최소한 이러한 전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즉 경제적으로, 심지어는 군사적으로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는 객관적 상황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대목은 단 한가지, 북한 정권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우발적인 도발이었다. 북한 정권은 개방을 통해 안정될 수 있고, 개방을 통해서만 자생적 민주화의 바람이 불 수 있으며, 지금은 좀 손해본다 싶더라도 이러한 방안만이 우발적인 전쟁가능성을 줄이면서 장기적으로 평화통일로 이르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바로 김대중 대통령이 꿰뚫어본 햇볕정책의 역사성이었다고 풀이할 수 있다.

햇볕정책을 한다고 김대중 대통령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보좌진들(박지원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든지, 임동원 특보 등)도 함께 하는 작업이었고, 무엇보다 북한에 돈맛을 보여주는 실질적인 교류는 살아생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맡은 역할이었다. 이런 여러가지 역할들이 합쳐져서 햇볕정책은 일정한 성과, 즉 북한으로서는 남한 이외에 체제안정을 도와줄 국가가 없다는 인식을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하겠다.

어떤 외교교섭에서도 커튼 뒷편에서 일어난 과정 세세한 것들까지 다 까발릴 때 모든 국민을 만족시켜줄 수는 없다. 최고결정권자의 판단을 흐리지 않기 위해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하는 일도 있었을 것이요, 특히나 대북교섭이란 초법적인 통치행위(북한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교류하는 것은 명백히 국가보안법 위반행위다)에서는 더더욱 공개하지 못할 사연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문희상 내정자의 발언은 말하자면 이같은 과정에 대한 부연설명일 수도 있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변명의 성격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판단하는 한 그때 당시 햇볕정책은 분명히 옳은 방향이었으며, 시행과정에 어떤 착오나 거래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 또한 일종의 외교행위인 것이 분명한 이상 큰 틀에서는 옳았다는 것이다. 설사 2240억원을 현대가 비밀리에 송금을 했다 치더라도, 그것이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등 햇볕정책을 성공리에 추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면, 그것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사심(私心)이 들어있다거나 역사적으로 틀린 판단이라고 몰아부칠 수 없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인 것이다.

그렇다면 왜 노무현 당선자 측근인사의 입에서 이런 사실들이 밝혀지거나 확인이 되고 있는 것일까. 햇볕정책을 성사시킨 비하인드 스토리는 사실 먼훗날 밝혀져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권교체의 회오리 속에서 어떤 경로를 통했건 야당의 입을 통해 이런 의혹이 제기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즉 지금 어떻게든 정리를 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에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정권을 담당할 노무현 당선자나, 그들의 측근들이 정권을 인수하면서 알게 됐고 확인했던 사실들을 조금씩 밝히지 않을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 더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이 문제는 이런 식으로 밝혀지고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달라진 환경에 맞춰 새로운 역사성 속에서 전개돼야만 하기 때문에 과거를 어떤 식으로든지 정리하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은 햇볕정책의 성과물 속에서 진행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이 밑바탕으로 활용해야 할 햇볕정책의 성과물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빗장을 열어놓은 결과 북한이 피해갈 수 없게 된 개방이란 환경을 먼저 꼽을 수 있다. 퍼주기란 비난 속에서도 북한의 굳게 닫힌 문을 줄곧 두드려온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은 일단 문을 딴 것만으로도 평가를 받아야 한다.

북한의 개방은 체제유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을 정도로 이제 피해갈 수 없는 대세가 됐다. 따라서 노무현 정권은 미국에 대해서도 '노(No)'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이제야말로 북한에 대해서도 '노(No)'라고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노무현 당선자가 지난 24일 미국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인권탄압과 북한 주민의 고통스러운 상황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은 북한에 대해서도 요구할 것은 요구하고, 거절할 것은 거절하겠다는 의사표시인 것으로 해석된다. 단순히 미국에 대한 립서비스는 분명 아니다. 김대중 정권의 대북정책을 퍼주기로 인식해왔던 이 땅의 보수적인 사람들도 앞으로는 북한에 요구할 것은 당당히 요구하는 정권의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러한 당당한 자세가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없었더라면 결코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란 점이다. 김대중 정권은 여러가지 면에서 부정적인 요소들을 많이 남겼지만 최소한 대북정책에 관한한 필자는 "김대중도 맞았고, 앞으로 노무현도 맞을 것이다"라고 예견한다. 불과 5년의 시간이지만, 환경은 급변하고 있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국익과 국민을 생각하는 지도자라는 믿음 자체가 손상이 가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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