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의 한 고위관계자가 "현대상선이 지난 2000년 6월7일 산업은행으로부터 긴급대출자금으로 받은 4천억원 가운데 2천2백40억원(2억달러)을 북한에 송금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으며 청와대와 국정원을 통해 이같은 사실이 확인됐다는 보도가 나와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여권 고위관계자, "2억달러 북에 송금"**
오마이뉴스는 29일 여권 관계자가 "4천억원 대북지원 의혹에 대해 관계기관에 확인한 결과 당시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대북송금을 주도했고 국가정보원은 `송금 편의'를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현대상선에 대출된 4천억원중 일부가 대북지원에 사용됐다면 상식적으로 볼때 복잡한 `돈세탁'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되나 '뜻밖에도' 현대는 국정원을 통해 직접 송금하는 방식을 택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당시 국정원장은 최근 대통령특사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임동원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였다.
이 신문은 또 이같은 사실이 청와대와 국정원을 통해서도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에 따르면 2000년 6월7일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은 현대상선은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4천억원 가운데 1천760억원을 계열사 자금운용에 사용하고, 나머지 2천240억원을 대출받은 다음날 국정원 계좌를 통해 환전, 현대의 해외지사를 통해 북한에 송금했다"고 전했다.
또 확인요청을 받은 국정원 고위관계자도 "현대가 2억달러를 송금한 것은 사실이다. 당시 국정원은 현대를 앞세워 대북협상의 돌파구를 모색했고, 그 때문에 현대에 `송금편의'를 제공한 것이다. 그러나 국정원의 계좌를 통해 송금하거나 국정원이 환전해준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박지원-송호경 커넥션도 주목 대상**
오마이뉴스측은 30일 이 보도와 관련, 대북 송금설을 확인해준 최초의 여권 고위관계자는 "민주당쪽 인사가 아닌 여권 고위인사"라고 밝혔다.
이 기사를 특종보도한 오마이뉴스의 김당 기자는 이날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사실을 밝혔다.
김당 기자는 이와 관련, "노무현 당선자측 등 새 정부 진영이 며칠 전부터 이 문제를 새 정부 출범 전에 깨끗하게 털고가기로 하고 심도깊게 논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해 대북송금 사실을 확인해준 쪽이 새 정부측 인사가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기도 하다.
김 기자는 또 현대의 대북송금과 송금 직후 열린 남북정상회담과의 연관성에 대해 "당시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특사 역할을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현 대통령 비서실장)이 맡았고 남북정상회담 북쪽 파트너가 현대 대북사업의 맞상대였던 송호경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완전히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이어 "현대측에서 대북송금 사실을 알고 있었던 인물은 고 정주영 명예회장, 정몽헌 현대아산이사회장 등으로 추정된다"고 덧붙였다.
***임동원-박지원 수사 불가피**
대북송금 의혹이 이처럼 표면화됨에 따라 앞으로 이 문제는 DJ정권과 노무현 새정부의 관계는 물론, 남북 관계에도 커다란 파장을 미칠 전망이다.
여권인사의 증언이 사실로 밝혀질 경우 우선 문제가 되는 쪽은 이 돈의 대북송금을 도와준 임동원 당시 국정원장과, 당시 남북정상회담 성사를 주도한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이다.
이 사실을 확인해준 여권인사는 오마이뉴스측에 "금강산 관광개발사업 등을 30년 동안 독점적으로 보장받는 것을 전제로 한 사업계약에 따른 '대가금'"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대북송금 시점이 남북정상회담 직전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송금된 돈이 남북정상회담 대가가 아니냐는 의혹은 쉽게 씻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특히 송금과정에 국정원이 개입한 대목은 이같은 의혹을 한층 증폭시키고 있다.
따라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할 경우 현재 김대중대통령의 양대 분신격인 임동원-박지원 두사람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지며, 그 결과 김대통령도 치명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와 관련, 정가에서는 지난 15일 문희상 대통령비서실장내정자가 "내가 아는 김대통령의 성격으로 볼 때 그런 것(돈 주는 것)을 엄청 싫어하는 그가 한 것은 아니라고 믿지만, 만일 통치권 차원의 일이었다면 '통치행위였다'고 대국민선언을 하든지 고백을 하든지 하고 덮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을 새삼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가에서는 이같은 문 비서실장내정자 발언이 DJ에 대한 마지막 '배려'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기도 하다.
***남북관계 경색도 신경써야 할 대목**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이번 파문이 앞으로 남북관계에 미칠 파장이다.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남북관계가 경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송금한 돈을 받은 쪽은 북한정권이다. 사회주의권과의 협상과정에 돈이 오간 것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노태우정권시절 폴란드, 소련 등과 수교를 하면서 적게는 수억달러에서 많게는 30억달러의 천문학적 거금이 경협차관 등의 형식을 빌어 반대급부로 주어졌다. 또한 북한과의 관계만 보더라도 언론사 사장단 등이 방북할 때마다 선물비 명목으로 상당한 거금을 거두어 북한정부에 주기도 했다.
이런 관행을 볼 때 대북송금은 문희상 비서실장내정자측 표현대로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통치행위'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받은 쪽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밀거래 사실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알레르기적 반응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측 입장에서 보면 이같은 폭로가 자신의 통치권자의 위신을 크게 깎아내리는 일로 비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이같은 대북 송금은 북한에 대한 현금지원이 북한의 미사일 및 핵개발에 전용될 위험성을 주장해온 미국 및 국내의 매파들에게도 발언권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낳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측면들을 고려할 때 북핵 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극도로 예민한 현시점에 이 문제가 불거졌다는 사실은 앞으로 북핵 문제를 대화로 푸는 데 있어 상당한 장애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외교가의 우려다.
현재 감사원은 현대상선이 지난 28일 제출한 자료를 토대로 대북 4천억 지원설에 대한 감사를 재개한 상태다. 현대측이 자료를 제출하기에 앞서 감사원은 4천억원중 1천7백60억원의 행방은 산은 입출금 내역과 수표이서 확인 등을 통해 밝혀냈으나 나머지 2천2백40억원은 용처가 불분명하다고 밝힌 바 있다. 검찰도 설이후에 이 의혹에 대한 본격수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이미 판도라의 상자는 열린 형국이다. 진실을 한 점 의혹없이 밝히는 한편, 이번 사안이 남북관계 경색으로 작용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세심한 노력이 요구된다는 게 여론의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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