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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대중 기자 글을 읽고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75>

***"껍질을 깨는 아픔 없이는 국가이익도 없다"**

조선일보 김대중 기자가 편집인직을 물러나 '이사 기자'로 발령받아 미국으로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필자는 상당한 기대를 했었다. 김대중 기자의 그간 논조에 불만이 많았던 사람들은 그가 미국으로 가서 폭넓은 안면을 이용해 한국의 보수적인 목소리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가졌었겠지만 필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 대선 결과는 김대중 기자 뿐만 아니라 과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적극 지지했던 일부 지식인계층의 세계관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나이가 들면 대부분 그러하지만, 아무리 불길한 예측이라 하더라도 현실로 드러나지 않는 이상 이들의 인식은 좀체 바뀌질 않는다. 그러나 일단 믿기지 않았던 일이 현실화되면 두가지 부류로 사람들은 나눠진다. 하나는 여전히 세계관을 바꾸지 않으면서 현실을 부정하려만 드는 이들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현실을 가져오게 만든 세상의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해보려는 이들이라고 하겠다.

그가 편집인직에서 물러난 것도, 더군다나 관리자가 아닌 일선기자 자격으로 미국으로 떠나기로 결정한 것도 필자는 김대중기자가 후자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김대중 기자가 지난 대선에서 받았던 충격이 일선기자의 정열로 되살아나, 극심한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야만 하는 후배기자들의 귀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았다. 그러나 최소한 그가 25일자 조선일보에 쓴 <배신감>이란 칼럼만으로 미뤄볼 때는 필자의 판단이 오판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고 있다.

김대중 기자의 칼럼이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새 정권의 등장으로 변화가 예고되는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한국의 변화를 배신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러한 배신감은 정말로 주한미군 철수를 가능하게 만드는 여론이 될 수도 있다는 논지를 펴고 있다. 따라서 새 정부 인사들이 자긍심을 강조하는 것도 좋지만 한미관계의 바람직한 복원에 더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결론적인 충고를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있다.

필자는 김대중 기자와 달리 결론부터 얘기한다면 이러한 주장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고, 무엇보다도 한미관계의 중대한 한 축인 한국의 변화에 대한 이해가 전적으로 결여돼 있다. 한국의 변화란 무엇인가.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나 그를 보좌하는 그룹들의 대미관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를 선택했던 지지자들, 특히 앞으로 한국을 책임질 젊은이들의 대다수가 미국에 대한 당당한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는 변화가 요점이다.

과거 한국인들에게 미국이란 외교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상이었다. 휴전선을 중간에 놓고 막대한 재래식 군사력으로 대치해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모자라는 전력(戰力)을 보충해줄 수 있는 미국은 달리 대안이 없는 유일무이한 국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러시아는 구(舊)소련이 아니며, 중국도 변화의 와중에 놓여 있다. 러시아와 중국은 더 이상 북한의 군사적인 후원자가 아니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한국 최대의 수출시장으로 부상했다.

남북관계도 이젠 역전됐다. 폐쇄된 종교국가를 고수했던 북한은 이제 지구상에서 고립된 유일한 나라이며,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한국의 비교대상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제 한국에게 북한은 여전히 불안한 나라이긴 하지만, 과도기적인 상황에서 있을 수 있는 비합리적인 판단에 의한 무력도발의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면서, 개방을 시키고, 돈맛을 보여주고, 점진적인 내부의 민주화를 유도해서, 궁극적으로 통일의 길로 따라올 수 있도록 달래야 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미국의 우려(그것도 미국인 전체의 감정이라고 보지는 않지만)를 유발한 한국의 변화에는 바로 이러한 상황이 전제돼 있다는 점을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된다.

한번 바뀌기 시작한 민심의 조류를 거꾸로 돌려놓을 수는 없다. 한미관계는 이러한 바뀐 민심의 바탕 위에서 새롭게 변화해야 한다. 이것이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은 바로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정치적 사건이다. 미국이 한국을 오해한다면 바로 김대중 기자와 같은 영향력있는 분들이 설득해야 할 몫이기도 하다.

김대중 기자는 미국인들이 신념있는 사람을 제일로 친다고 했다. 미국의 외교정책을 그대로 복사한 과거 외교입안자들을 필자는 미국인들이 신념있는 사람으로 보리라고 믿지 않는다. 필자가 들은 바로도 미국은 당당한 사람을 높게 친다고 했다. 북미갈등의 시기에 자기나라 민심도 전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미국 편을 드는 나라를 과연 당당하고 신념있는 국가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인가. 김대중 정권은 불행하게도 최소한 대미관계에 관한 한 당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은 당당함을 요구하는 민심을 바탕으로 집권했다. 설사 그가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렇게 나가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군소리없이 미국 국무장관의 나팔수 노릇을 해왔던 한국외교의 변화에 대해 미국은 당황할 수도 있고, 과거의 패러다임에 사로잡힌 미국의 보수논객들은 한국에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심리가 주한미군 철수론이니 뭐니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필자는 믿는다. 그렇지만 미국에도 한국의 변화를 이해하는 사람들은 있다. 이제 국익은 그러한 미국을 설득하면서 그들이 기분나빠 하더라도 할말은 해야만 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어떻게 껍질을 깨는 아픔이 없이 민족자존을 논할 수 있단 말인가. 필자는 국익에도 이러한 당당한 대미자세가 해가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러한 필자의 믿음과 상관없이 한미관계는 그야말로 변화의 시기를 맞아 진통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진통의 시기에 한국의 변화를 미국 조야에 잘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선배기자로 기억되기를 진정으로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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