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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투성이'에게 배후가 있다고?

서영석의 '삐딱하게 본 정치' <74>

***인터넷 정치의 본질을 밝힌다: 續 인터넷 살생부의 진실**

***1. 풀뿌리 민주주의의 현장으로 진화한 인터넷**

'피투성이' 왕현웅씨의 살생부가 계속 화제다. 왕씨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살생부에 올라온 정도의 정보는 네티즌들에게는 상식 수준이다. 인터넷에서 살생부 자체는 이미 화제가 아니다. 지금 들끓고 있는 주요한 기류는 왕씨를 검찰에 고발한데 대한 분노의 물결일 뿐이다.

그런데도 오프라인, 즉 정치현장에서는 여전히 피투성이의 정체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일개 용접공이 그런 수준높은(?) 글들을 절대로 쓸 수 없을 것이며, 누군가 배후가 있는게 틀림없다는 분위기다. 그런 얘기를 입밖에 내뱉는 한심한 정치인도 있다. 실제로 그렇게 믿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인지 분간은 잘 가지 않는다. 어떻든 온라인과 오프라인 사이에는, 바꿔말해 인터넷의 정치공간과 현실정치 사이에는 뚜렷한 인식의 괴리가 존재한다.

현실정치권만 그런가. 보수언론과 그 지면을 빌어 발언하는 오프라인 학자나 논평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글을 통해 보이는 인식의 배면에는 이처럼 너무나 정확하기만 한 내용의 정치인 행적과 그에 대한 비판을 '고졸 노동자 정도'의 수준으로는 절대로 쓸 수는 없을 것이란 믿음이 깔려져 있다.

'20대,30대의 철부지들'이 어떻게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고매한 식견과 유사한, 혹은 그러한 안목을 뛰어넘는 글들을 쓸 수 있단 말인가. 틀림없이 살생부 작성에 정보와 방향을 제공한 배후가 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인식은 오프라인 현실정치인의 인식과 완전히 동형(同形)이다. 이들의 오해와 편견, 심지어 두려움은 바로 인식의 괴리를 초래한 무지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정치의 토양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진화는 인터넷 강국 한국만의 현실일지도 모른다. 진화의 중심에는 인터넷이 있다. 인터넷은 과거 PC통신시절처럼 우리 사회의 젊은 층이나 소수의 진보적인 계층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얼굴을 알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아이디(ID)라고 하는 특수한 신분증을 매개로 수많은 사람들이 교류하는 장소로 바뀐지 오래다. 이제는 네티즌이란 말도 적합치 않다. 이제 인터넷은 고양된 정치의식을 지닌 대다수 국민들(정치인들 시각에서는 유권자)의 새로운 정치참여공간으로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정보강국을 선언하면서 초고속통신망을 세계유례없는 밀도로 깔아놓은 김대중 정권의 음모(?)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도 중요한 촉매제다. 노풍(盧風)의 본질은 이처럼 정치의식을 업그레이드시킨 인터넷에서 찾아야 한다. 여전히 고루한 인식과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불행한 일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에 의한 진정한 참여민주주의가 이 새로운 정치토양 속에서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제 풀뿌리 민주주의의 터전이 되고 있는 인터넷의 정치과정과 구조,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떤 정치인도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없는 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2. 인터넷 정치학 서론**

인터넷을 참여민주주의의 공간으로 변모시킨 가장 커다란 이유는 역시 접속자의 증가에서 찾아야 한다. 사무실은 물론 가정 곳곳까지 파고든 초고속통신망을 통해 각계각층의 일상인들이 인터넷에 접속한다. 대통령선거 이후에는 50대와 60대의 인터넷 소외 연령층에서도 인터넷에 새롭게 접속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많이 접속한다고 해서 인터넷이 정치참여의 공간이 된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언론기능을 하는 인터넷 언론들이 한몫 했다. 오마이뉴스는 전혀 새로운 시각의 정보를 전달하는 종합언론의 담당했으며, 프레시안은 담론을 형성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들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인터넷이 정치공간으로 업그레이드되는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러한 인터넷의 새로운 매체들도 한국적인 인터넷 문화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게시판 문화가 없었더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을 것이다. 개인 홈페이지는 물론 카페 형식의 소규모 동호인 모임, 오프라인 언론사의 독자게시판 등은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정치훈련장소가 됐다.

짧은 글에서부터 시작해 그것이 논쟁으로 발전하고, 그러한 논쟁에서 인터넷에 접속하는 사람들의 주요한 담론으로 발전하는 과정이야말로 인터넷이 정치공간화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했다. 인터넷한겨레의 '독자토론마당' , 디지털 조선의 '독자마당'은 인터넷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게시판의 논쟁을 한군데로 모으는 역할을 맡았다.

이러한 정치의식의 극점은 선거과정에서 노무현 당선자의 홈페이지(과거 '노하우')에서 폭발했다. 노하우의 베스트 뷰는 이름없는 네티즌들의 정치의식을 고양시키는데 중요한 자양분이었다. 그러나 토론과 토론이 직접적으로 충돌하고, 그러한 결과 새로운 담론이 형성되는 진정한 쌍방향성은 지난해 10월부터 등장한 '서프라이즈'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직도 진행중인 실험이어서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 어렵지만, 서프라이즈에서 기존에 있었던 방법인 댓글과 쪽글제도를 게시판에 도입한 이후 인터넷 담론은 전혀 새롭게 진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네티즌이 글을 올리면 그 글 아랫쪽에 의견을 다는 형식인 '쪽글' 기능은 그러한 기술의 발명자조차 예견하지 못했던 쌍방향성을 실현시키는 수단으로 변모한 것이다. 인터넷 살생부의 원전이 된 '토(討) 씹새명단'은 바로 이러한 쪽글 기능이 탄생시킨 '명작'이다. 과정은 이렇다. 한 네티즌이 인터넷 게시판에 떠다니는 기회주의적 정치인의 행적을 모아 글을 게시판에 올린다. 그러면 수십,수백명의 네티즌들이 그 글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나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쪽글로 단다. 그걸 정리하면 새로운 업그레이드판 글이 탄생하는 것이다. 서프라이즈 처럼 열성적인 방문자가 많은 곳에서는 순식간에 수백 수천명이 쪽글을 다는 일도 일어난다. 1시간만에 인터넷 살생부같은 문서가 등장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이것이다.

인터넷정치의 기반인 네티즌들의 고양된 정치의식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한 진정한 정치혁명은 이제 막 출발선에 서 있을뿐이다.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 예측할 수 없는 정치인은 도태되고 말 것이다. 이제 인터넷이 정치를 따라가던 시절은 지나갔다. 정치가 인터넷으로 이름되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토양에 적응해야만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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