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5주기를 사흘 앞둔 13일 오전 제주시 구좌읍 종달포구. 김동수씨 아내 김형숙씨가 두 딸과 함께 '꼴통 동수 달려'라고 적힌 피켓을 내보였다.
바로 옆 포구 주차장에 동수씨가 가슴팍에 '세월호를 잊지 말아주세요'라고 쓰여진 옷을 입고 연신 몸 풀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동수씨 주변으로 6명의 달림이들이 모여들었다. 서로 오른 손을 앞으로 내밀더니 완주의 의미를 다음은 파이팅 포구에 울려퍼졌다.
구좌읍 출신인 동수씨는 어릴 적부터 운동을 잘했다. 체육교사의 눈에 띄어 고등학교까지 육상선수를 했다. 제주고를 졸업하고 6년간 모교인 김녕중에서 육상 순회 코치도 맡았다.
후배 이동헌(47)씨는 동수씨를 학창시절부터 건강하고 의협심과 열정이 넘치는 선배로 기억했다. 선배가 홀로 달린다는 소식을 듣고 동호회 회원들 선뜻 함께 발을 맞추기로 했다.
여느 가장들과 같이 직장 생활을 하던 중 2005년 지인의 권유로 마라톤 동호회 활동을 시작했다. 뛰기는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흘리는 땀만큼 걱정거리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고된 화물기사 생활을 하면서도 달리기는 그와 함께였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동수씨는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8분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세월호 침몰이 시작되자, 선내 소방호스를 자신의 몸에 감고 단원고 학생 등 20여명의 목숨을 구했다.
이 과정에서 한쪽 손가락 신경이 끊어지고 어깨를 다치는 부상을 입었다. 사람들은 단원고 학생들을 구하는 동영상 속 그의 모습을 보고 '파란바지의 의인'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 1년여 뒤인 2015년 6월 동수씨를 의상자로 인정했다. 2018년 1월에는 국민훈장 동백장까지 수여했지만 그날의 기억은 지금껏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남아있다.
극단적 선택만 수차례였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이 오지 않고 진통제를 들이켜도 찢어지는 고통은 계속됐다. 효능을 높인다면 독한 약을 처방할수록 몸과 정신은 망가져 갔다.
올 초부터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려니 숲길과 한라산 둘레길을 돌며 정신을 다잡았다. 달릴수록 고통도 더해졌지만 목표한 지점에 다다르면 쏟아지는 땀과 함께 시름도 흘러내렸다.
무엇보다 아내와 두 딸에 대한 미안함이 컸다.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가족들을 위해 무엇이라고 하고 싶었다. 시험을 앞둔 두 딸을 위해 응원하고 기도한다는 의미도 담았다.
곧이어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4월16일 그날을 기억해 41.6km를 달리기로 했다.
동수씨는 목적지를 제주항 2부두로 정했다. 그날 배가 가라앉지 않고 순항했다면 부품 꿈을 안고 제주로 수학여행에 나선 단원고 학생 324명 등 476명의 승객들이 도착했을 곳이다.
아빠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두 딸도 힘을 보탰다. 취업 준비에 바쁜 둘째 딸 예나(23)씨는 목적지에서 자신의 영웅인 아빠를 응원하며 제주항까지 함께 뛰기로 했다.
"달리면 숨 쉬기 조차 힘들 정도로 고통스럽죠. 그래도 뛰고 또 뛰었어요. 어쨌든 오늘 하루는 넘길 수 있으니. 이제 나 때문에 고생한 가족들을 위해, 그날을 기억하기 위해 뜁니다."
동수씨는 세월호 10주기에 새로운 도전에 계획하고 있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월호의 흔적을 따라 인천항에서 완도항까지. 4월16일을 잊지 말라며 거리도 41.6km로 정했다.
프레시안=제주의소리 교류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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