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6일로 세월호 참사 5주기를 맞는 13일,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부터 시청 앞 도로까지 다시금 추모의 물결이 이어졌다.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문화제에 앞서,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서울시청 다목적홀에서는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는 이름의 컨퍼런스가 열렸다.
이날 컨퍼런스는 참사 5주기를 맞아 그간 유가족과 시민사회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를 돌아보는 한편, 지금 우리 사회에 남은 과제와 앞으로 해야 할 일을 되돌아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컨퍼런스는 '기억' '책임' '미래'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크게 나뉘어 진행됐다. 각 키워드에 따라 발제자들이 각자 특정 주제의 이야기로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특히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여전히 세월호를 비방하며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을 처벌할 법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 광화문 광장의 추모 행사에 맞서, 대한애국당 등 특정 정치 세력과 태극기를 앞세운 이들은 군가와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 등을 강경하게 주장하며 추모 분위기를 저해했다.
혐오 발언자들의 말은 폭력...처벌해야
한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가 잘못 이해되고 있다며, 폭력은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욕하는 혐오 발언 등은 "잘못된 생각을 하는 특정 사람들의 목소리가 아니"라 "우리가 전복하려는 대항 세력이 본래의 시민 억압 상태로 사회를 되돌리려는 '반동의 정치 하에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혐오 발언은 우파 포퓰리즘의 방식으로, 한국의 경우 기존 권력이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술로 활용하고 있다"며 "약자를 우리 사회에서 분리해 떼어 낸 다음, 그들을 우리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규정하려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그 사례로 비단 세월호 참사 희생자뿐만 아니라 무슬림, 5.18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가 혐오 발언의 피해자가 되었다고 정리했다.
한 교수는 "이 같은 혐오 발언으로 인해 권력자들은 이 사회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공포에 휩쓸려 들어오는 생각 없는 사람들, 생각하기를 부정당한 사람들로 자신의 정치 기반을 확보하려 한다"며 "우리는 저 혐오발언에 강하게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수는 "저들의 혐오 발언은 표현이 아니며, 토론도 아니고, 민주주의도 아닌 권력일 뿐"이라며 이에 저항할 규제 장치를 우리 사회에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나치 찬양을 처벌하는 독일, 앵톨레랑스에 반대하고 톨레랑스를 더 확고히 하기 위해 나치 부역자를 처벌한 프랑스 사례를 제시했다.
한 교수는 한편 지난 달 11일 <프레시안>에 기고한 ‘나는 왜 5.18 망언 처벌법을 찬성하는가?’(☞바로 보기)를 재차 거론하며 피해자에게 혐오 발언자를 설득하고, 교육하자는 논리는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그는 "혐오 발언으로 인해 말이 칼이 되어 내 목을 찌르는 상황에서 왜 피해자인 '나'가 논리를 만들어야 하고, 반박하려 애써야 하느냐"며 "저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그저 가만히 있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혐오 발언자를 처벌하는 게 민주적 정의에 더 맞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한 교수는 "교육과 토론으로 혐오 정치를 교정하자는 건 좋은 말이지만, 이미 '작정한' 30%의 세력이 엄연히 존재하는 국면에서 피해자더러 교육과 토론을 하라는 건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에 다름없다"고 말했다.
세월호, 일상에서 기억할 방법 고민할 때
한 교수는 한편 '세월호를 잊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혐오 발언자들의 주장에도 '기억'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반박했다.
그는 "4.3, 5.18에서 보듯 우리 역사는 시민에게 숱한 억압을 가했으나, 우리는 이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정치의 목적으로 기억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피해자가 자기 생활을 포기하면서, 생명의 위협까지 받아가면서 만들어놓은 우리의 기억이 작동했기 때문"이라며 "우리 민중의 피와 눈물이 담긴 역사를 기억으로서 보호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 교수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부정하는 이를 처벌하는 독일을 거론하며 "이 같은 장치를 통해 시민의 기억을 보존하자는 건 우리 헌법이 '시민의 안전과 자유를 확보'해야 함을 명시한 대한민국의 존재 이유"라며 "앞으로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는 '애도의 정치'가 중요하게 작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나아가 추모가 필요한 날에도 광화문에 나와 희생자 유가족을 비난하는 이들을 제대로 제재하지 못하는 건, 헌법이 위임한 정부의 역할을 정부가 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강공했다.
그는 "참사 유가족의 아픔을 이상한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부와 국회가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며 "저들이 행하는 건 표현이 아니라 폭력으로, 저들 뒤편에 은폐한 정치권력이 작동한 결과다. 이를 단호하게 조치하지 않는다는 건, 정부의 직무유기"라고 질타했다.
세월호 참사를 우리 일상에서 기억하기 위한 준비를 할 때라는 평가도 나왔다.
김소희 피스북스 대표는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동서 갈등의 흔적을 도시 곳곳에 남겨놓아 시민이 일상에서 이 문제를 항상 되새기게끔 한 독일 베를린의 사례를 들며, 조만간 4.16연대 유가족들과 베를린 답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홀로코스트 피해를 입은 유대인을 추모하기 위해 브란덴부르크 문과 포츠담 광장 사이에 조성된 홀로코스트 메모리얼과 베를린 장벽 기념공원, 죽음의 수용소행 기차에 유대인을 태우던 그루네발트역 17번 플랫폼 등을 소개하며 일상에서 과거를 항상 기억하게끔 만든 독일의 노력을 참가자들에게 알렸다.
이어 그는 "하지만 2002년 효순이와 미선이를 아파했고, 2008년 명박산성에 맞섰고, 2014년 세월호 참사 희생자 천막 앞에서 오열한 시민의 기억을 되새길 장소는 어디에도 없다"며 "우리 앞에 놓인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즉 무겁고 장중하게 무엇인가를 기억할 장치를 특정 장소에 만드는 게 아니라, 시민의 일상 공간에서 작지만 언제나 접할 수 있는 장치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 사례로 김 대표는 나치가 저항 지식인의 저작물 2만 권을 불태운 베를린 훔볼트 대학 앞 베벨광장의 바닥에 저녁이면 빛이 올라오는 조그마한 공간 하나를 만든 사례, 비텐베르그플라츠역을 나오면 바로 보이는 '공포의 현장' 안내 표지판 등을 소개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흔히 슬픔을 표현하려면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어야만 한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러다 보면 무거움에 지쳐 사람이 기억을 외면하게 된다"며 "소소한 일상에서 '기억 투쟁'을 이어나갈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7시간' 공개해야 한다"
송기호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시기 박 전 대통령의 7시간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봉인해버려 과거를 확인치 못하게 한 황교안 현 자유한국당 대표를 향한 법리 공방을 이어나가야 한다며 당장의 과제를 소개했다.
황 대표는 대통령 권한 대행 시기 박 전 대통령의 7시간을 기록한 문건을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분류, 대중에 정확한 정보가 공개되지 않게끔 조치했다.
이에 반발한 송 변호사는 지난 2017년 6월 "'7시간 문서'를 봉인한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송 변호사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이를 뒤집어 황 대표 측 손을 들어줬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까지 올라간 상황이다.
대통령기록물에 관한 법률은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의 열람 등을 거부할 수 있는 상황을 △군사·외교·통일에 관한 비밀기록물 등 국가안보와 관련된 경우 △국민경제와 관련된 경우 △공무원 인사 관련 기록물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록물 등으로 제한해뒀다.
송 변호사는 "상식이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세월호 7시간 문건이 법에서 정한 비공개 요건에 전혀 해당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며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서 '황교안의 봉인'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황교안의 봉인' 문제는 복잡한 법리 해석의 문제가 아니며, 사람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예의에 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송 변호사는 "황 대표가 권한 대행 시절 미처 봉인하지 못한 '캐비닛 문서'의 정보공개도 되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세월호 참사 5주기 본행사인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는 이날(!3일) 오후 7시부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문화제 형식으로 열렸다. 박혜진 아나운서의 사회 아래에 이승환, MC메타, 노래패 우리나라, 4.16 합창단 등이 무대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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