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20년 동안 대표이사직을 맡아왔던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회장의 이사 재선임이 부결되면서 시민사회는 대체로 이를 '주주 촛불혁명'에 준하는 쾌거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조 회장은 이미 270억 규모의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불구속기소되어 재판이 진행 중인 상태였고, 그의 세 자녀가 100% 지분을 가진 '싸이버스카이'에 대한항공 일감을 몰아주면서 공정거래법 위반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은 대한항공 직원을 사유화하여 세관 신고도 없이 명품을 반입하여 관세법을 위반하였으며, 직원들에게 다양한 갑질을 행사하는 등 이미 기업의 평판과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행위는 이번 주주총회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 행사를 하는데 호의적인 여론을 조성하는데 기여하였고, 실제로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은 외국인 주주(세계최대의결권 자문사 ISS포함)와 소액주주와 연합해서 조 회장의 이사 연임을 저지하였다.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두고 뒷말이 많다.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시민사회 진영은 기업을 사유화한 재벌총수의 전횡과 탈법으로 대변되는 대한민국의 '재벌주의'가 주주의 적극적 권한 행사를 통해 효과적으로 제어될 수 있고, 이는 회사의 올바른 성장과 장기적 수익추구에 도움을 주며, 궁극적으로는 국민에게 이익이라는 논리를 내세운다. 반면, 재계와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보수언론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연금사회주의'라면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5% 이내로 제한하자는 주장을 앞세운다. 현재 전세계 22개 국가에서 도입하고 있는 스튜어드십 코드는 국가별로 명칭과 내용의 편차가 있음에도 기본적으로 주주가치 제고와 투자수익률 증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만큼 연금사회주의라는 비난은 재벌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어설픈 논리에 불과하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미국과 더불어 '주주자본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의 본산인 영국에서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의 배당확대와 지배구조개선을 통해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한 제도임을 안다면 이처럼 무식하고 용감한 소리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고인에게는 안됐지만 조 회장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날 주식시장에서 한진 칼(KAL)의 주가가 20.63%p나 폭등하였다는 사실이 스튜어드십 코드의 시장주의를 방증한다.
오히려 우려되는 점은 재벌에 대한 규제를 이렇게 시장을 수단으로 제어하는 방식이 타당하고 심지어 지속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이 논쟁은 이미 2000년대 초중반 소액주주운동을 앞세운 재벌개혁운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나 할까? 신자유주의의 요체인 주주자본주의를 수용한 당시의 시장중심 재벌개혁운동은 '장하성 펀드'의 해체로 한 시대를 마감한 바 있다. 그러한 흐름은 이제 다시 스튜어드십 코드로 부활하고 있는 듯하다. 누구의 말처럼 역사가 한번은 비극으로,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된다는 상투어를 빌리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당시에 놓쳤던 관점을 오늘날 그대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주자본주의의 원칙에 철저하게 조응하여 기관투자자들의 배당금과 이윤 극대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에 초점을 맞춰 수탁자의 책임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수탁자 자본주의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는 지난 30년 동안의 주주자본주의 혹은 금융자본주의가 충실하게 관철된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서 보듯 심각한 노동의 위기를 초래하였다. 금융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자본회사의 주주가치 상승과 더 많은 이윤배당 지급을 보장하기 위해 끊임없이 기업의 경제적 수익을 추구하는 기업전략을 핵심으로 한다. 주식시장에서 기업은 이제 더 이상 (물질적, 비물질적)상품을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니고, 기업이 하나의 상품이 되어 거래되고 있다. 기업의 가치(주가)가 하락하면 서슴없이 해고를 단행하고, (적대적)M&A를 통해서라도 주가를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 오늘날 경영자의 제1원칙이 되는 상황에 주주의 합리적 선택과 지배구조 개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지난 신자유주의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아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스튜어드십 코드에서 핵심역할을 담당하는 기관투자자들이 해외투자시장에서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는 기업은 블랙리스트까지 작성해서 반드시 응징하는 악명높은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기관투자자들이 이번 한진 경우처럼 우리 시민사회의 기대와 항상 뜻을 같이할 이유는 전혀 없다. 소버린-SK, 엘리엇-삼성 경우처럼 지배구조 개선과 수익극대화라는 그들의 전략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이번 한진 주총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11% 의결권은 해외투자기관이 보유한 20% 지분 없이는 불가능했고, 그들이 원하는 바는 수익 극대화를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다. 조양호 회장은 그 점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일각에서 높이 평가하는 소액투자자들의 마음은 과연 다를까? '장하성 펀드'가 왜 사라졌는지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국민연금이 이토록 재벌 위주의 지배구조 개선에 신경을 쓴다면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사내인사 선임에는 왜 기권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결과에 대한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기 전에 금융자본주의의 본질을 다시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과거와 같은 독재국가도 아닌 마당에 재벌 회장의 탈법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 검찰과 경찰, 관세청 등 범죄와 관련된 국가기관이 더 신중하게 감시하면 될 일이다(말처럼 쉽지 않은 것 또한 이 정부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튜어드십 코드로 국민의 수익자 원칙을 지켜내고, 심지어 기업 내에 친환경 친사회적 지배구조(ESG)를 확립시키겠다는 논리는 관련 기관의 주장에 불과하다. 주주자본주의에 노동이 설 자리는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조직화된 노동(노조)조차 기업의 수익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고 연기금의 시장화, 양보협약을 수용하고, 심지어는 공동결정권의 틀 내에서 공동경영(Co-Management)을 추구하면서 정규직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방어하는데 몰두하게끔 되는 것이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을지언정 이것이 대체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전개되어온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실태이다.
마지막으로 현행 스튜어드십 코드의 도입이 우리사회의 지배집단의 변화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언급하고자 한다. 공직자 재산공개나 청문회에서 드러난 우리사회 엘리트의 재산구조를 보면 어렵지 않게 확인된다. 전통적 엘리트들의 재산구조에서 부동산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면(물론 여전하다) 이 정부 초대 정책실장이었던 장하성 씨는 재산의 절반이 주식(47억 원)이었고, 최근 청문회에서 밝혀진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도 총자산의 76%(35억 원)가 주식이다.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으나 이런 분들은 대체로 1990년대에 우리사회의 주류로 진입하고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새롭게 편입된 엘리트 계층이다. 정치적으로 리버럴하지만, 연대와 공동체라는 산업사회의 가치보다는 개인주의의 능력과 시장의 가치도 존중하고 나름 주식시장에서의 이재도 밝은 교육 엘리트들이다. 우리 사회 주류가 시장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가치를 획득하는 노력을 굳이 폄하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에서 경제정의를 바로잡겠다는 논의는 지나친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남편이 하든, 부인이 하든 투자는 투자고, 투자를 한 바에는 수익을 겨냥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히 왜곡된 시장구조보다는 기관투자자들에 의한 힘 있는 질서가 나의 투자에 안정성을 제공한다. 그러나 재벌이 제어되면 시장은 민주적으로 작동할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의 경험이 아닌가? 스튜어드십 코드 의결권 행사로 진통제를 맞은 셈 치자. 그러나 그것이 경제질서를 바로잡는 만병통치약은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시민정치시평은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와 <프레시안>이 공동 기획,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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