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은 언제 해야 하나요?**
프레시안의 독자들 중에는 종합 병원의 수술실 문밖에서 보호자로서 초조하게 서있었던 경험이 있었던 분들이 꽤 있을 겁니다. 아내의 출산을 기다리는 남편의 입장으로, 혹은 부모님이 암수술 결과를 기다리는 자식의 입장으로, 수술실 앞에서의 기다림은 불안과 초조의 연속입니다.
누구도 원치 않는 것이 이런 경험이겠지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수술이라면 수술은 언제쯤 해야 할까요? 수술만은 피하고 싶은데 다른 대안은 없을까요? 오늘은 이런 문제에 대해 말씀드릴까 합니다.
수술은 크게 응급 수술(emergency operation), 선택 수술(elective surgery), 순수미용 수술(cosmetic surgery)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 분류법은 학문적인 것은 아니지만, 임상의사 입장에서 수술을 해야하는 시기에 따라 이렇게 분류해볼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예를 들면 교통 사고로 굵은 혈관이 파열된 경우는 ‘응급 수술’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환자가 응급실로 오면, 환자의 전신 상태에 대한 최소한의 검사만을 시행하고 곧바로 수술실로 환자를 이송하여 수술을 하게 됩니다. 수술시간을 앞당기는 것이 환자의 목숨을 구하는데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굵은 혈관이 파열되어 많은 혈액을 잃게 되면 바로 사망에 이르기에 다른 부수적인 요인을 돌볼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를 비유하면 1950년의 ‘6.25사변’이나 1997년의 ‘IMF사태’ 같은 것이 이런 국가 응급사태였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위(胃)에 종양이 생긴 경우에는 수술이 필요한데, 이런 수술이 ‘선택 수술’의 예가 됩니다. 위암 수술의 경우 충분한 검사를 통해 위암의 진행 단계를 알아본 다음, 어떤 방법으로 수술을 하는 것이 좋은지, 미리 항암제를 투여하여 종양의 크기를 줄인 다음에 수술을 하는 것이 더 나은지 여부를 내과 전문의와 외과 전문의의 토론을 통해 결정하고, 환자의 전신 상태를 수술에 견딜 수 있는 적절한 상태로 만든 다음에 수술을 하게 됩니다. 나라의 중대사 중에서는 ‘헌법 개정’이나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문제들이 ‘선택 수술’의 경우와 비교될 수 있을 겁니다.
‘순수미용 수술’의 예로는 융비술(코 높이는 수술)이나 쌍꺼풀 수술을 들 수 있습니다. ‘미용 수술’은 환자가 원하고 성형외과 전문의의 진찰 결과 수술을 하는 것이 미용적으로 보다 나을 것 같은 결론이 나면, 수술에 따른 부작용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서 수술을 하면 됩니다. 수술 결과가 만족스러우면 환자가 가지고 있던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어져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할 수 있게 되는 긍정적 효과를 얻을 수 있겠지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이나 2002년 ‘한일(韓.日)월드컵 대회’등과 같은 일들이 ‘미용 수술’과 같은 경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응급 수술, 선택 수술 혹은 미용 수술은 각각의 경우에 따라서 환자에 대한 수술 방법이나 수술 과정, 혹은 수술에 따른 의사 결정 과정이 각기 다릅니다.
응급 수술의 경우 외과 전문의의 주도하에 나머지 과(科)에서는 도와주는 입장에서 전적으로 외과 주치의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응급 수술에서는 신속한 의사 결정과 빠른 수술만이 최선의 결과(환자의 생명을 구하는 것)를 얻을 수 있으므로, 수술후에 있을 후유증이나 흉터와 같은 사소한 문제는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IMF사태라는 국가응급상황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신속하게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현 대통령의 신속하고 과감한 정책 결정과 적극적인 경제개혁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선택 수술의 경우에는 수술에 따르는 후유증이나 수술후 삶의 질을 따져 가면서 수술 방법이나 수술 시기등을 결정합니다. 선택 수술 과정에서는 환자의 상태에 대한 세밀한 검사를 통해 수술이 꼭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하고, 내과 주치의와 외과 주치의 상호간에 충분한 의견 개진을 통해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성공적인 수술 결과와 수술후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는 최선의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정수도 이전 문제를 추진함에 있어 국민의 여론과 국회와의 협의과정을 통해 보다 나은 방법을 도출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가 행정수도 이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전후 국민들의 삶의 질을 살펴야 하기 때문입니다.
순수미용 수술의 경우라면 꼭 필요한 수술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성형외과 전문의와 충분한 상담을 하는 것이 좋고, 본인 스스로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를 다른 방법을 통해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만 있다면 굳이 수술을 하지 않을 수 도 있을 겁니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서 해결해야할 산적한 현안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행인 것은 IMF와 같은 국가경제 위기 상황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취임후 바로 응급 수술을 집도해야 하는 외과 전문의와 같은 입장은 아니지만, 현안들을 해결하고 공약사항을 실천에 옮기려면 5년이라는 시간이 결코 여유있는 시간은 아닐겁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책들을 펴나가면서 국민들이 불안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게 차분하고 조용한 가운데 변화를 만들어가는 지혜로움을 발휘해줄 것을 기대해봅니다. 구체적인 실천하는 방법도 가급적이면 후유증이나 흉터를 남기는 외과적인 방법보다는 후유증도 적고 흉터도 남기지 않는 내과적인 방법이면 더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이를 위해 지금 의료계에도 불고 있는 크로스-오버(cross-over)나 퓨전(fusion) 바람을 새 정부에서도 받아들이면 어떨까요? 음악이나 음식에서만 이런 붐이 일고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의료계에서도 외과계와 내과계의 영역 구분이 점차 흐려져 내과계열의 전문의들도 수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심장내과 전문의가 시술하는 협심증 치료술(혈관조영술을 통해, 가슴을 절개하지 않고도 심장의 관상동맥이 막힌 것을 뚫는 치료법)은 예전에는 흉부외과 전문의가 했던 수술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고, 피부과 전문의가 시술하는 레이져 박피술이나 보톡스 주사요법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주로 시술하던 흉터 제거술이나 주름살 제거술을 대체하고 있습니다.
이런 퓨전식 치료법들이 단칼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외과적인 수술법보다는 고가의 치료 장비가 필요하고 섬세한 시술법이 요구되지만, 더 각광을 받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환자가 수술 받기 편하고 회복이 빠르며 수술후 삶의 질이 더 좋다는 것입니다.
정부의 개혁이 국민들의 불편을 초래한다면 아무리 그 뜻이 좋다고 할지라도 국민의 저항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살피는 여유를 가지길 바랍니다. 수술 결과도 좋아야 하지만 그 과정이 힘들지 않기를 바라는 환자의 마음이나, 개혁(改革)의 과정이 너무 소란스럽지 않고 조용한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국민의 마음이나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수술은 언제 하는 것이 좋을까요? 어떤 수술의 경우라도 그 답은 하나, '수술후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 있을 때'입니다.
최근 북핵문제가 크게 불거지면서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긴장감이 예사롭지 않네요. 하지만 새 대통령의 출발이 이런 문제로 인해 다급하게 응급 수술을 집도해야 하는 외과 전문의의 입장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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