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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의 '동세서점(東勢西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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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중국어의 '동세서점(東勢西漸)'?

[김기협의 퇴각일기] 여섯 번째 이야기

작년 봄 중국어를 공부할 마음이 바짝 들었다. 중국사를 전공으로 택한 후 50년 동안 중국어 공부할 생각이 늘 있었지만, 다른 일 제쳐놓고 매달릴 만큼 절박한 마음이 든 적은 없었다. 읽는 데 별 지장이 없는 만큼, (중국어에서 번역한 책도 두 권 있다) 회화는 형편 따라 천천히 익혀 나갈 수 있으려니 하는 정도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내가 대학 제도 안에서 공부하고 활동하던 1970~80년대에 중국의 학술계가 침체해 있었기 때문에 중국어 공부에 소홀했다. 고전 한문은 고등학교 때 <현토 삼국지(懸吐 三國志)>(영창서관 펴냄)를 읽으면서부터 익숙했고, 중국사를 전공하면서도 고전 한문으로 된 사료를 읽으면 됐지, 백화문(白話文), 즉 현대 중국어 익힐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대학원 입학시험에 제2외국어로 중국어 시험을 쳐도 따로 준비 없이 합격점을 받을 수 있었다.

내가 압도적으로 의지해 온 외국어는 영어다. 대학생 때부터 중년에 이르기까지 내 독서는 한글보다 영문을 통한 것이 더 많았다. 학술 문헌은 물론이고 문학 작품까지도 영문으로 섭취했다. 덕분에 서양에 가서 지낸 기간이 짧아도 서양 학자들에게 교양인 대접을 받으며 교류할 수 있다.

작년 봄 중국어 공부를 향한 각성의 계기도 영어에 익숙하다는 조건에서 비롯된 것이니 역설적인 일이다. 몇 해 전 대니얼 A. 벨의(사회학자 대니얼 벨과 혼동되지 않도록 본인이 꼭 'A.'를 넣는다.) <차이나 모델>(서해문집 펴냄)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내 글을 쓰는 데 바빠서 번역에 손댈 틈 없이 여러 해 지내던 중에, 꼭 옮기고 싶어 번역한 책이 안핑 친의 <공자평전>(돌베개 펴냄)에 이어 <차이나 모델>이었다. 의회민주주의의 한계와 문제점에 관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참에 그 주제를 설득력 있게 다룬 책이 반가웠다. 2016년 봄 번역에 착수하고 저자와 몇 차례 메일을 주고받다가 여름에 연변 가는 길에 베이징에 들러 만나보았다.

벨 교수 집에 초대받아 부부와 와인을 놓고 대화를 나눴는데, 금융계에서 일하고 있던 부인 송빙(宋冰) 여사가 한국 역사에 의외로 관심이 많았다. 그 부모님이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에 출정했을 때 조선 땅에서 만나 결혼한 인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중국과 조선의 조공관계가 양국에 모두 이로운 것이었다고 보는 내 관점을 말하자 부부가 함께 큰 흥미를 보이며 그 의미를 캐물어 이야기가 꽤 길어졌다. 그리고 헤어지기 전에 내게 일러주기를, 학술회의 하나를 추진 중인데 한중관계사에 관한 발표를 부탁하기 위해 초청할 수도 있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 1년 이상 지난 후 벨 교수에게 메일을 받았다. 몇 달 후 베이징에서 열릴 버그루언연구소 중국센터(Berggruen Institute China Center) 주최의 '天下(천하)' 워크숍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송 여사가 이 중국센터 주임을 맡고 있다기에 그 연구소가 어떤 곳인가 검색해 보니 재미있는 곳이었다. 미국의 부호 니콜라스 버그루언이 2010년에 세운 이 연구소는 '미래 질서(future governance)'의 모색을 사명으로 하는 곳이라는데, 중국센터를 설치한 데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장래의 세계질서에서 중국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고, 또 하나는 미래의 세계질서에 대한 시사점을 중국의 전통질서에서 찾을 가능성이다. '천하' 프로젝트에서는 후자의 의미를 읽을 수 있다.

'미래 질서'의 모색을 위한 공익사업이라. 마음에 강하게 와닿는다. 공부가 어느 고비를 넘기면서부터 가치체계의 문제에 생각이 모이고 있었다. 현대 세계의 정치적 노력은 자유, 평등 등 계몽주의적 가치체계의 실현을 목표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인류문명의 현재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이 가치체계의 극복이 오히려 필요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이 체계를 구성하는 개별 가치들을 지킨다 하더라도, 그 가치들을 조직하는 방법은 달라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으로 나아가고 있다. 기존 체계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는 이 과제에 독립성을 가진 연구소가 나선다는 것이 매우 반가운 일이다.

그래서 발표문을 열심히 썼다. 'Korea’s Experiences with Big Neighbors'란 제목의 이 글에서 조선과 명나라 초기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에 초점을 놓고 두 가지 명제를 강조했다.(☞ 바로 가기)

(1) 두 나라의 관계를 맺는 데 '천명'이라는 초월적 제3자를 개입시킴으로써 관계의 안정성을 기했다. 이 초월적 제3자와 관련된 원리에 양국이 동의할 경우 일시적인 작은 이득 때문에 관계를 등지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다. 현대세계에서는 '天' 대신 '자연'이 초월적 제3자의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2) 관계를 새로 맺는 과정에서 약소국 쪽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다. 관계의 설정은 공유하는 이해관계에 기반을 두는 것인데, 그 이해관계의 존재를 약소국 쪽이 먼저 인식하기 쉽기 때문이다.

글을 쓴 뒤 주변의 몇 사람에게 보이며 의견을 청한 것은 조심스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통적 조공관계에 대한 긍정적 관점이 '사대주의자'로 몰매를 맞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 것이다. 더구나 다른 곳도 아닌 베이징에 가져가서 발표할 참인데.

글을 보여준 이들 중에 재미있는 반응이 더러 있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버그루언연구소 관계 행사라는 데 깜짝 놀라고 재미있어했다. 니콜라스 버그루언과 가까운 사이인데 그쪽 사업에 내가 참여하게 된 것이 반가웠던 것이다. 그가 니콜라스에게 내 얘기를 하고, 니콜라스가 다시 그 얘기를 송 여사에게 해서 벨 교수 부부가 내 관심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었으니 '스리쿠션'이 제대로 먹힌 셈이다. 덕분에 5월에 칭다오에서 열릴 제2차 워크숍에는 발표도 토론도 맡지 않지만, 옵서버로 뒤늦게 초청받았다. '미래 질서' 모색 사업에 지속해서 참여할 길이 열린 셈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준 것은 유시민 선생. 원고를 보여준 얼마 후 TV 프로그램 <썰전>에서 무슨 얘기 끝에 "사대주의란 걸 나쁘게만 보는 통념이 있는데..."라며 조공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여지를 지적하는 것이었다. 유 선생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를 내 '국민소통비서관'에 임명한다고. 그러자 "선생님, 그러지 않아도 제가 국민소통비서관을 자임하고 있어요" 하는 답장이 왔다. 물론 나 개인의 비서관이 아니라 온 국민의 소통비서관이라는 뜻이겠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재주껏 부려먹으면 되는 거지.

6월 16~17일 양일간 베이징대학의 한 아늑한 회의장에서 열린 워크숍은, 말 그대로 워크숍이었다. 발표자와 토론자 약 30명이 방청객 없이 이틀 꼬박 한 방에 앉아 생각을 짜내는 브레인스토밍이었다. '국제' 학술회의라면 구색 갖추고 격식 차리는 데 치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회의는 그저 효과적인 토론에만 모든 힘을 집중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여기서 언어 문제에 부딪혔다. 참석자 중 절반 남짓이 중국인이고 한국인, 일본인, 서양인이 몇 명씩 있었는데. 회의가 주로 중국어로 진행되었다. 십여 명 발표자 중 영어로 발표한 것이 나 혼자였다. 중국사를 전공한지 50년 되는 사람이 그런 자리에서 혼자 중국어를 못하다니, 낯 뜨거운 일이었다. 토론에도 제대로 참여할 수 없었다.

토론을 실시간으로 따라가지는 못하지만 대충은 알아듣는다. 어쩌면 아예 끼어들 생각 없이 듣는 데만 전념하면서 토론의 흐름을 더 예민하게 파악할 수 있는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이틀째 토론을 들으며 신기하게 생각되는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중국어가 효과적인 학술토론에 적합한 특성을 가진 언어 아닐까? 주제가 '천하'라서 그렇게 느껴지는 것뿐일까?

베이징을 떠나면서 중국어 익히는 데 힘쓸 마음을 다졌다. 제도권 학계를 떠난 후 근 30년간 혼자 공부하면서 ‘근대성’의 극복을 중심 주제로 세웠다. 그 주제에 관해서는 폭넓은 토론을 할 자리를 국내에서 많이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천하' 워크숍에서는 이 주제와 관련된 이야기가 풍성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 이 방향 토론에 앞으로 적극 참여하기 위해 중국어 익힐 필요를 느낀 것인데, 아울러 중국어로 '중국학'을 한다는 것이 제 자리를 찾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이렇게 중국어에 관해 새로운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눈이 번쩍 뜨이는 책 하나에 마주쳤다. 토머스 멀레이니의 (MIT Press). 중국 근대 정보기술사 2부작의 앞부분인데, (컴퓨터시대를 다루는 뒷부분은 2022년 예정) 타자기로 대표되는 근대 정보기술 환경 속에서 표의문자로서 중국어가 겪은 곡절을 서술한 책이다.

표음문자를 위해 개발된 정보기술이 한자에 적용되기 어려웠기 때문에 중국어는 근대세계에서 큰 핸디캡을 떠안았다. 우리 사회를 포함해 한자문명권 전체에서 한자 폐지, 알파벳화(化) 등이 근대화 과제로 제기되었다. 베트남은 한자를 폐지했고 남북한에서도 한글 전용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컴퓨터시대에 들어와서는 한자를 쓰는 중국어가 더 유리한 조건을 누리는 '인생 역전'이 일어나고 있다.

컴퓨터 환경에서 한자가 유리한 것은 정보 처리에 시간과 노력이 적게 들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漢字文化圈(한자문화권)"을 입력할 때 다섯 글자 핀인의 초성만 "hzwhq"로 치면 화면에 "漢字文化圈"이 뜨고, 엔터키를 누르면 입력이 완성된다. 6~7타면 된다. 우리 글로 "한자문화권" 입력에 15타, 영어로 "Chinese cultural sphere" 입력에 23타가 필요한 데 비해 얼마나 효율적인가!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가. 한문이나 중국어가 '덩어리 글자'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분해하려 하는 근대적 환원론-원자론의 원리를 적용하는 데 이 덩어리가 걸리적거렸다. 중국어로 전보를 치려면 글자 하나하나를 네 자리 숫자로 전환해야 했다. 전보원이나 타자수가 같은 분량의 정보를 처리하는 데 중국어가 표음문자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소요했다. 그런데 컴퓨터의 방대한 저장 능력은 정보처리에 관계론의 원리를 적용시켜 준다. 의미의 덩어리들 사이의 관계를 몽땅 저장해 놓았기 때문에 글자들의 초성만 제시해도 그 결합 사례를 바로 꺼내주는 것이다.

근대 세계사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역사다. 서양의 힘 앞에 동양의 전통이 무너지고 짓밟힌 시대였다. 나는 이 서세동점의 형세가 해소되고 있다는 생각을 십여 년간 키워 왔다. 버그루언연구소에서 미래 세계질서의 모색을 위해 '천하' 이념을 검토하러 나서는 것도 그런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멀레이니의 책을 보면 오히려 '동세서점(東勢西漸)' 양상으로 뒤집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 여지가 많은 방향이다.

<중국어 타자기> 번역을 맡아 이제 서론을 끝냈다. 오는 8월 중순 귀국 때까지 끝내고 싶은 마음인데, 그러다 보니 중국어 공부를 제대로 못 하고 있다. 작년에 공부를 새로 시작할 무렵 "이제부터 중국어를 제1외국어로 할 거야?"라고 묻는 친구에게 "아니, 제2모국어로 할 거야"라고 당당히 대답했던 내가 이래서 되나. 당장 다음 달 칭다오 회의가 걱정이다. 벨 교수를 비롯해 중국어로 담소를 나누려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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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협

40세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둔 후 20여 년간 독학으로 문명교섭사를 공부해 온 역사학자. 서울대학교 이공계 수석 입학 뒤 사학과로 전과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프레시안 장기 연재를 바탕으로 <해방일기>, <뉴라이트 비판>, <페리스코프>,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등의 책을 썼다. 프레시안 창간 때부터 거시적 관점에서 역사와 한국 사회를 조망하는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역사 앞에서>의 저자 김성칠 교수가 부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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