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투자할 만한 곳으로 평가받던 한국 증시가 대선 이후 급격히 냉대를 받고 있다. 이라크 전쟁 가능성이 고조되며 유가가 치솟는 한편 북핵 위기가 전쟁 가능성까지 거론될 정도로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투자자들은 미 상원외교위원회 민주당 간사인 조셉 바이덴 의원이 지난 주말 "북한은 이라크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라고 언급한 데 이어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23일(현지시간) "미국은 동시에 두 전선을 벌여도 승리할 수 있다"며 대북전쟁 가능성을 강하게 내비친 데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투자가, 불안감 급증하면서 주가 폭락**
이를 반영하듯 종합주가지수는 이틀 연속 하락하면서 24일 전날보다 13.56포인트, 1.96% 빠진 677.82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 역시 49.03으로 1.11포인트, 2.26% 급락했다.
외국인은 거래소에서 3백7억원을 순매도하고 코스닥에서 19억원을 순매수했다. 개인도 각각 8억원, 47억원을 처분했다. 기관이 거래소와 코스닥에서 각각 9백10억원, 63억원 어치를 사들이며 주가떠받치기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특히 거래소 기업들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블룸버그 통신은 24일 한국 증권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한국은 석유 전량을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한국기업들은 고유가에 영향을 받는다"면서 "유가가 지금처럼 배럴당 30달러가 넘게 지속된다면 산업전반에 걸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제로 유가에 직접적 영향을 받는 대한항공, 아시아나 항공 등 항공업체들은 이날 각각 5% 넘게 폭락했다.
내년 1월 중 이라크전 발발 가능성이 현실화하면서 전통적으로 강세 패턴을 보인 '1월 효과' 기대감도 급속히 희석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적어도 내년 1분기까진 횡보 또는 조정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의견이 강하다. 중동 긴장에 따른 유가 급등이 기업실적에 악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라크전쟁이 해결되면 미국·북한의 갈등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국내 증권사 소속 한 애널리스트는 "이라크 위기가 고조되고 북한 핵문제가 불거지면서 증시의 상승세가 마무리됐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반등할 때마다 물량을 줄이며 내년초를 기대하는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교보증권 관계자도 "한국증시는 간단히 국제유가와 반도체 가격으로 설명할 수 있다"며 "이라크 전쟁위기로 유가가 오르고 반도체 가격이 떨어지는 불안한 상황에서 북핵위기는 투자심리를 더욱 흔들어놨다"고 지적했다.
***이번 북핵 위기는 94년보다 심각**
북한은 현재 평안북도 영변 원자로에 설치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장비를 제거한 데 이어 IAEA의 집중 감시를 받아 온 8천여개의 폐연료봉 저장시설의 봉인 및 감시카메라도 제거한 상태다.
94년 북-미 제네바 합의에 따라 △영변의 5㎿ 원자로 △폐연료봉 8천여개 저장시설 △95∼96년 완공목표로 건설 중이던 영변의 50㎿ 원자로 △평북 태천의 200㎿ 원자로 △영변 방사화학실험실 등 북한의 5개 핵시설에 대한 동결조치가 이뤄졌으나 이중 2개에 대한 감시시설이 제거된 것으로 관측된다.
폐연료봉은 전력생산과는 무관한 것으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어 북핵 사태는 과거 94년 북핵위기 때보다 더욱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폐연료봉 8천여개면 최소한 3개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25㎏의 플루토늄239를 추출할 수 있다. 이번에 봉인이 제거된 폐연료봉 저장시설은 영변 5㎿ 원자로 인근에 있으며, IAEA는 폐연료봉이 든 스테인리스통을 이중 밀봉한 뒤 저장소 내 수조 속에 보관하고 감시카메라를 작동해왔다.
워싱턴 포스트(WP)도 24일 "이란, 북한 핵계획이 새로운 위험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이들 나라들이 진행해온 구체적인 핵시설에 대해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 2년간 비밀핵프로그램을 북부사막에 관개공사로 위장해왔으며, 2주전 찍힌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용수공급이 아니라 우라늄 농축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보이는 시설이 이란 나탄즈 부근에 발견됐다.
북한도 94년 플루토늄 폭탄 제조를 금지하는 협정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리에 우라늄 프로그램을 추진해왔다. 미 의회에서 증언한 탈북자들에 따르면 적어도 한 개의 지하공장이 천마산 아래 땅굴 속에 있으며 농축우라늄 생산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
하버드대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는 WP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핵무기 보유 국가가 된다면 남한과 일본도 핵보유국이 되리라는 예측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을 거론한 WP는 무기전문가들의 말을 인용, "핵물질과 기술 확산을 막기 위해 수십년전에 구축된 국제적 방화벽에 틈새에 점점 벌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한반도가 핵위기의 중심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잘 나가던' 한국증시에 커다란 먹구름이 닥쳐 좀처럼 물러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대선이라는 정치태풍이 지나가자 경제태풍이 몰려드는 삼엄한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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