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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트럼프에게 요구할 건 요구해야 중재자"

[정세현의 정세토크] "한미정상회담서 개성공단·금강산 재개 설득해야"

한미 정상회담이 북미 간 비핵화 협상에 불씨를 살릴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정상회담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북한의 입장을 사전에 탐색해보지 않은 채 열리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성과에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를 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고 그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다. 이걸 위해서라도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서 북한의 생각을 확인하고 미국에 가는 것이 맞는데, 공개적으로 남북 간 이러한 접촉은 없어 보인다"고 진단했다.

정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부탁 때문이 아니더라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내놓은 안을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탐색해보고 이에 대한 감을 잡고 가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미리 만났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물론 미국과 북한 사이에 대화를 계속한다고 했기 때문에 양측이 물밑대화를 하고 있을 수 있고 우리도 물밑 대화를 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북한에 제재 완화 요구를 낮추도록 설득하고, 이걸 가지고 미국에 가서 북한에 요구하는 비핵화 수준을 낮추도록 조절하는 등의 회담은 공식적인 수준에서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 전 장관은 그럼에도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성과를 내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정확한 조언을 하고, 이를 통해 남북 경제협력 분야에서 일정 부분 미국의 협조를 받아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 이라는 것은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한국을 앞세워 진행되고 있는 한미일의 대북 압박을 견제하려는 구도를 짜는 것일 수 있다"며 "이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호언'은 '옛날 이야기'가 돼버리는 것이라고 문 대통령이 조언해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북방 3각 대 한미일 남방 3각 구도로 간다면 남북미 구도로 북핵 문제를 풀려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어그러지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존재감이 약화된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막기 위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에 가져다 줄 '선물', 즉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통해 남북대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고, 이것이 북핵 문제 진전과 북미 관계 개선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는 8일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 박인규 이사장과 대담 형식으로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주요 내용이다.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대화의 동력을 살려내기 위해 남북 정상회담이나 고위급회담 등을 통해 북한의 의중을 파악한 다음에 한미 정상회담을 열어야 자연스러운 전개가 아니냐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남북 간 '의중 파악'을 위한 회담은 진행되지 않은 상황에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습니다.

정세현 :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각)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 문재인 대통령에게 전화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대화하고 그 결과를 알려달라고 했죠. 이걸 위해서라도 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만나서 북한의 생각을 확인하고 미국에 가는 것이 맞는데 공개적으로는 남북 간 이러한 접촉은 없어 보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탁 때문이 아니더라도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내놓은 안을 북한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탐색해보고 이에 대한 감을 잡고 가기 위해서라도 북한과 미리 만났어야 합니다.

물론 미국과 북한 사이에 대화를 계속한다고 했기 때문에 양측이 물밑대화를 하고 있을 수 있고 우리도 물밑에서는 대화를 하고 있을 수 있지만 북한에 제재 완화 요구를 낮추도록 설득하고, 이걸 가지고 미국에 가서 북한에 요구하는 비핵화 수준을 낮추도록 조절하는 등의 조율은 공식적인 수준에서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을 준비하는 주요 실무진 중 한 명인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은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문제는 미국과 조율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이것부터가 좀 문제입니다. 북한에 특사를 보내는 것까지 미국으로부터 허락을 받아야 합니까?

김 차장의 이 말을 보니 미국이 대북 특사를 보내는 부분에 대해 허락을 안해준 것 같은데, 지난해 3월 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이 북한에 갔을 때도 미국의 허락을 맡고 간 것입니까? 미국에 사사건건 허락을 받을 것이 아니라 이 정도는 남한 정부가 독자적으로 움직였어야 합니다.

프레시안 : 남북 간 협의 없이 한미 정상회담을 진행하면, 그렇지 않아도 남한을 못 미더워하는 북한이 '남한은 미국 하수인'이라는 공세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정세현 : 북한은 남한에 계속 목소리를 내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미국이 시키는 대로만 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만약 남한이 계속 미국의 이야기만 전달한다면 앞으로 남북대화에 별로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시사하고 있기도 합니다.

북한 입장에서는 남한이 자신들을 먼저 만나고 한미 정상회담에 간다면 남한을 통해 입장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공개적으로는 이러한 움직임 없이 바로 한미 정상회담으로 들어가 버리면, 북한으로서는 남한과 앞으로 협력하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프레시안 : 지난해부터 돌이켜보면 1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부터 남북관계가 미국으로부터 자율성을 가지지 못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남한이 미국으로부터 개성공단 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의 약속을 받아오면 북한에 대한 모멘텀이 살아날 수 있지 않을까요?

정세현 : 문 대통령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남북 간 철도와 도로 협력 등 남북 경제협력을 비핵화 협상의 카드로 써달라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한다는 단서를 달고 적어도 철도 및 도로협력 문제에 대해서는 합의를 이룬 뒤 실제 공사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도 있습니다. 철도나 도로는 환금성이 있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 지난해 5월 22일(현지 시각) 미국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에 돌입하기에 앞서 환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미일 3각 압박으로 북한을 상대하려고 한다면 착각이라고, 김 위원장이 러시아 방문을 준비하려는 것도 미국이 그냥 흘려들어서는 안되는 문제라고 이야기해야 합니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밝힌 '새로운 길' 이라는 것은 결국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 한국을 앞세우고 진행되고 있는 한미일 3국의 대북 압박을 견제하려는 구도를 짜는 것일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호언'은 '옛날 이야기'가 돼버리는 것이라고 조언해줘야 합니다.

만약에 북한이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여서 북방 3각 대 한미일 남방 3각 구도로 간다면 남북미 구도로 북핵 문제를 풀려고 했던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이 어그러지고,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의 존재감이 약화된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이를 막기 위해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북한에 가져다 줄 '선물'인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 등을 통해 남북대화가 가능할 수 있고, 이것이 북핵 문제 진전과 북미 관계 개선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해야 합니다.

북한이 남한의 말을 듣게 해야 미국에도 좋습니다. 이걸 위해서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구할 것은 요구해야 합니다. 또 미국에 제대로 요구한다면 북한은 남한을 '중재자'로서 이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만약 북한이 우리를 이용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면 우리의 역할은 없어지고, 그럴 경우 북핵 문제 해결의 속도를 내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물론 이렇게 하면 미국 또는 한국 내부에서 '한국이 앞서나간다', '한미 간 엇박자내고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비판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남한이 문제의 당사자라는 점을 분명히 해둘 필요도 있습니다.

2017년 1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전에 문 대통령은 한미 연합 군사 훈련 연기를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면서 사실상 평화 프로세스의 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훈련은 상당히 축소됐고 현재까지도 훈련을 많이 줄여가고 있죠. 북한은 이러한 결과가 다시 나오길 기대하고 있을 겁니다. 남한이 미국을 설득해서 평화 프로세스를 진행시키길 바랄 겁니다.

프레시안 :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추동할만한 성과를 얻어낼 수 있을까요?

정세현 : 전망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습니다. 물론 김현종 2차장이 미국의 화법도, 협상의 기술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제 한미 정상회담에서 개성공단 가동이나 금강산 관광 재개와 관련해 좋은 성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북한과 경협을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일부에서는 남한 정부가 미국의 자본을 끌어들여서 미국과 한국이 손잡고 북한을 개발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면서, 여기서 우리가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미국이 돈을 쓸 생각이 별로 없고 북한 역시 경제 개발의 주도권을 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실현 가능성이 높은 모델은 아닙니다.

물론 북한은 외국의 자본을 많이 받으려고 할 겁니다. 하지만 외국 자본의 비율을 51% 이상으로 늘리지는 않을 겁니다. 즉 결정권은 계속 자기들이 가지고 있으려고 할 겁니다. 돈에 홀려서 급하게 하다보면 외국 자본에 먹힐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 :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김현종 2차장의 임명은 의외였다는 반응이 있었는데요. 통상 전문가가 외교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습니다.

정세현 : 국가안보는 외교와 안보, 통일 이렇게 세 분야가 조화를 이뤄야 하는데요. 인적 구성 역시 이와 유사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지금 국가안보실장이 외교관 출신이고 1차장은 군인 출신입니다. 그러면 2차장은 북한이나 통일문제의 전문가가 맡는 것이 좋은데 현재는 통상 전문가인 김현종 차장이 역할을 하고 있죠.

그런데 남북경협을 통상차원에서 접근하면 좀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통상은 상호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남북 간에는 상호주의로만은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습니다. 경협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남북관계는 일대일로 주고 받는 관계는 아닙니다. 우리가 경제를 비롯해 여러 측면에서 월등하게 우위에 있지만, 우위에 있다는 행세를 부리지 않고 북한을 동등하게 취급해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됩니다. 심지어 북한 사람들은 우리한테 지원을 받으면서도 체면을 구기지 않게 해달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이기 때문에 북한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당황하기도 하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기도 하죠.

김현종 차장이 통상의 경험이 많긴 하지만 대북 경협에 일반적인 통상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려고 한다면 여러 가지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많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데 김현종 차장이 기용된 이유가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것이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정세현 : 그런 의도도 있을 겁니다. 미국과 협상에 필요하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번에 김현종 차장이 미국에 다녀오면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말하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이와 관련해 미국으로부터 언질을 받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론 김 차장은 개성공단과 금강산 문제는 언급 안했다고 말했는데, 이건 문 대통령이 간절하게 원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그 정도는 열어줄 수 있다는 식의 의중을 내비친 것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북미 간 접점 찾을 수 있을까

프레시안 : 한미 정상회담이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모멘텀을 가지려면 개성공단 가동과 금강산 관광 재개를 얻어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인데요. 미국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해야 제재 완화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의 제재 완화와 북한의 비핵화 로드맵 사이에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정세현 : 북한은 신뢰를 쌓아가면서 단계적으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죠. 북한이 계속 이러한 로드맵을 고집하는 이유는 상호 불신 때문입니다. 사실 '일괄 타결, 단계적 이행'이라는 것이 말이 쉽지, 현실적으로는 어렵습니다. 일괄타결을 한다고 해도 단계적 이행의 문제에서 무엇과 무엇을 매치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도 상당한 논의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 북미 양 정상이 지난 2월 28일(현지 시각) 단독회담에 이어 실무진들이 참여하는 확대회담을 가졌다. 존 볼튼(맨 왼쪽)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맞은 편에는 북한 측 인사가 자리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로이터=연합뉴스

또 일괄 타결을 협의한다고 해도 결국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단계별 그림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영변 핵 시설에 대한 상응 조치는 무엇인지,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 해체에 대한 상응 조치는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합의를 해야 전체적 그림이 나온다는 겁니다.

그런데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전면에 등장한 이른바 '빅 딜'에 대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여기에 동조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또 지난해 6월 12일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로 돌아가려 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관료들에게 포위돼서 6.12 이전으로 돌아가려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스러운 대목이 있습니다.

프레시안 : 그런가하면 오는 11일 북한에서는 최고인민회의가 열립니다. 회의를 전후로 대외 메시지가 발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는데요.

정세현 : 대외적 메시지도 물론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지만 권력 구조 변화 가능성을 더 유심히 지켜봐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최고인민회의는 우리로 따지면 입법과 행정이 함께 들어가 있는 구조입니다. 내각 구성을 최고인민회의에서 하기 때문인데요. 국무위원장 역시 최고인민회의에서 선출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국무위원장 직을 가지고 있는 김 위원장이 이번에 대의원에 선출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김 위원장의 직책을 바꾸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겁니다. 이는 물론 권력 구조의 변화도 수반하는 것이겠죠.

일례로 김일성 주석의 경우 1972년 사회주의 헌법을 채택하면서 주석자리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면서 당정군을 총괄 지휘하게 됐죠. 지금 김정은 위원장 역시 주석은 아니겠지만, 다른 방식으로 권력 구조를 개편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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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외교부·통일부를 출입하면서 주로 남북관계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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