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7시 17분 강원도 고성군에서 산불이 나서 이웃 속초시까지 옮겨 붙었다. 텔레비전이 생중계한 산불은 말 그대로 화마(火魔) 같았다. 얄궂게도 식목일을 하루 앞두고 발생한 그 대형 화재를 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지켜본 국민들은 자신의 집이 불타는 듯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지난 7일, 고성·속초 산불로 주택 401채, 임야 530ha, 관광세트장 925개, 건물 100동, 공공시설 68곳 등이 탔다고 발표했다. 이재민 722명은 21개 임시시설에 수용되었다. 전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 셈이었다. 이렇게 비극적인 사건을 두고 김문수(전 경기도 지사)는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문재인 정부를 헐뜯고 비웃는 글을 올렸다.
"문재인 '촛불정부'인 줄 알았더니,
'산불정부'네요.
강원도만 아니라,
제 고향 경북 영천에도
제 평생 처음으로
산불 보도가 되네요.
촛불 좋아하더니
온 나라에 산불
온 국민은 화병··"
김문수의 글 내용만 보면 자신의 고향인 경북 영천은 물론이고 '온 나라에 산불'이 나서 '온 국민'이 '화병'에 걸린 것이 된다. 그야말로 과장과 침소봉대의 극치이다. 그가 문재인 정부는 '촛불정부'가 아니라 '산불정부'라고 단정한 대목은 촛불혁명으로 박근혜와 최순실을 몰아내고 민주정부를 탄생시킨 주권자들에 대한 모독이자 반역사적인 사고의 반영임이 분명하다. 김문수가 문재인 정부의 잘잘못을 엄정하게 가려내어 그런 주장을 했다면 설득력이 있겠지만 무턱대고 '촛불정부'를 '산불정부'라고 비난한 데서 그의 치졸함과 야비함이 여실히 드러난다.
김문수는 같은 날 페이스북 계정에 올린 다른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산불이 북으로 계속 번질 경우 북한 측과 협의해 진화 작업을 하라'고 너무나 엉뚱한 '종북 짝사랑 잠꼬대를 했다'"면서 "이런 세기적 잠꼬대를 하게 만든 자는 통일부인지, 청와대인지, 문재인 대통령 자신인지 찾아내서 잘라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자기 발등의 불 끌 생각보다는 '북한 산불' 잠꼬대를 하고 있으니, 이게 무슨 망령이냐"고 비꼬았다. 김문수의 이런 '논리'는 대통령의 실제 발언을 터무니없이 확대 해석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강원도에 산불이 일어난 이튿날 새벽 청와대에서 긴급회의를 열고 가용 자원을 모두 동원해 총력 대응하라고 지시한 뒤 "산불이 번질 우려가 있는 지역의 주민은 적극 대피시키고, 이재민에 대한 긴급 생활 안전 대책도 마련하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밖에도 상세하게 대응책을 열거했는데, 그 중에는 "산불이 북으로 계속 번질 경우 북한 측과 협의해 진화 작업을 하라"는 한 문장이 들어 있었다. 김문수는 이것을 '종북 짝사랑 잠꼬대', '세기적 잠꼬대'라고 침소봉대한 것이다.
2016년 10월 29일부터 2017년 3월 10일까지 20여 차례에 걸쳐 연인원 1천7백만여 명의 시민이 전국 각지에서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집회를 열었던 때 김문수는 어디에 있었는가? 지금 '촛불 좋아하더니 온 나라에 산불, 온 국민은 화병'이라고 대한민국의 주권자들을 조롱하고 있는 김문수는 박근혜 탄핵을 취소하고 그를 감옥에서 풀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일찍이 1967년에 신동엽 시인이 발표한 작품 '껍데기는 가라'의 첫 번째 절과 마지막 절을 인용하는 것으로 이 글을 마쳐야겠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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