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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팔아먹기' 시작한 이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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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팔아먹기' 시작한 이탈리아

만성적 재정난 때문, "국보만 빼고 뭐든지 팔겠다"

국립문화예술단체에 경영마인드를 도입해 재정자립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몇해 전부터 우리 문화계의 뜨거운 화두였다. 이같은 주장을 계속 외면하다가는 금명간 재정난 때문에 문화재를 팔기 시작한 이탈리아 꼴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 최신호(12.7)는 “이탈리아 의회가 지난 6월 문화유산 매각법을 통과시킨 이후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가 ‘이탈리아 문화재’를 팔아 자금을 조성해 그중 일부를 이탈리아 본토와 시칠리 섬을 잇는 초대형 교량 건설 재원으로 사용하길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보급만 빼고 돈 되는 건 뭐든지 팔겠다"**

문화유산매각법에 따라 신설된 국립문화유산기구는 처분대상 목록을 작성해 매각, 임대, 증권화 등을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베를루스코니는 이 계획에 반대하는 진영을 향해 “콜로세움, 피사의 사탑, 우피치 같은 이탈리아의 상징물은 건드리지 않겠다”며 달래고 있다. 민간인이 문화유산의 최대주주가 되지 않도록 한다든지, 임대의 경우 그 시한을 5년 이하로 제한한다든지 하는 조건도 내걸었다.

그러나 문화유산매각법은 매우 애매하게 규정돼 있어 이탈리아의 국보급 재산을 민간에 이전하는 것을 명백하게 배제하는 조항이 없다.

조바나 멜란드리 전 이탈리아 문화장관은 “문화유산을 유지보수하고 대중에게 접근을 허용하는 의무를 준수하는 경우에만 일부 지분을 매각할 수 있도록 하고 이 의무를 준수하지 못할 경우 국가가 다시 회수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 법안을 비판했다.

베를루스코니가 제안한 문화유산법에는 이러한 단서조항이 없다. 지난 8월에 1차로 작성된 처분목록은 8백쪽에 달하는데 여기에는 문화재뿐 아니라 해변, 심지어 감옥까지 포함돼 있다. 티베리우스 황제가 은든생활을 했던 카프리섬 별장은 단돈 9만 달러로 값이 매겨져 있다. 그러나 투스카니 해안에 있는 피노사 섬은 8백만 달러, 밀라노의 산 비토레 감옥은 최소 2천만 달러의 매물로 나와 있다.

국립문화유산기구는 올해말 더욱 구체적인 처분목록을 작성할 계획이다. 워낙 방대한 문화유산이라 실제 문화유산 매각이 시작되려면 1년이란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알려졌다.

***관료주의 때문에 재정난 심화**

이탈리아 문화유산이 왜 이처럼 처분대상이 되었을까. 파산직전에 도달한 이탈리아 문화단체의 재정난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서가 깊고 유명한 박물관 중의 하나로 꼽히는 우피치 박물관은 최근 이탈리아 전력회사로부터 마지막 최고장을 받았다. 25만달러에 달하는 밀린 전기값을 내지 않으면 전기를 끊겠다는 것이다. 우피치는 현재 보티첼리 작 ‘비너스의 탄생’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 ‘수태 고지’ 등 세계적인 명작에 조명조차 비칠 돈이 없다. 심지어 화장실에 사용할 화장지를 구입할 여력조차 없을 지경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우선 문화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이탈리아는 국내총생산(GDP)의 0.18%만 문화예산에 배정하고 있다. 게다가 민간기부금을 유도할 세제 혜택도 거의 없다.

반면에 관리해야 할 문화유산은 너무나 많다. 유네스코에 따르면 이탈리아는 서구문명의 3분의 2가 넘는 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의 문화유산대국으로, 이탈리아의 최대 자산이 바로 문화유산이다.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뿌리깊은 '관료주의'다. 이탈리아의 문화유산이 콧대높은 관료들에 의해 운영되다보니 서비스가 엉망이다. 이탈리아의 박물관 하면 관람시간이 짧고, 조명시설은 비전문적이고, 이탈리아어로만 쓰인 짧은 설명으로 묘사될 정도로 서비스가 엉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많은 문화유산을 갖고도 문화단체는 만성적 재정난에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국 문화유산을 관리하는 비용도 못벌면서 국고 부담만 증가시키느니 차라리 이를 팔아 재정에 보태자는 베를루스코니 총리의 주장이 먹혀들기에 이르른 것이다.

베를루스코니가 결코 팔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어쩌면 앞으로 피사의 사탑이나 콜로세움 같은 이탈리아 국보도 외국인들이 살 수 있는 날이 도래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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