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닉스반도체가 지난 3.4분기 D램값 하락 등의 영향으로 영업손실 5천1백10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14일 밝혀졌다. 이로써 하이닉스는 지난 1분기에 3백5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이후 2분기에 당기순손실 4천1백40억원, 3분기 6천1백70억원으로 누적적자가 1조3백8억원에 달했다. 지난해보다는 다소 개선된 수치이나, 해마다 1조원이상의 천문학적 손실이 쌓여가는 아찔한 상황이다.
이로써 세계 3위의 D램 메모리 반도체 생산업체인 하이닉스는 지난 5년간 1년을 빼고는 계속 적자를 기록했으며, 지난 5분기 동안 1.4분기를 제외하고는 4차례나 큰 손실을 냈다. 말 그대로 '위기의 하이닉스'다.
***해마다 부실이 1조원이상 불어나는 하이닉스**
하이닉스는 현재 매출의 80%를 D램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D램은 공급과잉으로 손익분기점으로 알려진 개당 3.5달러 선을 밑도는 2.8달러에 거래되고 있어 팔수록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반영하듯 하이닉스 주가는 현재 4백원대에서 헤매고 있다.
이같은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신규투자를 해야 한다. 하이닉스도 투자를 하기는 했다. 하이닉스는 1.4분기에 메모리 생산라인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2천1백억원을 투입하고 2.4분기에는 4천억원 정도를 투자했다. 그러나 세계1위의 반도체업체인 삼성전자가 투자한 규모에 비해서는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일본 다이와증권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하이닉스가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려면 향후 2년간 최소한 3조원을 투자해야 한다. 속도와 가격면에서 한 단계 높은 DDR(더블데이터레이트) 등으로 시설을 교체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DDR 비율이 60% 이상이다.
경쟁국 상황을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만 전자시보의 15일 보도에 따르면, 대만의 D램 생산업계는 올연말이나 내년초까지 DDR(더블데이터레이트) D램 생산비중을 전체의 90%이상으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대만 최대 D램 생산업체인 난야 테크놀러지는 지난달 말 현재 97%였던 DDR D램 생산 비중을 내년에 99%로 높일 계획이며 윈본드 일렉트로닉스도 현재 90%에서 내년 초에는 100%로 확대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또 최근 공정 전환 문제에 차질을 빚고 있는 파워칩 세미컨덕터도 DDR D램 생산비율을 지난달말 현재의 60%에서 이달말에는 80%로 높인 뒤 연말까지 92%로 단계적으로 상향조정할 계획이다.
그러나 하이닉스에게는 신규투자 여력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채권단들이 더 이상의 신규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은행, 우리은행, 조흥은행, 상업은행 등 4개 채권단 은행은 올해초 3조원을 출자전환한 바 있다. 당시만 해도 1.4분기 영업실적이 소액이나마 흑자를 기록해 채권단들이 거는 기대는 자못 컸다. 그러나 그후 또다시 대형 적자가 발생하자 이제는 "더이상 밑빠진 독에 물을 부을 수는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말 그대로 고립무원이다.
***채권단, "하이닉스 처리는 차기정권으로..."**
하이닉스 구조조정안을 마련하고 있는 도이체방크는 지난 3개월 이상 '수정'에 '수정'을 거쳐 '선(先)정상화, 후(後)매각'이라는 큰 틀을 결론내렸으나 최근 구조조정안 제출을 돌연 연기했다.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등 채권단들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업계 전문가들은 구조조정안 제출 연기는 하이닉스에 대한 논의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채권단의 입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채권단 내부에서는 하이닉스 처리를 차기정권으로 넘겨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회사분할 계획 발표와 함께 강력한 매각추진 의지를 내비쳤던 지난 5월과는 대조적 분위기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구조조정특위를 아예 소집하지 말거나, 구조조정특위를 열더라도 비공개로 진행하자는 의견까지 제기되고 있다. 이처럼 채권단의 태도가 소극적으로 변한 것은 무엇보다도 대선을 앞둔 정치적 상황, 즉 레임덕(권력누수)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채권단 내부는 물론 소액주주, 종업원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하이닉스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선 고도의 정책적 판단과 추진력이 필요한 만큼 권력이동기인 현시점에서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하이닉스측은 정상화든, 매각이든 기업가치를 높이는 게 급선무"라는 입장이다. 신규자금 지원은 없더라도 출자전환 또는 부채탕감, 이자감면 등 채무재조정이 서둘러 이뤄져야 회생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말대선을 앞두고 현대특혜 지원논란이 일고 있는 데다가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가 최근 한국정부가 하이닉스에 14조원대 부당지원을 하고 있다는 소송을 내면서, 하이닉스 문제는 현정권하에서 처리되기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 하이닉스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해법은 '국내의 새 주인 찾아주기'?**
이처럼 하이닉스 처리는 사실상 차기정부의 과제로 넘어갔다.
최근 반도체 재고가 급속히 소진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D램값이 회복기미를 보이고 있긴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재고 감소에 따른 것이지 소비 증가에 따른 본격적 가격상승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배적 관측이다. 따라서 반도체값이 오르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앞으로도 상당 기간 하이닉스는 적자의 늪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문제는 차기정권에서 하이닉스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이다. DJ정부는 마이크론에의 매각과 독자생존 사이에 고심하다가 일단 독자생존쪽에 손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반도체 불황이 예상보다 길어져 하이닉스 부실이 커지면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왔다. 현정부는 하이닉스 처리에서 실패한 셈이다.
각 대선후보 캠프에서도 하이닉스 문제가 차기정권의 최우선 경제과제라는 점은 분명히 인식하는 눈치다.
한 예로 이회창 캠프의 한 경제두뇌는 이와 관련, "집권시 산적한 여러 경제현안중 최우선적으로 하이닉스 문제부터 깔끔하게 매듭지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 방안은 아직 검토단계이나 단하나 분명한 사실은 더이상 하이닉스가 은행 채권단의 생존을 위협하는 뇌관이 되서는 안된다는 사실"이라고 말해 '새 주인 찾아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와 관련, 주목해야 할 대목은 최근 재계 일각에서도 하이닉스에 강한 관심을 갖는 기업들이 목격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런 대표적 기업이 LG그룹이다.
LG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하이닉스 문제의 해법은 새 주인을 찾아주는 쪽에 맞춰져야 한다"며 "새 주인은 그러나 반도체 산업이 국가기간산업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외국기업보다는 국내기업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채권단이 출자전환 등 추가적 채무재조정 작업을 해준다면 하이닉스를 맡아 회생시키겠다는 기업들이 나타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LG그룹이 하이닉스를 인수할 생각이 있음을 감지케 하는 발언이다.
이처럼 하이닉스 문제는 차기정권의 '뜨거운 감자'가 될 전망이다. 과연 국내외의 비상한 관심사인 하이닉스 문제를 과연 차기정권이 어떻게 생산적 방향으로 풀어갈 것인지, 차기정권의 집권능력을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될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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