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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조흥은행 주식 팔아 투자수익까지 거두겠다"

정부 관계자, 주당 6천5백원 이상 매각 입장 시사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지난 11일 간부회의에서 "최근 금융회사들이 현실에 안주하려는 움직임과 임기말의 눈치보기, 노조반발 등을 의식한 무사안일한 경영 등으로 개혁의지가 많이 약화되는 조짐이 있다"고 질타했다. 이 위원장의 질책 가운데 "노조반발 등을 의식한 무사안일한 경영"이란 최근 정부지분 매각을 둘러싸고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조흥은행의 경영진을 가리키는 게 분명했다.

이같은 정부의 질책에도 불구하고 홍석주 조흥은행장은 요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안팎 곱사등이 신세다. 한 예로 지난주 홍 행장은 노조가 가져간 1백대 거래기업 여신 전산파일을 돌려달라는 사내 이메일을 보냈다가 "은행을 팔아먹으려는 게 아니냐"고 흥분한 노조원들로부터 행장실 집기가 들려나가는 봉변을 겪어야 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최대주주인 정부로부터 '무사안일한 경영'을 하고 있다고 비판받아도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다.

조흥은행 노조는 오는 20일 파업을 단행하기로 했다. 12일 조흥은행 노조는 총파업 투표를 실시한 결과 전체 노조원 5천3백83명 가운데 98.5%가 투표에 참여했고 이 가운데 95.4%가 파업에 찬성표를 던졌다. 41억4천만원을 파업기금으도 모아두기도 했다.

이렇듯 조흥은행 정부보유지분 매각을 둘러싼 갈등은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마주보고 달리는 기관차 형국이다. 과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해법은 무엇인가.

***조흥은행 노조의 '헐값 매각' 의혹**

조흥은행 노조는 정부의 지분매각과 관련, 두 가지 문제점을 제기하고 있다.

노조는 최근 '조흥은행 헐값매각의 의혹은 밝혀져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현재는 정부지분을 대량매각하기에 부적절한 시기"이며 "조흥은행의 헐값 매각은 2조5천억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낭비하는 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는 정부지분을 대량매각하기에 부적절한 시기다!
공적자금 투입 금융기관의 민영화는 국민경제 전반의 위험성이 해소되고 경기가 일정 정도 회복되는 시점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증권시장의 약세로 인해 조흥은행의 시장가가 연중 최고가 대비 41%나 하락한 현재시점에 헐값매각을 강행하고 있어 정부에서 투입한 공적자금의 원금회수조차 어렵게 될 것으로 보인다."

"조흥은행의 헐값매각은 2조5천억원 이상의 공적자금을 낭비하는 격이다.!
일반적으로 경영권 인수를 전제로 한 상장기업의 매각 주식가격이 순자산가치의 2~2.5배 적용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이며, 조흥은행의 수익가치를 고려할 때 적정 매각가격은 주당 10,000원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조흥은행 주식 매각 입찰에 참여한 S컨소시엄이 적정가격보다 약 50% 낮은 선으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럴 경우 2조5천억원 이상의 공적자금이 낭비되는 셈이다."

이같은 시각에서 볼 때 정권말기에 정부가 서둘러 조흥은행 지분을 매각하려는 것은 '검은 커넥션'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혹을 떨칠 수 없다는 게 노조측 주장이다.

***정부, "주당 6천원이상 받고 팔면 투자수익까지 거두는 셈"**

이같은 노조 주장에 대한 정부 입장은 무엇인가.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14일 정부 생각을 이렇게 밝혔다.

"왜 주가가 많이 빠진 지금 팔려고 하느냐고 하는데, 이유는 하나다. 사겠다는 이들이 나섰기 때문이다. 정부는 그동안 공적자금관리위원회 등에 조흥은행 지분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서면 팔겠다는 입장을 보고해왔다. 물건은 사겠다는 사람들이 있을 때 팔아야 한다. 그래야 제값도 받을 수 있다. 한보철강의 경우처럼 때를 놓치면 팔고 싶어도 못 파는 법이다.

또 '지금은 팔 때가 아니다. 앞으로 시간이 흐르면 값이 많이 오를 것'이라는 주장도 잘못된 것이다. 정부가 조흥은행 지분을 입찰에 붙였을 때 조흥은행 주가는 4천~4천1백원 수준이었다. 그러다가 여러 군데서 사겠다고 나섰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4천7백원선까지 올랐다. 만약 노조 반발 때문에 매각이 좌절되면 주가는 3천원선으로 곤두박질칠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앞으로 은행 영업환경은 가계대출, 카드 부실때문에 지금보다 한층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이 관계자는 이어 노조의 '공적자금 낭비' 주장과 관련해서도 다음과 같이 반박했다.

"실사 결과 가격이 안 맞으면 안 팔겠다는 입장을 정부는 누차 밝혀왔다. 이 방침은 앞으로도 변함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를 받고 팔아야 하는가.

정부는 그동안 조흥은행에 2조7천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며 조흥은행 전체주식의 80%인 5억4천만주를 갖게 됐다. 이와 별도로 3천억원의 부실채권을 사줬다. 도합 3조원이 투입된 셈이다.

얼마나 받아야 정부가 공적자금을 제대로 환수하는 것인지, 간단히 계산해보자.

조흥은행 주식을 액면가 5천원에 팔면 정부는 손해를 보게 된다. 이자도 못받고 부실채권비용도 못받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주당 5천5백원에 팔면 간신히 원금을 회수하는 게 된다. 그러나 이자는 못받는다. 이 또한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조건이다.

주당 6천원에 팔면 원금에다가 이자비용까지 회수된다.

주당 6천5백원에 팔면 투자이익까지 거두게 된다. 이렇게 되면 문 닫을 처지였던 조흥은행에 국민 돈을 집어넣어 살린 데다가, 국민들에게 원금, 이자에다가 보너스로 투자수익까지 돌려주게 된다는 얘기가 된다."

"노조의 '2조5천억원 공적자금 낭비'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애당초 말이 안된다. 주가가 1만원이 될 때 팔면 국민에게 2조5천억원의 투자수익을 더 얹어줄 수 있다는 주장인 셈인데, 공적자금은 떼돈을 벌기위해 투자하는 돈이 아니다. 국민에게 원금과 이자, 거기에다가 어느 정도의 투자이익까지 돌려줄 수 있으면 성공적인 공적자금 운용이고, 회수다.

다시 한번 단언컨대 정부는 조흥은행 주식을 팔면서 결코 손해보는 장사를 안할 것이다. 투자이익까지 확실하게 거둘 생각이다."

이같은 말은 노조의 공적자금 낭비 주장에 대한 반론인 동시에, 정부가 내심 매각가격을 주당 6천5백원 안팎으로 잡고 있음을 시사하는 발언으로도 해석가능해 주목된다.

정부가 보유중인 5억4천만주의 주식을 신한지주가 정부 요구대로 주당 6천5백원에 사들이려 하면 무려 3조5천억원이 필요하다. 결코 만만치 않은 액수다.

하지만 정부가 협상과정에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켜 공적자금 원리금에 투자수익까지 회수할 수 있을 경우 정부의 입지는 강화될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대체적 전망이다.

***"조흥사태는 향후 한국금융의 바로미터"**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은 13일 "노조의 실사자료 제출 지연으로 당초 이달말로 예정됐던 우선협상자 선정이 1주일가량 연장될 듯 싶다"고 말했다. 외형상 노조의 매각반대 투쟁으로 정부의 매각작업이 차질을 빚는 양상이다. 이에 금융계 일각에서는 조흥은행 지분매각이 '물건너 간 게 아니냐'는 관측도 흘러나오고 있다.

하지만 가격만 맞으면 조흥은행 보유지분을 팔겠다는 정부 입장은 아직 변함없어 보인다. 결국 정부와 노조간 한차례 힘겨루기가 불가피해 보인다.

조흥은행에 강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한 외국계 대형펀드 대표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는 외국계 투자가들의 시선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2000년말 주택, 국민은행의 두 행장이 합병을 선언하자 두 은행 노조가 함께 파업을 하며 격렬히 반대했었다. 이때 외국투자가들의 관심은 과연 은행 경영진이 노조 반대를 극복하고 합병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였다. 만약 당시 경영진들이 굴복했다면 외국투자가들은 은행주식을 과감히 털었을 것이다.

노조 반대때문에 합병이 안됐다면 한국에선 더이상 합병이 불가능하고, 더이상의 은행산업 발전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경영진은 끝내 합병을 성사시켰고, 그 결과 합병 국민은행은 한국 은행산업을 선도하는 최강자가 돼 은행산업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이번 조흥은행 지분 매각건도 2000년 당시와 비슷한 관점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합병 국민은행의 출현으로 다른 은행들은 합병하지 않고선 홀로 살 수 없는 상황에 몰렸다. 더욱이 하나은행이 최근 서울은행을 인수하면서 합병은 더이상 피할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신한지주나 제일은행이 조흥은행을 사겠다고 나선 것도 지금 상태로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홀로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은 조흥은행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서울은행 입찰때 조흥은행이 서울은행을 사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것이 그 증거다. 속으로는 이렇게 위기감을 느끼면서 합병을 결사반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만만한 쪽 하고만 합칠 수 있다는 생각 아닌가."

그는 더 중요한 문제로 '시장법칙의 파괴'를 우려했다.

"노조의 거래기업 여신자료 절취로 실사 자체가 방해받고 있다. 이는 대단히 심각한 사태다. 지금 조흥은행의 주인은 80% 지분을 쥐고 있는 국민이자,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는 정부다. 만약 실사결과 정부가 턱없는 가격으로 조흥은행을 팔아넘기려 한다면 이를 실력저지한다 해도 명분이 있다. 그러나 여신자료를 절취해 실사 자체를 못하게 막는 행위는 명분이 없다. 주인이 주인 행세를 못하게 막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노조의 실력행사에 막혀 보유지분 매각을 못하게 된다면 아마도 앞으로는 조흥은행 주식을 사겠다는 투자가들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누가 주인행세를 할 수 없는 은행의 주식을 사려 하겠는가. 이렇게 되면 나날이 치열해질 경쟁상황 속에서 조흥은행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고, 주가도 맥을 못출 것이다. 그 결과 조흥은행에 들어간 공적자금 회수도 힘들어지게 될 것이다. 사겠다는 사람이 있어야 공적자금 회수가 가능한 게 아닌가.

설상가상으로 연말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까지 조흥 문제에 끼어들고 있다. 97년 기아사태때가 연상되기까지 한다. 어쩌면 이번 사태가 잘못 처리될 경우 IMF사태후 한국이 가장 큰 성과를 거뒀다는 금융부문조차 도루묵 신세가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한마디로 말해 이번 조흥사태를 향후 한국금융의 바로미터로 보고 있다는 얘기였다.

조흥은행의 한 직원은 "지금은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라고 조흥은행 분위기를 전했다. 지난주말 종묘집회때 4백여명의 노조원이 삭발한 점만 보아도 조흥의 분위기는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과연 해법이 '실력 저지'뿐인가라는 점이다.

조흥은행의 주인인 국민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를 묻고,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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