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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를 뒤흔들고 있는 '레라크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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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를 뒤흔들고 있는 '레라크 전쟁'

지배구조 개혁 위해 '큰손'들과 연합전선 구축

하이닉스반도체 소액주주들은 지난 4일 현대전자(현 하이닉스) 매각대금 1억달러 증발 사건과 사건과 관련, 책임소재를 가려야 하며, 구상권과 배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현재 휴지조각처럼 된 하이닉스 주가를 보는 주주들의 억장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소송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라는 미국에서도 빈번히 목격되는 일이다. 경영진의 전횡으로 주주들이 피해를 본 일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의 소송은 사후약방문식의 주주운동이라 할 수 있다.

어떻게 해야 오너 또는 경영자의 '반(反)주주적 전횡'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인가.

***레라크와 연금펀드 손잡다!**

사실 소액주주들은 힘을 모으기도 현실적으로 힘들거니와 지리한 법정 투쟁을 끌고 나가기도 버겁다. 때문에 적지 않은 지분을 갖고 있는 기관투자자들이 힘을 합해 기업 경영진의 횡포를 막을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제안이 최근 월가에서 쏟아져 나오고, 실제로 행동에 돌입해 전세계 투자가들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최근 스프린트, 퀘스트, AT&T 등 미국 3대 텔레콤업체들에 대해 연금펀드 투자자들이 소송을 통해 강도높은 개혁 압력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것이 그런 대표적 예다.

엔론 소액투자자들의 집단소송을 이끌었던 윌리엄 레라크 변호사는 이들 3대 텔레콤업체의 주가 하락으로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을 대표해 소송을 준비 중이다. 레라크는 소액주주들을 대표한 집단소송에서 가장 승소율이 높아 '소액투자가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명변호사이다.

그가 이번에는 소액투자가외에 연금펀드 투자가들이라는 '시장의 큰 손'들과 손잡고 '경영진 전횡과의 전쟁'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레라크는 이번에 금전적인 배상은 물론, 이사회 등 기업지배구조와 고위 경영자들의 보상체계의 변화 등 급진적인 개혁안을 요구할 예정이다. 연금펀드 투자가들도 레라크의 활동을 전폭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레라크가 승소할 경우 이들 회사의 이사회 이사들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은 물론, 다른 회사들에서의 이사 활동도 일정 기간동안 금지당하게 된다.

레라크의 이번 소송은 '새로운 형태의 주주운동'으로, 투자자들의 개혁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은 많은 미국 기업들을 겨냥한 것이다. 레라크는 특히 기업지배구조 문제를 개혁하지 않는 한, 분식회계 등 악질적 경영범죄 행위가 계속될 것이라고 믿는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오랫 동안 스프린트의 지배구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공격해 왔다. 지난해엔 스프린트의 고위 경영자들이 월드컴의 인수에 대비 10억달러 이상의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 차익을 챙길 수 있도록 회사 규정을 손질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큰 손들이 경영진 눈치보는 이유는?**

레라크의 이같은 움직임은 그러나 선진국 미국에서조차 기관투자자들이 기업지배구조개선에 힘을 모으기란 쉽지 않음을 말해주는 역설적 증거이기도 하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는 최근 그 이유에 대한 분석기사를 실었다. 결론인즉, 기관투자자들이 주식을 보유한 해당기업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영진의 행태에 비판을 한다면 해당기업 주가가 떨어질까봐 두려워 비판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주식투자담당자들중에는 시가차익을 노리는 투자자들이 많다. 대부분 주식을 사들인 뒤 1년 이내에 팔아치운다. 그러다 보니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신경쓰기보다는 주가가 오르면 조용히 팔고 떠나면 그만이다.

기관투자가가 주주로서 큰소리를 치지 못하는 이유는 주가에 미치는 악영향뿐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대형기관투자가일수록 운영자산을 미국의 퇴직연금이나 노후연금 등 기업으로부터 수주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너무 많이 챙긴다고 비판을 하다가는 연금위탁 계약이 깨질 위험이 크다.

그러다보니, 기득권을 지키거나 새로운 수주를 위해서 기관투자자들은 해당기업과 관련해 이해충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대형은행 소속의 자산운용회사일수록 이런 갈등이 더욱 크다. 휴렛패커드와 콤팩의 합병을 성사시킨 칼리 피오리나 회장은 이 회사 주주인 도이체방크 계열의 도이체 자산운용사에 대해 "현재의 관계를 유지하는 데 이번 합병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공개적으로 말하기까지 했다. 도이체방크가 합병자금으로 40억 달러 상당의 신용대출건을 수주한 며칠 뒤 도이체 자산운용사가 합병건에 찬성표를 던진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 시각이다.

***'레라크 전쟁', 우리나라에게도 비상한 관심사**

이코노미스트지는 그러나"앞으로도 이런저런 이유로 기관투자가들이 자신들에게 돈을 맡긴 주주들을 위해 기업 경영진의 전횡에 제동을 거는 데 앞장 서지 않는다면 금융당국이 제재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 미국증권거래위원회(SEC)는 뮤추얼 펀드 회사들이 주주로 참여한 기업 이사회 표결 내용과 정책을 공개하도록 할 방침이다.

이런 압력 속에 기관투자가들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마지 못해 나선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는 게 이코노미스트지의 지적이다.

특정기업에 대해서만 비판이 가해진다면 형평성 시비가 일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버나드 블랙 스탠퍼드 법대 교수는 "특정 기업들에 대해서만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요구하는 식이 아니라 기관투자가들이 힘을 합해 기업 전반에 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방식이 되어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도 재무구조나 경영투명성 측면에서는 IMF사태후 많은 진전이 있었으나, 기업지배구조에서는 아직도 개선해야 할 대목이 많다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지금 미국에서 진행중인 '레라크 전쟁'의 과정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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