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대표 황교안이 일요일인 지난달 31일 한국 정치와 스포츠의 역사에 유례가 없는 황당한 장면을 연출했다. 그는 오는 3일에 치러질 경남 창원성산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나선 자기 당 후보 강기윤과 함께 경남FC와 대구FC의 경기가 열리는 창원축구센터에 '입장'했다. 말이 좋아 입장이지 '난입'이나 다름없었다. 황교안은 한국당 당명이 새겨진 붉은 점퍼를, 강기윤은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후보' '2번 강기윤'이라고 적힌 같은 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 경남FC 구단 관계자는 "(그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기에 원칙과 규정을 설명하고 입장권을 구매해서 들어올 수 있다고 알렸는데도 기호와 이름이 새겨진 점퍼를 입은 채 입장 통제를 무시하고 밀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경기장에 들어선 황교안과 강기윤은 관중석 앞에서 두 팔을 치켜든 채 '기호 2번'을 상징하는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였다. 한국프로축구연맹은 경기장 안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연맹은 "행정 및 사업을 수행함에 있어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성별, 인종, 종교, 출생지, 출신학교, 직업, 사회적 신분 등 모든 형태의 차별을 금지한다." 경남도민일보 4월 1일자 기사는 "경기장 안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손흥민에게 영국 관중이 인종차별 행위를 한 것과 같은 급"이라고 비유했다.
그날 자유한국당 황교안 일행과 달리, 바른미래당 대표 손학규를 비롯한 다른 당 관계자들은 구단 직원들이 규정을 알리며 입장을 제지하자 경기장 밖에서 선거운동을 펼쳤다. 그런데 황교안 일행만이 유독 '갑질'을 한 것이다. 그 지역에서는 자기 당이 '제1당'이라는 뜻인가?
황교안 일행의 경기장 '유세'가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심각한 문제는 그들은 법망을 벗어날 수 있지만 경남FC 구단은 프로연맹의 상벌 규정에 따라 중징계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경기장 안에서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관리 책임을 지는 구단은 10점 이상의 승점 감점, 무관중 홈 경기, 홈 경기 제3지역 개최, 2000만 원 이상의 제재금, 경고" 등의 불이익을 받게 된다. 법무부장관과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은 이런 사실을 과연 몰랐을까, 아니면 무모하게 경기장 선거운동을 '감행'했을까? 경남FC 관계자는 이렇게 다짐했다. "지난해 도민들의 성원에 힘입어 시·도민구단 최초로 리그 준우승 성적으로 AFC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하며 도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경남FC가 이번 사태로 인해 불명예스러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으므로 공식적으로 사과를 받아낼 수 있도록 하겠다." 황교안 일행의 선거운동에 대해 자유한국당 홍보실은 1일 "한국프로축구연맹과 대한축구협회 지침에 선거운동을 금지한다는 규정이 있는지를 몰랐던 것은 후보 측의 불찰"이라며 "자유한국당은 경남FC 측의 지적 이후 바로 시정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시정조치'는 무엇을 뜻하는가? 당사자인 황교안이 공적으로 사과문을 내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강기윤이 고작 "경남FC와 팬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정말 미안하고 죄송하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발표했을 뿐이다.
황교안이 이번 두 군데 재보궐선거에서 자유한국당 후보들을 당선시키려고 노력하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공정한 규칙과 상식, 그리고 정치적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황교안은 중앙일보 4월 1일자 기사([취재일기] 정치가 스포츠에 진입한 날···'황교안 반칙에 무너진 경남')의 결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정치적 중립 의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등이 터져버린 '스포츠 새우'에게 '정치 고래'가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경남 구단과 K리그는 '새우'일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시간과 돈을 들여 경기장을 찾는 '국민'이 있다. 혹여 프로스포츠 팬들을 '한가롭게 공놀이나 즐기는 사람들'로 여겼다면, 더 큰 반성이 필요하다."
이런 충고에 아랑곳없이 황교안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지나 않을는지 궁금하다. '그래도 어제 경기장 유세 기사 때문에 내가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으니 효과 만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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