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자민당의 금권정치를 통렬하게 비판해온,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 이시이 고키(石井紘基.61) 중의원이 25일 오전 자신의 집 앞에서 살해되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 일본열도를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번 사건은 특히 고이즈미 정부가 기득권층의 거센 저항을 무릅쓰고 최근 강도 높게 금융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있는 와중에 발생한 것이어서, 기득권층의 '조직적인 반(反)개혁 암살'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40년만에 발생한 정치인 암살**
이시이 의원은 이날 오전 10시40분경 도쿄 세타가야(世田谷)구 주택가 자택에서 나와 자동차에 오르려는 순간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휘두른 흉기에 가슴 부분을 찔렸으며, 병원으로 후송된 직후 사망했다.
이시이 의원은 생전에 일본 정치의 고질병인 '금권(金權)정치' 문제를 강도높게 추궁해 왔다는 점에서 일본경찰당국은 이를 저지하려는 세력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외국의 시선도 다르지 않다. 반개혁세력의 준동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25일(현지시간) “이시이 의원이 민주당내 '반부패특위'위원장으로서 특히 일본의 건설업계 비리를 집중적으로 파헤쳐왔다”고 보도한 것이나 민주당 동료의원인 후루카와 모토히사가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일종의 검사였다"고 말한 것도 이를 뒤받침하고 있다.
일본의 고위층 인사들은 과거에도 폭력조직과 연계된 극우분자들에게 공격을 당한 적이 있다. 니와 효스케 전 노동부 장관은 지난 90년 정신이상자에 의해 공격받아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경시청은 암살자를 정신이상자로 규정했으나, 일본언론은 극우의 정치테러로 의심했다.
그러나 정치인, 그것도 현역의원이 암살된 것은 일본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다. 1960년 당시 사회당 당수였던 아사누마 이네지로가 집권당과 정치공방을 벌이던 와중에 극우진영 청년으로부터 살해된 사건을 마지막으로 지난 40년간 정치인이 암살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일본 정치인들은 지금 크게 분노하고 있다.
특히 이시이 의원의 경우 일본 국회의원들 가운데 드물게 금권정치와의 전쟁을 벌여온 인물이었던 만큼 일본국민들이 받은 충격과 분노는 더 컸다.
***이시이 의원, 금권정치.신사참배 등에 강력저항**
이시이 의원은 지난 93년 중의원에 첫 당선했으며, 94년에는 하타 내각에서는 총무성 정무차관을 지내기도 했다. 1993년 의원으로 당선된 이시이는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모스코바 대학에서 러시아 연구를 한 러시아통으로 알려졌다. 그의 부인 나타샤도 러시아인이다.
마이니치 신문은 25일 "이시이 중의원 의원은 민주당에서 손꼽히는 논객이었던 만큼, 그의 발언은 부정이나 의혹의 추궁에 머무르지 않고, 평화나 표현의 자유의 문제까지 폭넓게 미치고 있었다"고 추모했다.
이시이 의원은 2년전인 2000년말 일본의 교권(敎權)과 기성세대의 권위가 극도로 붕괴된 미래를 배경으로 일본정부가 학생들로 하여금 급우들을 죽여야만 살아날 수 있는 극한 지옥훈련에 몰아넣는다는 엽기적인 영화 <배틀 로얄>(국내에서도 지난여름 개봉)에 대해 상영금지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등 자신의 소신에 대해 거침없는 발언으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는 당시 <배틀 로얄>에 대해 "잔혹한 장면이 잇따라 나오는 이런 영화를 아이들에게 보여도 좋은가"라면서 중의원 문교위로 당시의 오오시마 타다노리 문교부장관을 추궁하고, 영화의 시사회에도 출석해 이 영화를 만든 후카사쿠 감독에 대해서 "저런 잔학한 장면으로 가득 채운 것은 치졸한 수법이라고 생각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99년 8월 노나카 히로무 당시 관방장관이서 야스쿠니 신사의 특수법인화와 A급 전범의 참배에 대해 언급했을 때, "야스쿠니 신사를 정부의 파견 기관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은 일본인을 정신면에서 통합하고 싶은 정부여당의 계획이겠지만, 과거의 역사를 되돌아 보면 넌센스로 도저히 용인할 수 없다"며 정면 반발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일본도로공단의 개혁 논의를 둘러싸고, 금년 4월 중의원 내각위에서 "개혁을 검토한다는 민영화 추진 위원회에 아예 일본도로공단의 올드 멤버들을 포함시킬 생각은 없냐"며 풍자적 질문을 던져, 개혁의 '저항 세력'이 되고 있는 국토교통성을 견제하는 등 올곧은 소신파 개혁의원으로 늘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일본 정경유착의 근원이자 일본불황의 뿌리인 건설사와 자민당간 유착혐의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건설사와 자민당, 그리고 건설사의 최대주주인 야쿠자들 사이에 유착이 얼마나 깊은지 일본에서는 이들 유착세력을 '건설족'이라 부를 정도다.
이런 와중에 이시이 의원이 백주대로에 피살되니, 일본 국내외의 의혹어린 눈길은 온통 건설족에게로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개혁 저지 위한 반개혁 암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사건 발생 직후 "어떤 상황에서도 정치활동을 폭력으로 말살하려는 행위는 용서할 수 없다"며 "강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이시이 의원은 정의감이 넘치는 정치인으로, 목숨을 걸고 의정활동을 해왔다"며 같은 당소속 의원의 사망에 애도를 표했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정작 우려하는 대목은 이번 이시이 의원 암살이 현재 고이즈미 총리가 일본 은행.관료.재계.야쿠자 등의 거센 반발속에 강행하고 있는 금융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개혁파들에게 공포감을 심어주기 위한 목적에서 자행된 '반개혁 암살'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럴 경우 가뜩이나 힘들게 진행중인 일본 금융개혁 작업은 보이지 않는 테러의 벽에 부딪쳐 좌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쿼바디스 저팬(일본이여, 어디로 가려는가)'라는 개탄이 절로 나오는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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