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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성공여부는 돈이 아니라 사람에 달렸다"

패스트푸드업계에서 은행으로 스카웃된 김상국씨

은행 지점이 입주건물의 가치를 올려주는 귀한 손님이던 시절이 있었다. 이른바 '낙하산 지점'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권력층과 관계된 건물이 임대가 잘 안되면 은행에 압력을 넣어 이 건물에 우선적으로 은행 지점을 입점해줄 것을 강요해 생긴 말이다.

그러나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은행마다 수익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낙하산 지점' 같은 외압이 먹혀들 여지가 사라졌다. 그 대신 지점의 수익성을 크게 좌우하는 목 좋은 점포를 확보하느라 비상이 걸린 상태다. 은행권에서 점포선정 전문가를 스카우트해올 정도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다른곳도 아닌 국영은행인 기업은행이 패스트푸드점에서 사람을 스카우트해 금융계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김종창 행장, "최고의 점포선정 전문가를 영입하라"**

22일 기업은행 본점을 찾아, 우선 윤용 점포전략실 팀장부터 만나보았다. 스카우트 동기가 궁금해서다.

그는 "기업은행에도 인재가 많을 텐테 목 좋은 곳 찾기가 그렇게 어렵습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은행들이 주5일제를 실시한 이후 은행들은 도리어 건물주로부터 기피대상이 되어버렸다"고 작금의 달라진 분위기를 전했다.

은행점포가 기피대상인 이유는 또 있다 했다. 건물주가 저금리 시대에 보증금보다는 월세를 선호하는데, 은행들은 현금이 풍부해 보증금만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다.

때문에 은행점포를 서로 모셔가던 시대는 지나고 명동이나 강남 등 소위 최고의 상권에 은행점포를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건물주로서는 이왕이면 패스트푸드점이나 24시간 편의점 등 연중무휴 밤낮 북적거리는 업소가 입점하는 것을 선호하는 데 비해, 은행은 오후면 셔터를 내려버리고 주말이면 문도 열지 않기 때문에 선호도가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상황이 바뀐 것은 건물주의 선호도뿐만이 아니다. 은행간 경쟁이 극심해지면서 위치 선정이 잘못된 점포들이 눈엣가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목 좋은 점포 확보경쟁에 불을 붙인 것은 예전의 주택은행, 지금의 국민은행이다. 김정태 행장이 취임직후 "목 좋은 점포를 선정하는 데에는 돈을 아끼지 말라"고 지시하면서 새로 지은 대형건물 등 시내의 목 좋은 점포들을 싹쓸이하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익성에 목을 매달고 있는 다른 은행들로서 비싼 임대료만 까먹고 상대적으로 수익은 낮은 점포들에 대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김종창 기업은행장은 관료 출신이면서도 수익성 강화를 경영 제1의 목표로 삼고 있는 '시장친화적 인물'로 평가받는 드문 뱅커다. 김종창 행장은 고심 끝에 "점포 수익성 강화를 위해 입점 경쟁이 치열한 패스트푸드업계에서 점포선정 전문가를 영입하라"는 비책을 내놓았다. 외곬로 한 길을 걸어온, 그 분야의 최고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지시였다.

***"점포선정은 돈이 아니라 사람에 달렸다"**

은행권 스카우트 1호가 된 인물은 롯데리아 8년, 버거킹 4년 등 도합 12년 경력의 점포선정전문가 김상국씨(37). 91년 롯데리아에 입사한 뒤 점포전략실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그동안 1백여개의 점포를 선정해 '최다개발상'을 받았을 뿐 아니라, 예상매출액 이상을 올리는 성공점포 선정률이 80%가 넘는 베테랑이다.

기업은행에 스카우트돼 지금은 점포전략실 차장을 맡고 있는 김상국씨를 만나 보았다.

"직업병이 무섭다고 하잖아요. 점포선정 업무를 3년쯤 하니까 길을 지나가도 그냥 지나가지 않게 되더라구요. 특정 점포 주변이 그대로 머릿속에 입력될 정도로 유심히 살펴보게 되죠.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떤 장소를 대면 그곳을 지나다니는 유동인구는 어느 정도이고 그중에서 저 점포가 요구하는 잠재고객수는 어느 정도가 될 것이며 따라서 매출액은 어느 만큼 될 것이라는 계산이 금세 나옵니다."

그러나 점포 선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예상매출액을 뽑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건물은 대개 이미 영업하는 기존 점포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이 점포를 확보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좋은 점포라면 6개월~1년을 기다려서라도 확보할 필요가 있지만, 좋은 점포일수록 매물도 귀하고 경쟁도 치열하다.

"점포를 확보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자금력 싸움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은행처럼 현금이 풍부한 곳에서는 그건 별 문제가 안됩니다. 그렇다면 결국 사람에 달렸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건물주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 것이죠."

패스트푸드 점포선정 업무를 하던 시절 그가 남다른 경쟁력을 가졌던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건물주를 찾아가 기존 점포의 계약기간이 언제 끝나는지, 그리고 건물의 가치를 높이고 최대의 임대료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왜 패스트푸드점이 들어서야 하는지 등에 대해 집요하게 설득하곤 했다. 설득을 위해서는 인간적인 유대관계도 잘 맺어 두어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남다른 노력이 요구된다 했다.

또한 패스트푸드업계에서 점포선정전문가로 활동하는 30여명의 '디벨로퍼'들을 비롯해 다양한 업종의 점포선정 전문가들과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는 것도 그의 강점이다.

"패스트푸드점은 대개 1백평 이내의 규모인데, 만일 1층에 2백평 규모의 건물이 있다면 건물주로서는 성격이 다른 여러 개 점포를 들이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제가 아는 유명의류업체와 함께 그 건물에 들어가겠다고 하면 건물주가 좋아하죠."

김상국 차장만의 노하우다.

***한 때는 은행점포 쫓아내기 주범(?)**

기업은행은 현재 3백80여개의 점포를 갖고 있다. 기업은행은 김상국 차장 영입을 계기로 점포수를 늘이기보다는 모든 점포에 대해 수익성 분석 등을 통해 구조조정을 거쳐 점포를 재배치한다는 방침이다.

이같은 방침에 따라 김상국 차장은 크게 4가지 임무를 부여받고 있다. 점포 구조조정, 수익성 점포개발, 노하우 전수, 점포선정업무 메뉴얼화(정형화) 작업 등이 그것이다.

기업은행은 김상국 차장과 함께 버거킹에서 점포 수익성 분석과 장기점포전략을 짜던 베테랑 점포전문가 최동희씨(37)도 함께 영입했다. 수익성 분석과 장기전략수립 등 이론쪽에 밝은 최동희씨와 실전 노하우가 풍부한 김상국씨의 콤비플레이로 점포선정전략에서 타은행들보다 우위에 서겠다는 계산이다.

버거킹에서 명콤비로 불렸던 김상국씨와 최동희씨는 보수성 강한 은행에서 치열한 경쟁속에 갈고닦은 자신들의 솜씨를 보여주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다만 업종이 전혀 다른 만큼 지금은 목하 연구중이다.

이들에 따르면 패스트푸드점을 찾는 고객 70%가 패스트푸드점을 보는 순간 2초내에 들어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충동구매로 분류된다. 따라서 패스트푸드점은 젊은층 유동인구가 많은 곳, 접근이 쉬운 곳이 중요한 입지선정의 기준이 됐지만, 은행은 아무래도 기업이 밀집한 지역이나 공단, 아파트나 일반 상가가 많은 곳이 이상적이라고 한다. 그래서 둘은 "은행 고유의 점포선정 조건들에 대해 다각도로 연구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패스트푸드 재직시에는 건물주를 찾아가 "유동인구가 적은 은행점포를 밀어내고 대신 패스트푸드점을 들이라"는 반(反)은행적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한다. 과연 이제 정반대 위치가 서게 된 이들이 어떤 절묘한 화법으로 건물주들을 설득해 은행 지점을 들이게 만들지, 이들이 재배치한 은행 지점들이 얼마나 높은 수익을 올리게 될지, 관심 갖고 지켜볼 일이다.

여하튼 우리 눈앞에 '전문가 시대'가 도래한 것만은 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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