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 10~11일(현시 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양국 정상의 첫 대면이다. 북미 냉기류 속에 '톱다운' 외교의 재가동이 비핵화 협상의 돌파구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북한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메시지'가 나올지 관심을 모으는 14기 최고인민회의를 4월 11일자로 소집해놓은 상태다. 이에 따라 남·북·미 정상의 '포스트 하노이' 구상이 공개될 내달 11일이 한반도 정세의 중대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내달 방미 일정은 1박2일이다. 그만큼 양국 간 다양한 현안을 두루 다루기보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 집중한 회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당초 정부는 북한의 궤도 이탈 방지에 주력하며 대북 특사 파견 등을 검토했으나, 개성공단과 금강산 사업 재개 등 남북 경협 사업조차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와 맞물려 여의치 않자 트럼프 정부에 협상 문턱 낮추기를 설득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관측된다.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로 도마 위에 오른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반전의 모멘텀을 찾을지도 관심을 모은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한미 간 '엇박자' 논란을 불식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까지 트럼프 정부는 비핵화와 모든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의미하는 '일괄타결식 빅딜'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문재인 정부는 포괄적 로드맵 합의와 단계적 실천을 중재안으로 모색해왔다.
또 문재인 정부는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를 남북관계 및 북미관계가 선순환 구조로 전환되는 첫걸음으로 본다. 반면 트럼프 정부는 북미관계 개선 속도보다 빠른 남북관계 진전에 제동을 걸어왔다. 미국의 견제구에 진전을 보지 못한 남북관계에 북한은 북한대로 불편한 심기를 표해왔다.이처럼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냉기류가 남북관계 진전을 속박하는 와중에 이뤄지는 정상회담이어서 문 대통령이 제안할 중재 구상이 무엇인지, 이를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할지가 관심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추가적인 대북 제재 철회를 지시했다고 유화 메시지를 발산한 만큼, 문 대통령은 북한이 요구하는 제재 완화와 관련된 일정 수준의 상응 조치를 트럼프 대통령에게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날 한미 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하며 "한미동맹은 한반도와 그 지역의 평화와 안전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으로 남아있다"며 "이번 문 대통령의 방문은 이 동맹과 양국 간의 우정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에 경도되지 않도록 정상회담에서 한미 공조 구축에 방점을 두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미 정상회담에 앞서 29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간 한미 외교장관이 먼저 만나 한미 간 의견 조율에 착수한다. 이어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도 내주 미국을 방문한다.
강 장관과의 회담을 앞둔 폼페이오 장관은 28일(현지 시간) "머지않아 다음 (북미 정상회담이)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김 위원장은 나에게 직접, 대통령에게도 여러 차례에 걸쳐 (비핵화) 약속을 했다"면서 "그것이 그와 북한을 위해 올바른 전략적 방향이라는 걸 설득시킬 수 있는지에 따라 (비핵화 약속의 이행이) 입증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의 선(先) 비핵화 조치 시점까지 제재 이행을 강조하면서도 원론적이나마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을 열어놓은 발언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폼페이오 장관 등 참모진에 대한 극심한 불신감을 피력한 북한도 트럼프 대통령과의 직접 담판 방식에는 여전히 긍정적이다.
그러나 한미 정상회담이 곧바로 북미 정상회담이나 남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 한미 정상회담은 '톱다운' 대화가 재가동되는 시작점이 될 수는 있지만,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북미와 남북 사이에 이렇다 할 대화의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노이 회담 직후 전문가 그룹에선 원포인트 남북 정상회담이나 대북 특사 파견으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조언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청와대 관계자는 "하노이 회담 이후 남북 간 본격적인 논의는 아직 전개되지 않았다"며 "따라서 남북 정상회담 관련 논의는 아직 이르다"고 선을 그었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강온 메시지를 동시에 밝혀온 북한이 한미 공조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도 변수다. 한미 정상이 워싱턴에서 '포스트 하노이' 구상을 논의하는 내달 11일, 김정은 위원장은 평양에서 열리는 14기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대내외에 입장을 천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김정은 위원장의 4월 러시아 방문설이 거론되면서 북한이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북한이 중국 및 러시아와 관계 구축을 통해 북미 협상을 동북아 세력 대결 양상으로 전환시키고 장기전을 각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훈 국정원장은 29일 국회 정보위 보고에서 "북한은 자신들의 입장에 대한 지지 확보를 위해 러시아 접근을 강화하고 있다"며 "김창선 북한 국무위원회 부장이 최근 러시아를 방문한 점 등 러시아와 정상회담을 할 가능성에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은 대외적으로 대미 상황 관리를 위해 메시지 수위를 조절하면서 내부적으로는 협상 과정과 회담 결과를 평가하며 대응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결국 한미 정상회담이 최고인민회의와 잇달아 열리는 만큼, 문재인·트럼프 대통령의 포스트 하노이 구상과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는 상호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노이 빈손 회담 뒤 평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리가 이런 열차 여행을 다시 해야 할 이유가 있느냐"며 짙은 낭패감을 피력했던 김 위원장을 돌려세울만한 새로운 비핵화 방안에 한미가 합의하느냐에 따라 향후의 한반도 정세가 좌우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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