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아무도 걱정하는 사람은 없었다. 눈이 꽁꽁 얼어붙을 내일 새벽이면 찬 공기를 마시며 가장 먼저 학교의 문을 열겠지만, 쌓인 눈에 누군가 미끄러지진 않을까 수없이 비질을 해야할 테지만, 한숨보다는 힘찬 함성이 먼저 터져 나왔다. 교정을 메운 청소 노동자들에게 이날은 그 어느 때보다 흥겹고 벅찬 '잔칫날'이었다.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학생문화관 앞. 200여 명의 노동자, 학생이 건물 앞 공터를 가득 메웠다. 이 학교에서 청소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여 년의 노력 끝에 마침내 노동조합을 조직한 것. 언제나 학교 곳곳을 쓸고 닦지만 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교정 한복판에서 '공공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이화여대분회'에 출범식을 연 것이다.
▲ 이화여대 '새벽을 여는 사람들'.. 27일 비정규직 청소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해 권리 찾기에 나섰다. ⓒ프레시안 |
이화여대 새벽을 여는 사람들
"나 오늘 소장한테 얘기했어. 나 노조 가입했다고. 떳떳하게 얘기했어. 이제까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소장이 시키면 죽는 시늉까지 했지만, 이제 더 이상 안 그래도 된다는 게 가장 통쾌하지."
출범식에서 만난 청소 노동자 김순자(가명·60) 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랜 세월을 '참아 온' 끝에 만든 청소 노동자 스스로의 조직이 바로 노조였기 때문이다. 낯선 투쟁가가 적힌 종이를 읽으며 연신 팔뚝질을 하던 그는 "우리 아줌마들이 죽은 듯이 숨죽여 청소만 했던 이곳에서, 이렇게 소리도 지르고 우리 얘기를 할 수 있어 뿌듯하다"고 말했다.
1년 동안의 노력 끝에 결성한 노조였지만, 과정은 녹록치 않았다. 청소 노동자 1명이 커다란 건물 하나를 다 청소해야할 정도로 고된 업무량에 최저임금을 밑도는 저임금, 현장 소장의 비인간적인 대우 등, 불만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제대로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이들이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인데다가, '항명'의 대가는 철저한 불이익이었기 때문이다. 용역 업체 소장은 각 현장에 눈에 띄는 '불만 세력'이 있는 경우, 가장 업무량이 많고 적응하기 힘든 낯선 건물로 이들을 전환 배치했다. 노동자들은 관리자의 폭언에 과도한 업무까지 이중으로 시달려야 했다.
20대 대학생과 60대 여성 노동자의 만남
당사자 누구도 먼저 입을 열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생과 지역 사회가 먼저 나섰다. 이화여대 학생단체 '신바람'은 1년 전부터 꾸준히 학내 청소 노동자의 현실을 알려 왔다. 정기적으로 미화원 휴게실을 방문해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선전전과 사진전을 진행했다.
계기는 단순했다. 신바람 소속 유진설(가명·국문4) 씨는 "학교 안에서 가장 많이 본 분들이 청소 노동자인데, 인사 한 번 제대로 나누기 어려웠다"며 "학회 활동을 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고민하게 됐지만,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노동 현실에 대해서는 외면해왔다는 생각이 들어 이 분들을 만나게 됐다"고 말했다.
▲ 청소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전전을 진행하는 이화여대 '신바람' 학생들. ⓒ프레시안 |
학생들은 2008년 12월부터 공공서비스노조 서울경인지부의 도움을 받아 청소 노동자의 노동 현실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시작했다. 설문지를 들고 미화원 휴게실의 문을 두드리면서 알게 된 현실은 심각했다.
유 씨는 "용역 회사는 노동자들에게 화장실 쓰레기통에 씌우는 비닐 봉투까지 빨아서 재사용하라고 지시했다"며 "그것도 학생들 보기에 좋지 않다고, 기계실에서 빨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재단 적립금이 5000억 원이나 되는 부자 학교인 이대가 비닐 봉투 하나 제공 못해 그걸 빨아 쓰라고 하나"고 꼬집었다.
학생·노동자, 함께 부당해고 막아내
학생들이 찾아가면 누구보다 따뜻하게 맞으며 간식을 하나하나 챙겨줬던 노동자들이었지만, 이들을 만나기조차 어려운 때도 있었다. 학교 총무처와 용역 회사는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을 정기적으로 만나고 있음을 눈치채자, 각 현장의 반장을 불러 '학생들을 만나지 말 것', '학생들이 찾아오면 사진을 찍어 제출할 것' 등을 지시했다. 이 같은 요구에 노동자들은 노조의 '노'자도 꺼내기 전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학생과 노동자들이 함께 부당 해고를 막아낸 것이 서로 간의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됐다. 당시 용역 업체로부터 사직서를 강요받은 청소노동자 조항분(60) 씨는 평소 알고 지냈던 학생 한 명에게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 소식을 들은 이화여대·연세대 학생 20여 명이 용역 업체를 찾아가 '항의 시위'를 벌여 마침내 '해고 철회'를 얻어낸 것.
조 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얼마 후 일을 그만두었지만, 이날 출범식에 참석해 함께 기쁨을 나눴다. 그는 "학생들의 도움 없이는 복직도, 노조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 지난 1년 동안 이화여대 곳곳에는 학내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 인권 실태를 다루는 선전전이 이어졌다. ⓒ신바람 제공 |
지역의 사회단체와 이웃 학교 연세대 학생들도 힘을 보탰다. 서울서부비정규노동센터와 연세대 학생단체 '살맛'은 청소 노동자들이 출근하는 새벽 5시 무렵이면 따뜻한 차 한 잔과 노동법 상식을 담은 유인물을 건네는 '첫 차 선전전'을 진행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노동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연세대 '살맛' 소속 이종윤(27·경제3) 씨는 "3년 전 학교 대동제 때 청소 노동자들을 초청해 함께 주점을 했는데, 그 때 '20년 동안 이 학교에서 일했지만 학생들 축제에 초대 받아본 적은 처음'이라며 울먹였던 한 청소 노동자의 말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그는 "학교의 가장 중요한 구성원이지만, 그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분들이 용기 내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모습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조 결성의 물꼬는 결국 청소 노동자 스스로가 텄다. 지난 12일 조합원 8명으로 시작한 이대분회는 어느새 수십 명 규모로 불어났다. 처음 노조 가입서를 낸 강근희(가명·60) 씨는 "처음엔 노조 가입 자체가 너무 두려워 노동 3권이 뭔지 법까지 찾아봤다. 그런데 너무도 당연히 누릴 수 있는 권리더라. 그래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법을 공부하는 대학생 친구가 필요했던 1970년 전태일의 현실이 2010년,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에게도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투명 인간'의 외침…"여기에, 우리도 있다"
오랜 노력 끝에 첫 발을 디딘 노동조합이지만,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비정규직 노조가 다 그렇듯, 학교와 회사를 상대로 '이중 싸움'을 벌여야 한다. 당장 이날 이화여대 총무처는 "외부인에게 학교 건물을 빌려줄 수 없다"며 미리 대여한 출범식 장소를 갑작스럽게 취소했다.
결국 출범식은 눈발이 날리는 야외에서 진행됐지만, 일부 총무처 직원은 이곳에 엠프를 설치하는 것조차 막아섰다. 김중희(가명·59) 조합원은 "이 학교를 구석구석 쓸고 닦은 게 몇 년인데, 외부인이라는 게 말이 되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제 갓 출범식을 마친 이대분회는 곧 임금 인상과 식대 지급, 주 5일제 근무 등을 회사와 학교 측에 요구할 생각이다. 앞서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고려대, 연세대, 성신여대, 덕성여대의 사례를 생각한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셈이다.
'신바람' 학생들은 개강을 맞으면 청소 노동자들과 함께 '따뜻한 밥 먹기' 행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새벽 5시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출근하지만, 식대가 지급되지 않아 그 와중에도 도시락을 싸와야 하는 것이 이곳 노동자의 현실이다. 다른 대학 청소 노동자들처럼 휴게실에서 밥을 지어 먹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화여대는 "건물 내 전열기 사용은 안 된다"며 전자레인지·밥솥 사용을 불허해, 이들은 그동안 차게 식어버린 점심 도시락을 먹어야 했다.
유진설 씨는 "식대 지급을 요구하는 서명 운동을 진행하고, 노동자들과 학생이 따뜻한 밥 한 끼 나눠먹을 수 있는 행사를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의 한 대사처럼, 청소 옷만 입으면 '투명 인간'이 됐던 사람들이 "여기에 우리도 있다"며 외치고 나섰다. ⓒ프레시안 |
따뜻한 한 끼 밥과 인간답게 대우받으며 일할 권리를 외치는 이대 청소 노동자들의 '밥과 장미'. 이들은 출범 선언문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 청소 용역 노동자들은 지난 세월 동안 시키면 시키는 대로, 아무 소리 못하고 마치 노예처럼 일해 왔다. 한 겨울에도 쥐가 다닐 것 같은 휴게실에서 찬 도시락을 먹어야 하는 현실, 매년 반복되는 재계약의 공포, 관리자의 해고 협박…. (…) 이제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 이야기할 수 있는 당당한 '노동자'임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화여대를 구성하고 이끌어가는 또 하나의 '주체'임을 선언한다."
켄 로치 감독의 '빵과 장미'의 한 대사처럼, 미화원 옷만 입으면 '투명 인간'이 됐던 사람들이 "여기에 우리도 있다"며 외치고 나섰다. 어색한 팔뚝질로 한 바탕 '비정규직철폐연대가'를 함께 부르고 마친 출범식 자리에서, 눈은 어느덧 빗줄기로 변해 비질을 하듯 교정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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