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야지, 天命의 고향으로."
지금부터 1600년 전 도연명의 시 귀거래사의 앞부분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던 자기 심정을 노래했습니다. 도연명은 10여 년에 걸친 관료생활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나이 마흔 하나 때입니다. 그는 팽택 현령이 된 지 겨우 80여 일 만에 자발적으로 퇴관했습니다. 나라에서 큰 벼슬 한번 해보려고 30년을 노력했으나 결국 관직은 자기 뜻과 맞지 않음을 알고 고향으로 돌아와 말년을 보냅니다.
돌아가야지, 이렇게 시작하는 귀거래사는 천년이 넘도록 삶의 근원을 찾으려 했던 동아시아 지식인들에게 널리 음송되어 온 명시입니다. 설날을 맞아 고향 길에 오르는 요즘 사람들 마음도 찡하게 합니다. 같이 음미해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도연명은 지금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입니다. 빚더미에 쫓기지도 않고 돌아가야 할 고향이 확실히 있었습니다. 처자식과 정든 이웃이 기다리는 고향이었습니다. 농사지을 문전옥답도 있었습니다. 우리시대는 농사가 희망이 되어서 전원에서 생활을 즐길 만한 여유도 없습니다. 늙은 부모가 텅 빈 들을 바라보며 아예 농사를 포기한 채 서 있을 뿐입니다.
귀거래사 뒷부분은 다음과 같이 끝납니다.
曷不委心任去留 胡爲遑遑欲何之
富貴非吾願 帝鄕不可期
懷良辰以孤往 或植仗而耘耔
登東皐以舒嘯 臨淸流而賦詩
聊乘化以歸盡 樂夫天命復奚疑
마음 가는대로 머물다 가다하면서 살면 되지
무엇하겠다고 조급하게 마음 쓸까
부귀는 내가 원치 않는 것
벼슬자리는 내가 기대도 안 하네
좋은 날 가슴에 품고 외로이 간다.
혹은 지팡이를 꽂아놓고 김도 맨다.
동쪽 산에 올라 심호흡하며 후유~ 숨소리를 내고
푸른 물가에 나가서는 시를 짓는다.
애오라지, 이내 육신도 변하여 돌아가면 없어지고 말 것인데
즐겁다, 천명으로 돌아갈 것을 어찌 의심하리오.
아하, 여기서 돌아간다는 것은 단지 고향산천이 아닙니다. 돌아간다는 것은 '자연' 그 자체입니다. 무상하게 변하는 자연, 끝이 없는 무극 자연입니다. 평생 살아야 100년도 못다 사는 인생의 무상을 알고 천명에 따라 살다가는 것을 그래도 기뻐하자는 인생관입니다.
동아시아 사상사에는 크게 두 가지 조류가 있지요. 공·맹자 사상과 노·장자 사상입니다. (거기에 하나 더해서 굿 사상이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고) 인간사회의 합법성을 추구하려는 사회론자들과 자연적 초법성을 지향하는 자연론자들입니다. 도연명은 결국 후자의 길을 택했습니다. 전자가 정치, 경제라면 예술, 인문, 종교, 의례가 후자이지요. 그러나 이 양자를 분립해서 사고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전자가 후자를 상기하지 못할 때 지구적 재앙이 찾아올 것이라는 경고를 자연은 늘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후자가 전자를 고려하지 않을 때 사회는 영영 세속화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정치인이 정치가 안 되니까 여야 새 원내대표가 만나서 "정치도 아름답게 하자, 예술처럼 하자"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술은 천명(天命)의 도를 따르는 예도를 말합니다. 그렇게 정치를 가지고 아전인수 격으로 예술을 논하는 게 아닙니다. 당리당략의 정쟁을 초월할 진심을 가지고 말을 해야 합니다. 천명의 도- 하늘이 주신 목숨 길처럼 정치를 생각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설을 쇤다는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향 가서는 출세했다고 으tm대는 졸부가 많은 세태입니다. 설을 쇠는 것은 천명에 따라 살겠다는 다짐의 통과의례입니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여 신·우주·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 생명의 소생을 감사하는, 그야말로 천명을 확인하는 의례의 날입니다.
도연명이 1400년 전에 '돌아가야지' 한 것은 세월의 거리를 넘어 아직도 변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정치가, 사회가, 경제가 잘못 가다가도 '돌아가야지' 하는 계기를 가지는 날이 설날 같은 의례의 날입니다. 세속의 가치만을 추구하다가 더 망가져서는 못 돌아갈 것이라는 성찰이 '귀거래혜(歸去來兮!)'입니다. 삶이 제 아무리 각박한 이익 다툼 세상으로 달려가다가도 '돌아가야지' 하며 가끔 우리 마음 속 고향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우리 마음 속 고향을 황폐한 농촌 위에다 다시 그려봅니다. 귀거래처는 마음가는대로 좋은 땅을 산책하며 가슴에 시심을 품고 살다가 천명에 따라 돌아가는 곳입니다. 우리도 시심이 서린 고향의 자연에서 세속의 때를 씻고 되돌아올 수 있기를 바래봅니다. 부모·조상·자연은 모두 하나같이 내 목숨을 이어준 천명(天命)입니다. 그 천명의 고향을 찾아 설을 쇠는 날입니다. 독자여러분 설 잘 쇠시기 바랍니다. 나도 돌아가렵니다. 천명의 고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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