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에 의해 사라진 줄 알았던 '냉전의 후예'들의 부활 조짐이 뚜렷하다.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탄핵 부정과 5·18 망언에 대한 사과 없이 문재인 정권을 좌파 '포로정권'의 덫을 씌워 공격하면서 당의 존재감을 알리는 '괴물정치'의 포로가 되고 있다. 한국당 지도부가 쏟아내고 있는 발언들은 집권세력과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영역을 넘는 저주에 가까운 수준이다.
한국당의 의도된 발언이 가져오는 정치실종과 민주당의 '과도한' 반응이 동일한 층위에서 비판받는 프레임은 정치혐오와 증오를 증폭시킨다. 한국당은 이에 편승하여 냉전을 부추기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의 역사적 당위마저 부정하는 듯한 희대의 발언으로 친일과 반공주의에 친화적인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고 있다.
역사를 조작하고 왜곡하는 반지성적 언술들은 오히려 '보수정당'에 대한 잠재적 지지자들을 현재(顯在)적 지지자로 바꿔놓고 있다. 한국당 지지율 상승이 그 증거다. 역설적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한국당은 부진한 북미 비핵화 협상을 이용하여 냉전 의식을 상기시키고 또 다시 '퍼주기' 프레임으로 진보진영을 공격함으로써 숨죽이고 있던 보수들을 결집시키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차마 수구반동적인 한국당을 지지할 수 없었던 중도보수들은 '촛불'의 퇴장과 어두운 경제전망 등을 명분삼아 본래의 이념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반동 정치의 전형을 보이고 있는 제1야당의 행태는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공고화가 얼마나 지난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1987년 민주화는 독재정권 타도와 대통령 직선제 쟁취를 의미했고 이 목표의 달성은 곧 민주주의의 달성으로 오인됐다. 1987년의 민주화를 민주주의를 향한 출발로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최종 결론으로 이해한 결과다.
1980년의 5·18 민주화 운동을 지금도 폭동이라고 날조하고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지칭하는 자들에 대한 국회 제명이 논의조차 되지 않는 현실은 3·1운동 100주년이 지난 현재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역사 과오의 당연한 결과다. 일제에 대한 자발적 협조로 민족을 팔았던 친일세력들이 해방 후 미 군정에서 부활하고 산업화 과정에서 쿠데타 세력의 반공주의에 편승하여 특혜와 편법을 누린 세력의 후신은 '태극기 부대'에 의해 명맥을 유지한다.
탄핵 2년이 지나고 총선 1년을 앞둔 시점 민심은 어디로 향할까. 촛불의 도덕적 우위와 정치적 명분의 동력이 사라지고 선거민주주의 틀에 갇힌 일상적 정치문법이 작동되면 선의와 역사의식으로만 선거를 치를 수 없다.
비상한 시기다. '반민특위가 국민을 분열시켰다'는 반역사적 발언을 비판하면 이를 '친일 우파 프레임'이라며 역공하는 탄핵 부정 집단의 허위의식을 벗기기가 쉽지 않다. 그들에게 아무리 당위를 설파하고 역사의식과 민주주의를 설득해도 진실 왜곡이 정치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는 집단에게 도덕과 역사는 한낱 사치다. 일단 진영논리의 틀에 갇히면 어떠한 논리도, 지성도 통하지 않는 게 한국정치의 본질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는 명분과 실리, 가치와 사실이 교차하는 접점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다. 규범보다 존재론적 현실이 승부를 가른다는 사실을 한국정치는 숱하게 경험했다. 또 다시 냉전사고와 반공주의로 한반도가 전운에 휩싸이고, 친일 논리가 고개를 드는 현실은 막아야 한다. 역사 교과서가 국정화의 길을 밟게 해서는 안 된다.
어떠한 정치세력이 들어서느냐는 그래서 중요하다. 상황은 집권세력에 유리하지 않다. 경제가 그렇고, 북미 관계도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가 많다. 그러나 이를 돌파해야 할 책무가 집권세력에 있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재빨리 수구로 회귀할지 모른다. 보수언론이 대기하고 있고 기회만 보던 기득권의 반발이 더욱 노골화할 수 있다.
다시 친일과 반공으로 무장한 수구세력이 권력을 가지고 사회를 과거로 되돌리는 시나리오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남북 긴장 고조 등은 당연한 부산물일 것이다. 집권세력은 정치보다 역사를 생각해야 한다. 엄혹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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