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나라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을 이긴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나라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을 이긴다"

'책 읽어주는 부행장'의 주말 이야기 <24>

세상이 어수선해지면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현상이 몇 가지로 나타난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심령에 관한 쪽으로 빠지고, 또다른 하나는 공상과학(SF) 쪽으로 도피하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두드러지는 현상이 역술에 대한 높은 관심이다.

최근 들어 젊은이들이 운세나 사주팔자를 보는 쪽으로 상당한 관심을 돌리고 있는 것 같다. 신문광고면에 역술인들이 크게 광고를 내고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주역이나 사주 등에 관해 정식으로 깊이 연구하여 보다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접근을 시도하면서 관련 서적을 현대판으로 출간하는 매니아들까지 있다.

21세기 들어 첨단과학문명이 각 분야로 크게 발전하고 있음에도, 최신 과학을 공부한 요즈음 청소년들이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사주팔자 풀이에 그렇게 깊은 관심과 호기심을 보이는 것을 보면 어리둥절한 느낌마저 들 지경이다.

이뿐인가.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대선후보들의 운세 풀이를 다룬 책들이 봇물 터진듯 쏟아져나와 술자리나 골프장 등에서 호사가들의 화제거리가 되고 있다. 이 또한 연말 대선의 향배가 그만큼 안개속이라는 얘기에 다름아닌 성 싶다.

역술이 도대체 뭐길래.

인류는 태어나면서부터 불확실한 장래나 운명을 알아내려고 연구를 거듭해왔고 이를 저술로 남겼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것이 <주역(周易)>이다. 삼황오제 때 복희씨가 창안하였다 하니, 지금부터 6천7백여년전 일이다. <오행(五行)>은 황제때 만들어졌다 하니 4천6백여년전이고, <관상>은 춘추전국시대인 3천여년전 저술이다. <성명철학>은 한대 초기인 2천여년전에, <사주>는 당나라때 띠를 중심으로 하는 당사주가 생겼다. 또한 사주학 또는 명리학은 송나라 초기 서자평(徐子平)에 의해 만들어진지 약 1천여년에 이른다고 한다.

인류의 역사는 곧 역술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이들 역술서의 공통된 특징은 사람의 '운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체념적 철학'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들 역서의 마지막 결론에 주목해야 한다.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말라"는 것이다. 도랑을 파고 장작을 패는 자세로 성실하고 지혜롭게 인생을 살라는 메시지다. 체념보다는 무위자연의 철학에 가깝다.

한대(漢代)의 왕충(王充 : AD 27 ~ 97년) 은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정명론(定命論)에 관하여 <논형(論衡)>이라는 저서를 남겼다. 그 중에서 「명록(命祿)」편에서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명록(命祿)이 말하는 운명**

사람들이 윗사람의 마음에 들거나 해를 입는 것은 모두 ‘운명’에 의한 것이다.

삶과 죽음, 장수와 요절의 운명이 있고, 또한 귀천과 빈부의 운명이 있다.
왕공(王公)에서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성현(聖賢)에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에까지, 모두 머리와 눈이 있 고 혈기를 지닌 동물이라면 운명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빈천해질 운명이면 비록 부귀하게 해주더라도 화를 만나고, 부귀해질 운명이면 비록 비천하게 해도 복을 만난다.

때문에 귀하게 될 운명이면 비천한 지위에 있어도 절로 부귀에 이르고, 비천해질 운명이면 부귀의 지휘에 있어도 절로 위태로워진다.
그러므로 부귀에는 마치 신령(神靈)의 도움이 있는 것 같고, 빈천에는 귀신의 재앙이 있는 것 같다.

귀하게 될 운명을 지닌 사람은 남들과 함께 배워도 홀로 벼슬을 하고, 함께 관직에 나가도 혼자 승진한다.
부자가 될 운명을 지닌 사람은 남들과 함께 구해도 혼자 얻게 되고, 일을 해도 홀로 성공한다.
빈천의 운명을 지닌 사람은 이와 상황이 다르다.
어렵게 벼슬에 이르고 겨우 승진하며, 어렵게 얻고 일을 성취하지만 잘못을 저질러 죄를 받고, 질병으로 뜻하지 않게 관직을 잃게 되어 지녔던 부귀마저 상실하고 빈천해진다.

그러므로 높은 재주와 후덕한 행실을 지녀도 반드시 부귀해진다고 할 수 없으며, 지혜가 모자라고 덕이 천박 해도 꼭 비천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간혹 높은 재주와 후덕한 행실을 지녀도 운명이 나빠서 배척 당하여 등용되지 못하고, 지혜가 모자라고 덕이 천박해도 운명이 좋다면 등용되고 차례를 뛰어넘어 승진한다.

따라서 일을 처리할 때의 지혜와 어리석음, 행실의 고결함과 비속함은 본성과 재질에 의하며, 관직의 귀천과 사업의 빈부는 운명과 시운에 달렸다고 한다.

운명이라면 억지로 할 수 없으며 시운이라면 노력으로 얻을 수만은 없다.

지혜로운 자는 하늘에 맡기므로 마음에 거리낌없어 편안하다.

비천한 데서 부귀해지는 것이 도랑을 파고 장작을 패는 일과 같다.
노력하여 힘차게 쉬지 않고 판다면 도랑이 깊어지며, 쉬지 않고 도끼질을 한다면 땔감이 많아지는 것처럼, 운이 없는 사람도 모두 원하는 것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 빈천과 해를 당하는 우환이 생기겠는가?

<추신> 참고로 왕충은 "국가의 운명이 개인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말하고 있다.

"<좌전>의「소공(昭公)」18년의 기록에 의하면 송(宋), 위(衛), 진(陳), 정(鄭) 등 네 나라는 기원 전 524년 5월13일에 동시에 화재가 일어나 다같이 재해를 당했다. 네 나라 사람들 중에는 반드시 녹명(祿命)이 왕성해서 망하지 않아야 할 사람도 있었겠지만 다함께 화재를 당하여 나라의 재앙이 개인의 운명을 이긴 것이다. 그러므로 나라의 운명은 개인의 운명을 이기고 개인의 수명(壽命)은 녹명을 이긴다."

다음대통령이 되겠다는 후보들이 '자신의 운명'보다는 '나라의 운명' 즉 '국운(國運)'을 먼저 생각하고 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자세로 대선에 임해야 함을 가르쳐주는 문구이기도 하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