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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세난, "상대방이 느끼어 깨닫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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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의 세난, "상대방이 느끼어 깨닫게 하라"

'책 읽어주는 부행장'의 주말이야기 <23>

연전에 한비자(韓非子)의 세난편(說難篇)을 읽고 깊게 감명 받았다. 여러 번 읽었으나 읽을 때마다 ‘과연’이라는 생각이 드는 정말로 ‘문장’이다.

조물주에 의해 부여받은 육신으로 삶을 이어온 그 오랫동안의 역사 속에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인간의 마음을 갈파, 구구절절이 뼈에 사무치는 말만 전하고 있으며 추호의 사족도 없는 것이 본문장의 특색이다. 다만 곧은 선비들은 본문장을 “출세를 위한 비루한 글”이라고 경멸하는 분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한비(韓非)라는 학자는 속물적 출세욕과는 거리가 먼 청렴강직한 인물이었으며, 당시의 세태를 바로잡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결국 뜻을 세상에 펴지 못하고 비명에 생을 마친 비운의 인물이다.

한비는 한의 제공자(諸公子)의 말류(末流)로서 태어날 때부터 말더듬이로 눌변이었으나 저술에 능하였다고 한다.
한의 국력이 약해지는 것을 보고 그는 자주 편지로 한왕에게 상소하였으나 한왕은 그를 쓰지 않았다.

이런 일로 한비는 위정자가 나라를 다스리는데 법제를 밝히고 나라를 부하게 하고 병력을 튼튼히 하고 인재를 구하고 어진 사람들을 쓰려고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실속 없는 벌레 같은 소인배를 쓰면서 게다가 그런 무리들을 공로가 있는 사람의 위에다가 앉히는 것을 보고 되어먹지 못한 짓이라고 보았다.

청렴강직한 인물이 사악한 권신 때문에 임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을 슬퍼한 한비는 이에 옛날의 왕들이 한 정사의 성패득실을 조사해 고분(孤憤), 구오충(․五蠹) 구세림(․說林), 구세난(․說難) 등의 諸篇 十餘 萬字 등의 문장을 남겼다.

본 세설편(說難篇)은 자신의 실패경험을 바탕으로 유세(遊說)의 어려움과 방법론을 피력한 것으로 속물적 의미의 출세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인간관계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기 때문에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특히 우리 사회처럼 대화보다는 대결이 앞서는 사회에서 보면, 한비자가 말한 '귀인(권력자)를 '상대방'으로 바꿔 읽을 경우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글이라 하겠다. 필자주

***한비자의 세난편(說難篇)**

대체로 유세(遊說)의 어려움이란 나의 지식으로 상대방을 설득하기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또한 나의 변설(辨說)로 상대방에게 나의 의사를 철저히 하거나 자기가 말할 바를 종횡무진으로 다 말하기가 어려운 것도 아니다.

대체로 유세의 어려움이란 상대방의 심정을 통찰하고 상대방의 심정에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을 잘 끼워 맞추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상대방이 명예욕에 마음이 쏠려 있을 때 재물의 이익을 가지고 얘기하면 속물이라고 하여 깔보이고 경원을 당한다.

상대방이 재물의 이익을 바라고 있을 때 명예를 가지고 얘기하면 몰상식하고 세상일에 어둡다고 하여 소용없는 인간으로 인정받기가 첩경이다.

상대방이 내심으로는 이익을 바라면서 겉으로 명예를 바라는 때 이런 자리에서 명예를 얘기하면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하여도 내심으로는 은밀히 멀어진다. 만약 이런 자에게 이익을 갖고 얘기하면 내심으로는 은근히 받아들이면서도 겉으로는 그것을 멀리하는 척한다.

그러한 기미를 잘 파악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대체로 일은 비밀을 지키는 것으로 인해 성취하고, 말이 새는 데서 실패한다.
그런데 유세를 하는 자는 어쨌든 군주가 숨기는 일에 말이 미치는 일이 있다.
그런 자는 목숨이 위험하다.

또한 유세하는 자가 귀인(권력자) 중에서 과실의 단서를 찾아내어 다시 명백한 바른 논설을 세워서 그러한 것을 밝힌다고 하면 역시 목숨이 위험하다.

유세하는 자가 아직 군주의 두터운 은총도 얻지 않았는데 언설(言說)에 함축이 있는 지혜를 번득거리는 것은 그 언설이 효과를 거두고 공을 이룰지라도 별로 덕이 되는 것이 아니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실패한다면 엉뚱한 일까지 의심을 받는다. 그러한 자의 목숨도 역시 위험해진다.

대체로 귀인이 남에게서 계교를 얻어 그로 인해 자기의 공을 세우고자 생각할 때 유세하는 자가 계교의 출처를 들추어 내면 목숨이 위험해진다.

군주가 겉으로는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가장하고 뒤로 비열한 일을 하려고 생각하는 때, 유세하는 자가 그것을 아는 체하면 역시 목숨이 위험하다.

군주에 대해 도저히 손이 미치지 않는 일을 강요한다거나 도저히 중지하게 할 수 없는 일을 그치도록 하여도 목숨은 위험하다.

그렇기 때문에 군주와 함께 밝은 임금, 어진 임금의 얘기를 하면 속으로 군주를 비방하는 것이라 의심을 하고,
미천한 자를 얘기하면 임금의 권세를 팔려는 줄로 알며,
군주가 총애하는 자를 얘기하면 이를 이용하려는 줄로 알고,
군주가 미워하는 자를 얘기하면 이로써 군주의 마음을 시험하려는 줄로 알고,
말을 꾸미지 않고 생략하여 표현하면 무식한 자라고 업신여기며,
여러 학설을 끌어다가 해박하게 하면 말이 많아 지루하다고 한다.
일에 순응하여 솔직하게 의견을 말하면 겁쟁이로서 말을 다 못하는 사람이라 하고,
일의 앞뒤를 재어 이러쿵저러쿵 따져서 말하면 방자하고 본 데 없다고 한다.

이런 것이 유세의 어려움이니 몰라서는 안된다.
대체로 유세의 요령은 상대방 군주의 긍지를 만족케 하고 그의 부끄러워함을 건드리지 않는 데 있다.

상대방이 자기의 계교를 자신하거든 그 결점을 추궁하지 말며,
자기의 결단을 용감한 줄로 자인하거든 항거하여 노하게 하지 말며,
또 자기의 능력을 자부하거든 그 어려움을 들어서 용기를 꺾어서는 안된다.
어떤 일에 군주가 계획하는 일과 같은 계획을 가진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을 칭찬하여 주고,
어떤 사람이 군주가 하는 일과 같은 일을 하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의 하는 일을 다치게 하지 말며,
군주와 같은 실패를 하는 자가 있으면 그것을 실패가 아니라고 위로해 주면 된다.

큰 충성이란 순수한 것으로 다른 뜻이 없는 것이므로 군주에게 거스름이 없어야 하며,
군주에게 느끼어 깨닫게 해야 하니 배격함이 없어야 하며,
그런 범위 안에서 자기의 변재(辨才)와 지력(智力)을 다하는 것이 된다.

오랜 시일이 지나서 임금의 온정이 두터워진 뒤라면 깊이 들어가서 계획을 실천해도 의심을 받지 않을 것이며, 분명히 이해를 타산하여 나의 공적을 세우고 옳고그름을 바로 말하고 나의 몸에 비단을 장식할 것이다.

이렇게 하여 군신이 서로 손상되지 않는 것이 유세의 성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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