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회담을 놓고 제3자나 다름없는 남한의 과도한 관심과 당사자인 미국의 지나친 무관심이 미묘한 대조를 이루었다. 북미 회담 결과는 우리에게 큰 영향을 직접 미치지만, 미국인들에겐 별 영향을 주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 것이다.
북미회담 결렬 소식에 먼저 허탈감과 씁쓸함을 맛보았다. 충격과 분노도 느꼈다. 그리고 "역시 트럼프답다"는 생각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정상회담조차 갑자기 취소하거나 뜻밖에 결렬시키는 등 상대의 양보나 굴복을 받아내고자 하는 그의 '협상술'을 다시 본 것이다.
대통령의 품격이나 위신보다는 협상가로서의 실리를 중시하는 전략이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으려는 경제원칙을 따른 협상술이기도 하다. 유권자들이 북미 회담에 큰 관심을 갖지 않고, 여론 주도 세력은 북미 관계 진전을 방해하는 터에, 코언의 증언으로 정치적 곤경에 빠진 그가 북한과 협상에서 미미한 성과를 거두기보다는 차라리 협상을 깨트려버리는 게 비판을 무마할 수 있으리라고 계산하지 않았겠는가.
회담 결렬에 대해 그때부터 지금까지 무수한 전문가들이 다양한 분석과 해석을 쏟아놓았는데, 북미 관계는 낙관적으로 갈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가 북한과의 협상을 통해 꼭 얻고자 하는 게 있기 때문이다. 탄핵 가능성을 빼면 크게 두 가지다. 1차로 2019년 12월 노벨평화상을 받는 것, 2차로는 2020년 11월 대통령에 재선되는 것이다.
우선 트럼프는 작년부터 노벨평화상을 받기 원했다. 틈만 나면 비판하는 전임자 오바마는 집권 첫해 2009년 특별한 업적도 없이 이 상을 받았다. 트럼프가 얼마나 수상을 원하면 체면 사납게 아베 일본총리에게까지 추천해달라고 부탁했겠는가.
노벨평화상은 각국 국회의원이나 대학교수 등이 추천할 수 있다. 대통령이나 총리 또는 과거 수상자가 추천하면 영향력이 더 클 것이다. 후보는 매년 9월부터 다음해 1월까지 5개월 간 추천할 수 있는데 노르웨이 노벨위원회에 따르면 올해는 219명의 개인과 85개 단체가 추천됐다. 심사위원들은 1월 말 마감 이후 심사기간 중에도 추천할 수 있기에 더 늘어날 수 있다. 9월까지 심사를 마치고 10월 초 수상자를 발표하기 때문에, 트럼프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려면 늦어도 8~9월까지 세계평화를 위한 획기적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영변 핵시설 폐쇄와 종전선언 및 연락사무소 개설 정도의 '작은 거래 (small deal)'는 노벨평화상감으로 족하지 않다. 북한과의 협상에 대한 미국 정계와 언론의 부정적 시각을 덮기도 부족하다. 모든 핵시설 폐쇄와 평화협정 및 수교 정도의 '큰 거래 (big deal)'라야 온 세계의 관심을 받으며 노벨평화상을 확보할 수 있다. 트럼프가 이것을 기대하며 하노이에서의 작은 거래를 뒤집어버리는 '미치광이 협상술'을 써먹은 게 아닐까.
이 글을 쓰고 있는 3월 15일까지 미국은 이른바 협상파인 마이크 폼페이오 (Mike Pompeo) 국무장관과 스티븐 비건 (Stephen Biegun) 대북정책 특별대표까지 북한에 압박을 가하고, 북한은 이에 맞서 미사일 발사장을 띄우며 미국과의 대화 중단 및 핵‧미사일 시험재개 가능성을 흘린다. 트럼프의 '미치광이 전술'에 김정은이 '벼랑끝 전술'로 대응하는 것이다. 서로 협상을 통해 덜 주고 더 받으려는 기싸움이다. 이를 중재하고 조정해야 협상이 다시 시작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야 할 때다. 트럼프는 이미 공개적으로 부탁했고, 김정은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7월 27일 정전협정 기념일을 전후해 판문점에서 한반도에서의 전쟁 종식을 선언하며 평화협정 첫 단계라도 밟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면 세 지도자는 12월 10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노벨평화상을 받기 위해.
둘째, 트럼프는 2020년 11월 대통령 재선을 원한다. 민주당은 2월부터 예선을 시작해 7월 전당대회를 통해 대선 후보를 결정한다. 공화당은 트럼프에게 큰 탈이 생기지 않는 한 8월 전당대회에서 그를 후보로 지명할 것이다. 9월부터 불꽃 튀는 선거운동이 전개되고 11월 3일 선거가 실시된다.
언제든 미국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경제다. 먹고사는 문제가 후보 선택의 제1 결정 요인이란 말이다. 2017년 1월 트럼프 집권 이후 2019년 3월 현재까지 미국 경제는 괜찮은 편이다. 그가 큰소리치는 대로 경제성장률과 실업률 등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많은 국제경제학자들의 예상대로, 이르면 2019년 후반기 늦어도 2020년부터 세계경기가 침체되어 미국 경제에 빨간불이 켜지더라도 트럼프의 잘못으로 돌리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선거에서 더 유리해지려면 이른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 경제 업적에 안보 성과를 덧붙여야 백악관에 다시 들어가는 길이 더 넓어진다는 뜻이다. 안보 성과를 가장 얻기 쉬운 곳이 한반도다. 선거 이전까지 주한미군 철수와 북한 핵무기 완전 폐기를 바꾸면 된다.
주한미군 철수는 트럼프의 2016년 대선 공약이기도 하다. 주한미군의 가장 크고 중요한 역할은 급속하게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는 데 있기 때문에 군산복합체와 주류 정치세력의 거센 저항과 반발이 있겠지만, 트럼프는 국방비 절감을 내세우며 밀어붙일 뚝심을 지니고 있다.
그는 북한과 평화협정을 맺고 국교정상화까지 이룬 터에 주한미군이 왜 필요하냐는 주장으로 유권자들의 호응을 얻을 것이다. 더구나 일반 시민들이 안보와 관련해 두려워하는 것은 미국의 미사일 방어망을 뚫고 어디든 타격할 수 있는 러시아의 극초음속 핵 미사일이지 북한의 초보 단계 핵 미사일이 아니지 않은가.
김정은은 트럼프를 위해 미국 유권자들에게 더 실질적 선물을 줄 수 있다. 1968년 1월 원산 앞바다에서 나포해 지금까지 대동강변에 전시해놓고 있는 미국 해군정보함 푸에블로호를 돌려주는 것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김정은이 당장 반환한다고 해도 내년 가을쯤 돌려달라면서 거부할 것으로 본다. 대통령선거에 활용하기 위해서다.
이런 이야기를 한 모임에서 꺼냈더니 한 친구가 소설 같다면서도 이른바 '촉'이 좋다고 말했다. 소설 같은 현실도 많고 현실 같은 소설도 적지 않은 터에 내 소설이 현실이 되리라 믿는다. 인류 최초의 핵무기 개발이 소설에서 시작되었듯, 한반도 비핵화도 평화학자의 소설대로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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