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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만 발가벗기나"

<데스크 칼럼> 부와 권세로 공직 맡던 시대 끝났다

"가만히 보니까 나만 무대 위에 있더라.
그것도 나만 발가벗고 서 있는 꼴이다.
일을 시키려고 여기까지 끌어내놓고 시작도 하기 전에 회초리를 들면 어떡하느냐."

"이번이 법에 의한 두번째 청문회인데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공직생활을 하려는 분들에게 엄격한 자기관리에 대한 교육의 장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청문회 효과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청문회가 앞으로 잘 정착되면 사회도 정화되고 맑은 정치가 자리잡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 본다.
현재 상황 자체나 의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까 국회에서 시험을 치른다고 했는데 국민 앞에서 시험을 치른다고 생각하고 진중하게 임하면 좋겠다."

앞의 말은 장대환 총리 지명자가 23일 낮 출입기자들과 가진 오찬 간담회에서 한 푸념이다.
뒤의 말은 23일 오전 장 지명자를 만난 박관용 국회의장이 한 말이다.

총리 인준 청문회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두가지 시선이 잘 압축된 말들이다.

***예기치 못한 상황전개에 당황한 장 지명자와 청와대**

장대환 지명자에 대한 국회 인준청문회가 오늘(26일) 시작된다.

그가 처음 총리서리로 지명됐을 때만 해도 '이번에는 가볍게 넘어가겠지'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장상 지명자에 이어 장대환 지명자까지 인준 부결을 하는 데 따른 국정혼선을 우려한 때문이다. 신문사 사장 출신이니 '동업자 의리'로 언론이 봐주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장상과 장대환 두 사람의 자산 규모가 커서 그런지, 장상 지명자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온갖 의혹이 제기됐다. 설상가상으로 이정연 병역비리 의혹을 둘러싼 여야대립이 극한으로 치달았다. 한동안 관망하던 언론들의 검증작업도 본격화됐다. 참여연대, 언론노조 등은 잇따라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장 지명자와 매일경제는 불리한 상황전개에 당황했다. 이에 23일 작금의 사태를 '정치권과 언론의 음해성 마녀사냥'으로 규정한 매일경제는 1,4,5면에 해명기사를 실은 데 이어 광화문 등지에 신문을 무료배포하는 등 여론 돌리기에 나섰고, 장 지명자는 국회와 언론에 대해 협조를 구하느라 부산했다.

청와대도 가용인력을 총동원해 대국회 로비를 펴는 동시에, 자못 옹색한 '국가이미지 실추 위기론'까지 주장했다.

"총리 인준이 이번에도 부결되면 국정에 혼란이 초래될 뿐 아니라 대외적으로도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성공적인 월드컵 개최로 높아진 국가이미지가 일거에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오는 10월 ASEN회의등 대통령의 외유도 힘들어진다."

***"장상, 장대환씨는 그들이 속한 계층의 전형일뿐"**

과연 이번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한 기업인은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피력했다.

"장상과 장대환씨가 잇따라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든 생각은 '과연 저 사람들이 이렇듯 뭇매를 맞아야 할 정도로 특별히 잘못을 많이 한 사람들인가'였다.

내 사회경험으로 보면 장상씨는 중상류층의 전형이고, 장대환씨는 최고상류층의 전형이다. 그 집단의 평균에서 보면 특별히 잘못을 많이 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부동산이 오를 것 같다면 아파트 사고 지방에 땅도 사놓고 좋은 투자정보가 있으면 주식 샀다. 또 애들은 좋은 학교 보내기 위해 8학군에 집어넣었다가 좀 크면 외국에 유학 보내고 대충 이런 식이 아닌가. 또한 평소에 이런 일에 대해 그다지 잘못됐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왔고.

그러다가 인준 청문회라는 게 나와 엄격한 검증을 받다 보니, 장대환씨 말처럼 '왜 나만 발가벗겨 놓고 두들겨 패느냐'는 식의 항변도 터져나온 게 아닌가 싶다.

충분히 이해가는 반응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기준에서 본다면 특별히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닌데 뭇매를 맞으니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 만하다.

하지만 이런 대응은 너무 안이한 게 아닌가 싶다. 자신들이 국무총리가 되기 위해선 국내최초로 도입된 '인준 청문회'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권력층의 친인척 비리, 병역 비리에 신물난 국민들이 지금 얼마나 '깨끗한 인물'을 갈망하고 있는가를 읽지 못한 것이다.

과거처럼 대충 국회의원들의 호통 몇 번 듣고 잘못했다고 사과하면 무사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닌가.

세상이 얼마나 빠르게 투명해지고 있으며, 국민들이 깨끗한 세상을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가를 전혀 읽지 못한 데 따른 자승자박이 아닌가 싶다."

***투명한 인물만이 공직을 맡을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다**

박관용 국회의장은 "청문회 효과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조차도 이런 상황이 전개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고백이다. 아마 이런 상황이 예상됐다면 국회에서는 이같은 인준 청문회를 도입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인준 청문회는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여야의 대통령후보들이 지금까지 내놓은 공약을 보면 내년부터는 국무총리뿐 아니라 국정원장, 대통령비서실장 등 주요 직책 지명자들도 예외없이 인준 청문회를 거쳐야 할 상황이다. 깨끗하고 투명하지 못한 인물은 애시당초 국정 요직에 오를 생각을 말아야 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이런 엄격한 기준을 들이민다면 우리 사회에 국정을 맡을 자격이 있는 이들이 과연 몇이나 있겠느냐"고. 또다른 이들은 "인준청문회가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과거지향적인 게 아니냐"는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나름대로 맞는 지적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작금의 갑갑한 부패모순구조를 재생산할 것인가. 이제는 확 바꿔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공직은 이제 투명한 인물들이 맡아야 한다. 명망과 돈, 권력이 있다고 높은 공직을 맡는 세상은 이제 종언을 고할 때가 됐다. 어찌 보면 장상씨나 장대환씨는 이같은 거대한 변혁의 와중에 본의아닌 희생물이 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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