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상류층의 어두운 욕망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드라마 <스카이캐슬>을 연상케 하는 미국 사상 최대의 대학입시비리가 공개됐다.
매사추세츠 연방검찰과 연방수사국(FBI)은 12일(현지시간) 지난 2011년부터 지난 2월까지 부정한 방법으로 예일대, 스탠퍼드대, 캘리포니아대학교로스앤젤레스(UCLA), 조지타운대 등 미국 7개 명문대학에 부정하게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데 관여한 혐의로 입시 컨설턴트, 학부모, 학교 관계자 등 50명을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된 캘리포니아의 입시 컨설턴트는 <스카이캐슬>의 입시코디네이터 김주영(김서형 분)처럼 학부모가 거액의 돈을 주고 의뢰한 자녀들을 명문대에 입학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최고 징역 65년에 처해질 수 있다는 각종 범죄를 저지른 컨설턴트 윌리엄 싱어의 부정입학 수법은 교묘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명문대 관계자들과 공모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정도로 뻔뻔하다는 점에서 미국 대학가의 총체적 부패를 들춰낸 사건이기도 하다. <뉴욕 타임스>는 "이번에 공개된 수법은 그 범위와 뻔뻔함을 고려할 때 충격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나는 '옆문'을 창조했다"
대표적인 수법은 두 가지다. 우선, 대학입학시험 감독관을 매수해 대리시험을 치게 하거나 답안을 바꿔치는 방식이었다. 또 하나는 체육특기생 제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체육 감독들을 매수해 고객의 자녀들을 체육특기생으로 입학시켰다. 체육특기생 제도를 이용한 수법은 명문대에서 체육특기생 선발제도를 폐지해야 할 이유가 될 정도로 노골적이었다.
축구공이라도 차본 적이 있는지 의심스러운 한 여학생은 예일대에 '스타 플레이어'로 선발됐다. 부모가 들인 돈은 120만 달러(약 13억 6000만 원)였다. 체육특기생으로 입학한 뒤에는 '부상을 당했다'는 이유로 선수 생활을 그만뒀다. 조지타운대 테니스부, UCLA의 남자 축구부 등 여러 명문대 스포츠팀들에게 이런 체육특기생 입시 비리가 저질러졌다.
미국 명문대학은 부모의 재력으로 합법적으로 자녀를 입학시킬 수 있는 '기여 입학제'가 허용된다. 그런데 왜 이들 부모는 입시컨설턴트를 통한 부정입학을 택했을까?
컨설턴트 싱어가 직접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실력으로 입학하는 것이 '앞문'이라면, 기여입학제는 '뒷문'이다. 하지만 기여입학제는 돈만 내면 합격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의 재력으로 입학 확률을 높일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싱어는 "나는 '입학 보장'이 되는 '옆문'을 창조했다"고 자부했다.
글로벌 법무법인 '윌키 파 & 갤러거'의 공동대표인 고든 캐플런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딸을 위해 7만5000달러를 지급하고 대리시험을 치게 했다. 그는 입시부정이 들통나자 "나는 도덕적 문제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애가 부정을 저지른 일이 밝혀지면 그 애는 끝장난다"고 말했다. <스카이캐슬>의 예서 엄마 한서진(염정아 분)이 "세상이 나를 욕해도 상관없지만, 이 일이 알려지면 우리 예서의 인생은 끝이다"는 드라마 대사와 똑 닮았다.
"누구에게나 더러운 빨랫감은 있다"는 드라마 대사로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의 주인공 펠리시티 허프먼은 수만 달러를 들여 자녀를 부정입학시킨 것으로 드러나 '위기의 주부'가 현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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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트콤 <풀하우스>에서 주인공의 부인 레베카를 연기한 로리 러플린도 두 딸을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조정부 특기생으로 입학시키기 위해 50만 달러를 뇌물로 지급한 사실이 발각됐다.
자녀의 대학 간판을 위해 상류층 학부모들이 지출한 돈은 1인당 수십만 달러에서 최대 650만 달러(약 73억3000만 원)에 달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 사법당국은 이 수사가 지난해 5월 시작돼 아직도 수사가 진행 중이어서 추가 기소자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밝혀낸 뇌물 규모만 무려 2500만 달러(약 283억 원)에 달한다.
뇌물을 수수하는 과정은 전문적이었다. 부모들이 컨설턴트 싱어에게 직접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든 가짜 자선재단 키월드와이드에 기부를 하는 형식을 취했다. 일부 학부모는 자선재단에 돈을 기부했다는 이유로 세금환급까지 받았다.
싱어는 지난 11일 오후 법원에 나와 대학입시 부정 공모행위, 돈세탁, 탈세, 공무집행 방해 등 4가지 혐의를 모두 인정했지만, 50만 달러의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상태이다. 선고는 오는 6월 19일 이뤄질 예정이다.
CNN은 싱어의 각종 범죄가 모두 유죄로 확정될 경우 최대 징역 65년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입시부정에 가담한 다른 피의자들도 최대 징역 20년이 선고될 수 있는 중범죄 혐의가 적용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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