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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검찰쪽에서 떠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해찬 발언파문, 진상 밝혀야할 또하나의 '진실게임'

민주당 이해찬 의원이 21일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 병역비리 의혹과 관련, 이 문제를 국회에서 먼저 제기해 달라는 요청을 검찰측으로부터 받았다고 실토해 큰 파문이 일고 있다.

그동안 병역비리 의혹으로 궁지에 몰렸던 한나라당은 "민주당 스스로가 정치공작의 실체를 드러냈다"고 대대적 반격에 나섰고, 민주당은 "다 잡았던 고기를 놓친 격"이라며 이해찬 의원의 가벼운 입이 초래한 '이적행위'를 통탄하고 있다. 이정연 병역비리 '기획수사' 의혹에 휘말린 검찰은 문제의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 교체를 적극검토하는 등 파문의 확산을 막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분위기다.

***이해찬, "검찰쪽에서 떠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해찬 의원은 이날 오전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당무회의 도중 회의장을 나와 동아, 경향, 한국일보의 출입기자 3명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제의 발언을 했다.

이 의원은 "올 3월 대정부 질문 준비과정에서 누군가를 만났는데 서울지검 특수부가 김길부 전 병무청장의 인사청탁 비리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후보 아들 병역면제와 관련된 진술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며 "그러나 인지(認知)수사를 하기에는 곤란하므로 나에게 와서 대정부질문 같은 데서 떠들어 달라고 그쪽에서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쪽에서는 세가지 정황을 갖고 왔는데, 이를 확인해본 결과 하나가 팩트(사실)가 달라 대정부질문에서 거론하진 않았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세가지 정황은 이 후보 장남 정연씨의 병적기록표가 엉망이고, 은폐를 위한 대책회의가 있었으며, 이후보 사위 최모씨가 김길부씨를 면회한 이후 김길부씨가 입을 다물었다는 점이었는데, 세번째 것은 사실과 다른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청을 받은 뒤 3월 임시국회에서 이 문제를 대정부 질문에 포함시키기 위해 구치소 면회기록 등 자체 확인작업을 거쳤으나 김 전 청장을 면회한 변호사가 이 후보 사위가 아니라 이름이 비슷한 변호사인 것으로 판명돼 제보의 신빙성에 의문이 들어 질문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후 이 의원은 4월 10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병역 시비가 일고 있다"는 정도로만 문제제기를 했다.

이 의원은 검찰이 새로운 이정연씨 병역비리 의혹을 확보하게 된 것과 관련, "검찰은 다른 건을 조사하려고 김길부 전 청장을 잡아왔는데 김 전 청장은 (이정연 병역비리 수사인 줄 알고) 불어버렸다고 들었다"고 밝히며 "이는 (김 전 청장이) 뒷발에 걸린 것"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누가 이같은 부탁을 했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당시 굉장히 수사를 하고 싶어하는 눈치였다"고 말해 검찰측 인사임을 시사했다.

***당황한 검찰, 법무부**

이 의원은 그러나 발언의 파문이 확산되자 해명을 통해 "검찰이나 군 관계자가 아니다"고 해명하면서도 "그러나 누구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병역비리 의혹관련 정보원 7~8명 가운데 한명일 뿐이며 그다지 신뢰할 만한 인물도 아니라는 게 그의 해명이다.

검찰관계자로 지목된 서울지검 박영관 특수1부장도 "이해찬 의원과는 일면식도 없으며 전화통화도 한 적 없다"고 부인하며 "도대체 왜 그런 소리를 한 것인지 모르겠다"고 이 의원에게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해찬 의원이 제보받았다는 '병적기록표 조작의혹'및 '은폐 대책회의'는 3월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어서 검찰 수사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이해찬 의원과 박영관 부장검사의 해명에 설득력이 떨어지고 있다.

기획수사 의혹이 이처럼 불거지자 법무부와 검찰은 크게 당황하는 분위기다.

법무부는 당초 21일 재경(在京) 지청장 이하 중간간부 및 평검사들에 대한 전보인사를 할 예정이었다. 문제의 박영관 부장은 유임될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러나 이해찬 의원 발언으로 파문이 일자 인사를 22일로 연기하며 대책마련에 부심하는 분위기다. 문제의 박영관 부장검사는 전보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나라당, "죽었다 살아났다"며 환호**

이해찬 의원 발언을 접한 한나라당은 "병풍 공세의 음모와 조작이 드러났다"며 환호했다.

이날 대구를 방문중이던 이회창 후보는 서청원 대표로부터 이 의원 발언을 보고받고 밝은 표정으로 "다 그런 거야. 결국 다 드러나게 돼 있어"라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이 후보는 '이 의원 발언으로 병풍이 정리될 것으로 보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렇지"라고 답했다.

한나라당은 오후 서청원 대표 주재로 두 차례 긴급 당직자회의를 열어 박영관 서울지검 특수1부장의 구속을 요구하는 한편, 원내외 위원장들이 22일 서울지검을 대거 항의방문하고 김정길 법무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제출키로 하는 등 대대적인 역공채비를 갖췄다.

서 대표는 22일 오전 기자회견을 갖고 '공작정치' 중단과 김대중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박영관 부장검사의 파면과 즉각 구속, 김대업씨 구속을 촉구하는 등 강경대응책을 밝혔다.

남경필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온갖 조작과 음해, 야당후보 죽이기를 해온 민주당은 즉각 국민앞에 사과하고 이명재 검찰총장은 정치검사의 대표 박영관을 즉각 구속하라"고 촉구했다.

반면에 민주당은 "다 잡았던 고기를 놓쳤다"며 이해찬 의원의 가벼운 입을 개탄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후보측 관계자는 "정치란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고 하는 법"이라며 허탈해 했다.

이낙연 대변인은 논평에서 "본질은 병역비리와 은폐기도가 있었느냐 여부"라며 "한나라당은 보도의 진위도 확인하지 않은 채 기다렸다는 듯 억지 주장을 펴고 나섰다"고 주장했다. 이 대변인은 이어 "한나라당의 주장은 이 후보 아들들 병역비리와 은폐의혹을 호도하기 위한 트집잡기와 수사방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면서 "병역비리와 은폐의혹의 진실은 그 무엇으로도 덮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다수 당내 인사들은 이해찬 의원의 가벼운 입을 질타하면서, 이번 파문으로 거의 진실을 밝힌 이정연 병역비리 의혹이 희석되지 않을까 크게 우려하고 있다.

***김대업, "김길부 청장 조사는 내가 했다"**

검찰의 기획수사 의혹이 불거지자, 그동안 이정연 병역비리 의혹을 선두에서 제기해온 김대업씨도 적잖이 곤혹스러워 하는 분위기다.

김대업씨는 21일 저녁 CBS 시사프로그램 '시사자키'에 출연한 자리에서 지난 97년의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의혹과 관련, "김길부 전 병무청장을 지난 1월초 조사하면서 진술을 확보했다"며 "김 전 청장은 대책회의 얘기를 하면서 '이거 얘기하면 위증죄로 걸리는데'라고 해 이유가 궁금했는데 대선 당시 국회에서 문제가 됐을 때 대책회의와 관련해 국회에서 위증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당시 수감중이던 김대업씨가 문제의 김길부 전 병무청장 조사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 97년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진술을 확보했음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문제의 김길부 전 청장은 지난 1월 2일 수뢰혐의로 서울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박영관)에 연행돼 1월 4일 병무청장 재직당시 인사청탁 대가로 4천4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으며, 1월 23일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수수혐의로 정식으로 구속기소됐다. 96년 12월부터 98년 3월까지 병무청장으로 재직했던 김길부 전청장은 재임기간중 병무청 직원 6명에 대한 승진인사 청탁 명목으로 4천4백만원을 받은 혐의로 당시 구속됐다.

이해찬 의원 주장에 따르면, 김길부 전 청장은 그러나 당초 자신의 연행 이유가 이정연씨 병역비리 연루때문인 줄 잘못 알고 검찰에 병역비리 은폐 대책회의 사실을 털어놓았다. 이에 검찰은 병역비리 전문가인 김대업씨를 수감중이던 형무소에서 불러 김길부 전청장 조사를 시킨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같은 전후사정에 기초해 서울지검 특수1부 및 김대업씨가 이때부터 이른바 '병풍'을 공모했고, 이를 위해 3월에 이해찬 의원에게 바람잡이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추정하며 기획수사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른바 김대업은 병풍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동원된 '정치 용병'이라는 게 한나라당측 주장이다.

김대업씨는 이같은 의혹과 관련, 22일 MBC 시사프로그램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자리에서 "이번 병역비리 의혹 제기는 순수하게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며 정치공작 연루 의혹을 극력부인했다.

***진상이 밝혀져야 할 또하나의 진실게임**

이정연 병역비리 의혹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올해 대선의 향배를 결정할 사안으로 평가받아왔다. 특히 최근 김대업 테이프 성문분석결과가 사실로 나타나고, 병적기록표 의혹이 거의 사실로 드러나면서 이회창 후보는 회복불능의 치명적 손상을 입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한나라당이 제기해온 검찰과 여권의 '합동 정치공작' 의혹 또한 명확한 진상이 밝혀져야 할 또하나의 '진실게임' 대상이었다. 집권후 지난 4년여동안 줄기차게 이정연 병역비리 의혹을 수사해온 현정부가 하필이면 대선을 눈앞에 둔 예민한 시점에 이 문제를 파헤치고 있느냐는 게 세간의 의혹이었다.

지금 정가에는 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할 두가지 '진실게임' 대상이 있다.

'이정연 병역비리 의혹'과 '정치공작 의혹'이다. 두가지 이 의혹은 백일하에 그 실체를 드러낸 상태이다. 두 의혹은 반드시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

또한 두 사안의 명백한 진상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지금 곤경에 처한 이명재 검찰이 선택할 유일한 정공법일 것이다. 이명재 검찰총장의 역사적 결단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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