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 중 현지에서 내린 지시를 통해 바른미래당이 제안한 '미세먼지 범국가기구' 제안을 수용할 뜻을 밝혔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12일 "문 대통령은 브루나이 현지에서 김수현 정책실장으로부터 미세먼지 관련 대책을 보고받고, 손학규 대표와 바른미래당이 제안한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범국가적 기구 구성'을 적극 수용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김 대변인은 "이에 청와대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께 이 기구를 이끌어 주실 수 있는지 확인하는 한편, 기존 미세먼지특별위원회와 새로 만들어질 범국가적 기구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도 검토하기로 했다"고 부연했다.
문 대통령의 이례적 지시는 손학규 대표의 공개 제안에 대한 화답 성격이다.
손 대표는 지난 8일 바른미래당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미세먼지와 관련해서는 여야를 떠난 초당적, 온 국민적 대처가 필요하고, 단기적 대책이 아니라 장기적 대책이 필요하다"며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국회, 사회 전 계층이 참여하는 범사회적 기구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손 대표는 "여야 구분없이 초당적인 기구가 되어야 한다"며 "그 위원장에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을 추천한다"고 제안했다. 손 대표는 반 전 총장을 추천한 이유에 대해 "2015년 파리 기후협약을 성사시킨 국제적 경험을 가지고 있고, 국내적으로 진보·보수 모두에게 신망을 받는 분"이라며 "유엔 사무총장을 지낸 외교 전문가로서 중국 등 주변국과 미세먼지 문제를 협의·중재할 능력을 가진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손 대표는 문 대통령의 지시 하루 전날인 11일 최고위 회의에서도 재차 "정부가 정말 미세먼지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해결할 의지가 있다면 이제 결단해야 한다"며 "국무총리 직속 위원회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정부·정치권·시민사회 전체가 참여해 지혜를 모으고 대책을 강구할 수 있는 기구, 충분한 예산과 행정이 뒷받침되는 국가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는 손 대표의 제안에 대해 문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즉각 이례적 화답을 보낸 배경과 관련, 미세먼지 문제의 심각성이나 손 대표 제안의 적절성 등 직접적 요인 외에 최근 국회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 등 야3당은 자유한국당에 맞서 선거제도 개혁을 위한 공직선거법의 신속처리 안건 지정(일명 패스트트랙)을 추진하고 있고, 특히 민주당은 선거법 외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법과 국정원법,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패키지'로 묶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이 가운데 민주·평화·정의 3당은 '패키지' 형성에 큰 이견이 없는 반면, 바른미래당에서는 "이것 저것 한꺼번에 갖다 얹으려는 것은 잘못"(손 대표, 12일 의원총회에서)이라는 등 민주당 제안에 비판적 태도도 보이고 있다. 한국당이 빠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바른미래당이 '여야 4당 연대'의 캐스팅보트를 쥔 형국이다.
이에 국정원 개혁, 검찰 개혁, 공수처 신설 등 '적폐 청산' 과제를 안고 있는 청와대·여당이 손 대표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바른미래당에 손을 내민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해 8월 정동영 평화당 대표와의 전화 통화에서 "'평화와 개혁 연대'의 구체적 결과가 아직은 없지만 마음을 함께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도 비슷한 시기 '개혁입법연대' 구상을 밝히는 등 여권에서는 지속적으로 '탄핵 연대'의 복원을 꾀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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