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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에 다시 읽어보는 <징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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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에 다시 읽어보는 <징비록>

'책 읽어주는 부행장'의 주말 이야기 <20>

우리나라에는 김씨,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래서 서울의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김서방이나 이서방이 맞는다는 말이 있고, 또 우리나라에 대해 조금 아는 외국사람들이 'Korea is Kim's country.'라고 농담을 하는 정도다.

그런데 몇 년전부터인지 남산에서 돌을 던지면 일본 사람이 맞는다고 이야기가 바뀌었다. 일본 사람이 김씨, 이씨보다 서울에 더 많이 있다는 풍자 섞인 농담이다. 실제로 시내 중심가를 걷다 보면 '참으로 일본 사람이 많이 들어와 있구나' 하고 누구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본 사람이 많이 있어서 그런지 일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기고 있다. 백화점, 양품점 등도 일본식을 따르는 느낌이고 심지어 젊은이들 중에는 일본에서 유행하는 패션을 자기와 어울리는지 어떤지 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흉내내는 축들도 늘어나고 있다. 한심한 이야기는 일부 고등학교 학생들이 뜻도 모르며 일본 유행가를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전에는 은근슬쩍 일본책을 표절하였지만 요즈음은 내놓고 번역하고 있다. 하긴 오히려 그 편이 훨씬 떳떳하다.

일본의 문화가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는 것을 억지로 막을 필요도 없고 또 막을 수도 없다. 어차피 문화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우리 문화가 일본으로 흘러가지 않았는가.

지금 일본문화의 내용과 질을 따지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중요한 일은 우선 일본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교육시키는 일이다. 일본사람의 성격과 일본말을 더욱 깊이 연구하여 그들과의 모든 거래에서 불평등한 계약을 맺지 말아야 하고 우리들 스스로가 무차별한 물물도입을 지양해야 되겠다.

우리들의 마음을 단단하게 벼리기 위하여 4백년전 서애 유성룡이 저술한 <징비록(懲毖錄)>을 일독할 것을 권하고 싶다. 근세의 일제 36년간의 이야기가 있는데 하필 4백년전의 책을 보라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있을지 모르겠다.

그 이유는 구한말 이후 여러 가지 일제치하에 대한 저술이 있었고 수많은 문학작품이 있었지만 대개가 일본인들의 잔혹성, 교활성을 사증(史證)하는 내용과 일제에 항거했던 독립군, 의사, 열사 등에 관한 열전과 같은 내용들인데 비해, 이 책은 우리 선조 자신들에 대한 반성과 통한을 피력함으로써 후손들에게 많은 깨우침과 경각심을 불러 일으켜주기 때문이다.

저자인 서애 자신이 <징비록>이라는 제목을 붙인 이유를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시경에 이르기를 '나의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懲)하여 후에 환란이 없도록 삼가(毖)하노라'하였는데 이것이 <징비록>을 저술한 소치이다."

그는 또한 "나같이 모자라는 사람이 어지러운 때에 나라의 중책을 맡아 위태로운 판국을 바로잡지도 못하고 기울어지는 형편을 붙들지도 못한 죄는 죽어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라고 속죄하는 심경도 토로하고 있다.

서애는 일찍이 이퇴계(李退溪) 선생에게 사사하였고 임진왜란 당시에 영의정이었으며 경기, 황해, 평안, 함경의 사도도체찰사(四道都體察使)를 겸임하여 내정, 외교, 군사를 총괄하였으므로 체험과 자료의 풍부함에 아무도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징비록>은 몸소 경험한 일의 회상과 풍부한 사료를 구사한 임진왜란에 대한 사료집이며 종합적인 역사서인 것이다.

그 내용은 임진왜란 전의 일본과의 관계로부터 임란의 마지막까지 취급하였고 전투경위가 주로 되어 있으나 정치, 경제, 외교에 관한 종합적인 저술이며 우리 민족의 수난사이기도 하다. <징비록>이 국보로 지정된 것만 보아도 그 중요도를 가히 짐작할 만한 것이다.

서애 유성룡은 임란이 끝날 무렵 다시 재연된 당쟁에 휘말려 파직되고 관직이 삭탈되어 낙향하였다가 다시 복권되어 호종공신(扈從功臣)이 되었으나 다시는 조정에 나가지 않고 조용히 저술에만 힘쓰다가 66세로 타계하였다.
노년을 쓸쓸하게 보냈지만 우리들 후손에게 불후의 저술을 남김으로써 마치 중국의 사마천이 수모를 참아가며 사기를 남긴 것과 같은 고마움과 다행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내용을 읽는 도중 당시의 일본에 대해 우리 선조들이 너무 몰랐던 점에 대해 한심하기 짝이 없고, 또한 당시 우리나라 군사지도자들의 무방비 및 무기력함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또한 구원병으로 출정온 명나라 장수들로부터 우리나라 관료와 장군들이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울분과 약소국의 비애도 느낀다.

다만 이순신 장군의 우국충정과 용맹, 뛰어난 전략에 의한 승전 등으로 위로를 받게 되며, 일부 의병장들과 명분을 세우고 장엄하게 전사한 안음현감 곽준 일가족과 전 함양군수 조종도의 이야기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어쨌든 다시는 그런 비극이 없어야겠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피지기(知彼知己)'를 명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피를 위해 일본에 대해 보다 정확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알아야겠다. 비단 일본만이 아니고 우리의 상대방이면 누구라도 완벽하게 파악해 놓아야 할 것이다.또한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보다 냉철하게 파악해야 할 것이다.

지일본(知日本)전에 <징비록>을 읽어 마음을 단단하게 벼리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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