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환 국무총리 지명자에 대한 평가가 구구하다.
재계는 대다수가 "기대가 크다"며 쌍수를 들어 환영이다. 반면에 노동계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이유는 장대환 지명자가 그동안 만들어온 매일경제신문의 편집방향을 통해 드러난 장 지명자의 '성향'때문이다.
재계를 주된 취재원이자 광고원으로 하는 경제지의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매일경제는 여러 경제지 중에서도 특히 '친기업' 성향이 강했다는 게 언론계 안팎의 중론이다.
예컨대 대기업 총수가 구속되거나 법정에 서는 사진 등을 신문에 싣지 말라는 것이 편집방침이었을 정도다. 이런 장 지명자의 편집방침 때문인지 매일경제는 IMF사태후 거의 모든 신문매체들이 적자의 늪에 빠져들 때에도 유독 흑자를 기록하며 성장을 거듭해왔다.
이같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청문회 과정에서 결정적 하자가 발견되지 않는 한 국회인준은 무난할 것이라는 게 정가의 일반적 관측이다. 인준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한나라당에게 장 지명자의 '친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인준 거부의 사유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역시 친기업적 성향이 강한 정당이기 때문이다.
***장 지명자의 실제 임기는 '넉달'**
따라서 장대환 총리 지명자에 대한 주문은 단순한 자격검증 이상의 것이 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현재 모 금융기관협의회의 대표를 맡고 있는 한 전직 고위 경제관료는 장 지명자에게 다음과 같은 주문을 했다.
"나의 재무부 시절 경험을 보면, 한 부서의 장을 맡더라도 완전히 업무 파악을 하는 데 거의 일년이 걸렸다. 내 능력이 부족한 탓도 있으나 대다수의 경우가 그랬다. 특히 과장이 된 직후 석달간은 결제조차 하기 겁이 날 정도로 업무 파악이 제대로 안됐다.
장대환 총리서리의 경우 현 정부와 임기를 같이 한다고 전제하면 남은 임기가 7개월이 되는 셈이나, 오는 12월 대통령선거에서 차기 대통령이 선출되는 순간 모든 권력이 정권인수위원회로 넘어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 임기는 넉달에 불과하다. 과연 넉달 동안에 무슨 새로운 일을 할 수 있겠나.
장 총리서리가 매일경제 사장시절에 빼어난 경영수완을 보인 대목은 높이 평가한다. 또한 나이도 젊은 만큼 한번 의욕적으로 일을 해보고도 싶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주어진 시간이 '넉달'밖에 안된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결코 무리수를 둬서는 안된다. 말 그대로 새 일을 벌이기보다는 차분하게 현정부의 임기를 큰 과오없이 마무리짓겠다는 자세가 필요해 보인다."
***97년 강경식 부총리가 던져주는 반면교사 교훈**
이같은 '넉달 임기론'에 대해 장대환 총리지명자는 반론을 펴고 싶을지도 모른다. 신문사에서 십수년간 재직하며 파악한 우리나라의 문제점 등에 대해 나름대로의 식견을 갖고 있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에 관한 한 '지식기반 사회 구축' 등 평소 지론이 분명했던 만큼 짧은 임기 동안에라도 새로 하고픈 일이 적잖을 성 싶다.
하지만 경제부처의 한 관료는 97년 김영삼(YS) 정부 말기의 상황을 예를 들어 '과욕은 금물'이라는 입장을 폈다.
"97년초 YS가 한보사건으로 레임덕(권력누수)에 걸리면서 강경식씨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으로 부임해왔다. 당시 강 부총리를 아끼던 주위의 많은 이들이 '하필이면 왜 정권말기에 들어가느냐'며 말렸었다. 이때 강경식 부총리가 한 답변이 '대통령이 레임덕에 걸렸기 때문에 도리어 소신껏 일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강 부총리는 각 부문에 걸쳐 대단히 아이디어가 풍부한 분이었다. 한 예로 교육 개혁과 관련해선 '왜 수천명이 한줄을 서야 하냐'며 '학생의 적성에 따라 수천개 줄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면적인 입시 개혁을 주장했다. 또한 금융감독 강화 및 금융감독기관의 일원화 필요성을 주장하며 한국은행법 개정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나. 본의와 다르게 강 부총리의 개혁노선은 한은법 파동을 낳는 등 도리어 국정말기의 혼란을 가중시켰고, 결국 IMF사태가 발발하면서 불명예 퇴진을 해야 했다.
장대환 총리서리도 강경식 부총리의 실패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넉달이라는 짧은 시간에 무리하게 새 일을 벌이려 하기보다는 당면한 현안의 우선순위를 정해 차분히 정권말기를 정리해나가야 할 것이다."
***젊은 총리에게 요구하는 민심, 원리원칙**
장대환 총리지명자의 등장에 대해 특히 재계는 기대가 크고, 벌써부터 여러 주문사항도 쏟아지기 시작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12일 소득세 추가 감면 요구나, 증권가의 증시 부양 주문 등이 그런 예에 속한다. 주무부처는 재정경제부이지만 다분히 장 지명자를 겨냥한 주문의 성격이 짙다.
하지만 총리는 말 그대로 국정 전반을 총괄해야 할 국무총리이지, 경제부총리가 아니다. 아무리 장 지명자의 경제전문지식이 많다 해도 임기말 총리가 해야할 역할은 경제부문의 일뿐이 아니다. 그보다는 '정치적 중립성'이 보다 중요한 현안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 대선까지 남은 넉달은 말 그대로 치열한 '정치의 계절'이 될 게 확실하다. 아무리 김 대통령이 정치적 중립을 선언했다 해도, 김 대통령을 타깃으로 하는 정치공세가 집요하게 전개될 것이다. 자칫 대응을 잘못하다간 청와대 및 행정부가 이같은 공세의 방패막이로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 벌써부터 한나라당은 공적자금 국정조사를 비롯해 법무장관 교체, 권력형 비리 국정조사 및 TV청문회 등 메가톤급 정치공세를 시작했다.
아울러 정부여권 일각에선 예전의 대선때마다 목격됐듯 인위적으로 연말 증시를 띄워 달라, 선심성 정책을 마련해 달라는 압박이 나타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하는 게 정치권이기 때문이다.
이때 총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해답은 단하나 '원리원칙'뿐이다. 나라살림의 실무책임자로서 자신의 결정이 나라살림에 도움이 되는가 안되는가라는 잣대에 따라 국정을 운영해 나가야 한다. 특정 정치집단이나 경제이익집단의 논리나 이해관계에 휘둘려서는 결코 안된다.
장대환 지명자에게 거는 여론의 기대는 이처럼 소박하고 간단하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51세 젊은 총리'의 원리원칙을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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